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메타노이아, μετανοία)

‘회개’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명사나 동사의 형태로 50여 회 넘게 보인다. 명사 ‘회개’는 메타노이아(μετανοία)이고, 동사 ‘회개하다’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이다. 메타노이아의 중요한 어근은 ‘누스’(νοῦς, mind, understanding, thought, opinion, judgment, plan)인데, 여기에 전치사 ‘메타’(μετά, after, with, around, ~넘어서, 변화·전환 뉘앙스)가 접두어로 붙어서, 마음이나 생각의 돌이킴을 뜻한다. 공관복음,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이는 이말을 요한복음은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회개하다’라는 동사는 공관복음서에서 16번 나오는데, 그중 9번이 루카복음에 나오고, 5번이 사도행전에서 나온다. 명사 μετάνοια 역시 루카복음에서 5번, 사도행전에서 6번 등장한다. 루카복음을 ‘죄인들과 가련(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며, 루카복음만이 전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를 회개의 전형적인 비유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회개는 하느님께로 돌아서서 내 안에 하느님의 처소를 마련하여 단장하는 것이고, 내 마음 안에 도사린 우상들을 제거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형제자매들 간에 맺어지는 애덕의 열매들이다.

회개는;

① 회개는 선포이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태 4,17) 하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선포로 공생활을 시작하셨고,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1-2 마르 1,4 루카 3,3) 하는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 역시 회개의 선포로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2) 하신다.

② 회개는 꾸짖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0-21 루카 10,13)라며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꾸짖으시며 안타까워하셨고, 세례자 요한도 겉치레로 세례 운동에 동참하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마태 3,7)라며 실제로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혹독하게 꾸짖었다.

③ 회개는 경고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하시고,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3.5) 하셨다. 그런데도 “그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로마 2,5) 하는 말을 우리는 여전히 듣고 있다. 조바심으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묵시 2,5) “저지르는 소행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속으로 던져 버리겠다.”(묵시 2,22) 하신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

④ 회개는 기쁨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7) 하시고,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하셨다. 회개는 우리의 기쁨이자 하느님의 기쁨이요 하늘 나라의 기쁨이다. “이제는 기뻐합니다. 여러분이 슬퍼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슬퍼하여 마침내 회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코린 7,9) 하는 말씀 그대로 회개는 기쁨이다. 그렇지만 그 기쁨을 위해 주님께서는 인내롭게 우리를 기다리신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하는 말씀 그대로이다.

⑤ 회개는 용서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시면서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3-4) 하셨다. 우리의 회개는 형제의 회개를 마주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분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호의가 그대를 회개로 이끌려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로마 2,4) 하는 사도의 가르침대로, 회개로 이끌어주신 분의 뜻에 맞추어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일들을 하라”(사도 26,20) 하신 대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열매들을 맺는 것이다.

⑥ 회개는 은총이다. 회개는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하는 말씀처럼 회개한 이들이 받는 성령의 선물이다. 회개는 “악을 버리고 회개하여 주님께 간구하시오. 혹시 그대가 마음에 품은 그 의도를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사도 8,22) 하는 말씀처럼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사도 11,18) 주시도록 기도하며 간구하여 얻는 선물이다. 사도는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시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2티모 2,25) 하며 우리의 회개가 반대자들에 대한 온유를 지탱하는 기도임을 잊지 말라 하셨다.

⑦ 회개는 명령이다.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사도 17,30) 하는 사도의 깨우침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과제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 24,47) 하고 명령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의 하느님께서 여러분 앞에서 나에게 다시 창피를 주지나 않으실까, 전에 죄를 짓고도 자기들이 저지른 그 더러운 짓과 불륜과 방탕을 회개하지 않는 많은 사람 때문에 내가 슬피 울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2코린 12,21) 하는 사도처럼 차일피일 미루며 더디 하는 나의 회개를 슬피 울어야 한다.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사도 3,19) 하는 말씀처럼 회개로 내 죄를 지워주시도록 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묵시 3,3) 하는 말씀이 내 말이 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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