어린 아기들이 뭔가 더럽거나 지저분한 것을 만지려고 할 때 그런 아기들을 향해 어른들이 ‘지지야, 지지!’ 한다. 이럴 때 쓰는 한자의 글자는 아마도 ‘그칠 지止’일까 싶다. ‘안 돼!’ 라든가, ‘멈춰!’라는 뜻일 것이니 말이다. ‘금지禁止’니 ‘폐지廢止’니 할 때도 이 글자가 들어간다. ‘그칠 지止’는 왼쪽 발을 내려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발목 아랫부분의 발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글자로서 ‘발, 멎다, 멈추다, 그치다, 머무르다, 억제하다’ 등의 뜻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 둘을 겹쳐 ‘지지止止’라고 하면 ‘거기 그대로 멈추다’, 나아가 ‘머무를 곳에 머무르다’라는 뜻이 된다. 사람의 발은 지나온 발자국에서 나아갈 발자국으로까지 역사요 여정이며 삶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제가 머물러야 할 곳을 알아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있을 때 품위를 유지한다. 언젠가 떠나야 할 이승의 삶과 인생살이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인생의 매듭마다 내가 있을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하는 문구가 단지 공공 화장실, 적어도 남자들의 화장실 표어로만 정착하면 우스꽝스럽다.
‘그칠 지止’ 앞에 ‘알 지知’를 붙여 ‘지지知止’라고 하면 의미는 조금 더 깊어지고 분명해진다. ‘멈출 것을 알다’라는 뜻이 되어 ‘자신의 분수에 지나치지 않게 그칠 줄을 아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지지止止’하고 ‘지지知止’해야 한다. 머무를 곳에 머물러야 하고, 언제 그만둘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까칠’이 아니고 ‘깔끔’이요 ‘정갈’이다. 질척거리면 지저분해진다. 그러나, 그렇게 살고 싶다고 살지만, 사람이 자기 머무를 곳이나 분수를 안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경지境智(슬기로움의 경계를 깨우침, *실제로는 잘 사용하지 않으면서 원래는 약간 다른 뜻을 지닌 불가佛家의 말이지만 여기서는 임의로 사용하였음)’의 경지境地(몸이나 마음, 기술 따위가 어떤 단계에 도달해 있는 상태)이다. 어쩌면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를 모르거나 가늠하려고 애쓰다가 끝나는지도 모른다. 봄날 제비가 ‘지지배배’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처럼,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나만의 ‘지지止止’와 ‘지지知止’를 노래하다 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제자 자로子路에게 “네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주랴?” 하시면서 ‘지지위지지 부지위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안다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논어 위정爲政 편, 17)’이라 하셨을까!(20161228 *이미지-네이버 한자 사전)
재미있는 비유. 아가들한테 못 하게 하느라 사용했던 내용이 한자로 풀어지니 더욱 재미있네요
언제 그만 둘 지를 아는 것에 깨우침이 오네요.
질척거리지 않고 정갈함.
잘 안돼요.
질척거리는 제 모습을 반성합니다.ㅎ
왼쪽 발목을 보니 정말 ‘지’가 보이네요!
저는 손녀 재아랑 놀 때 지지를 많이 찾지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네요.
품위 있게 질척대지 않고 빠져주는 정갈함.
경지에 다다르기는 힘들어요. ~~^^
‘까칠’이 아닌 ‘정갈’한 삶을 위해서 제대로 된 ‘지지’의 삶을 살아가야겠네요. 신부님의 한자 풀이는 늘 생각 거리가 많아요~
글이 멋져서 이 자리에 발이 멈춤도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