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론(2-3)

3

일반적으로 본 하느님의 섭리에 대하여

그러므로 테오티모여, 하느님은 여러 가지 많은 행동을 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전능하신 의지의 신적神的인 유일한 행동만이 당신의 무한한 완전성으로써 당신 작품의 온갖 다양성을 생기게 하는데 넉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죽을 인생들은 우리의 비좁은 정신이 획득할 수 있는 지성의 방법과 모양을 따라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말한다면, 우선 저 위대한 솔로몬의 통치를 좋은 정치 기술의 한 가지 완전한 모델로 삼아 고찰해봄이 좋겠다.

그 당시에, 이 위대한 왕은 하느님의 영감으로써, 국가와 종교는 마치 육체와 영혼처럼, 또 종교와 국가는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처럼 알아듣고 모든 부면에 있어 종교의 안정성을 국가의 공고한 기반으로 삼아 그대로 배려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에 관해서는, 성전이 건축되어야 한다고 여겨,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여러 회랑과 뜰, 그리고 많은 창문과 그 외에 이 성전에 속할 모든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희생의 제물과 성가대들과 성전 관원들도 생각하였다. 그리고 국가에 관한 것으로도 역시 한 궁전 건축을 생각하였으며 거기에는 많은 하녀와 신하들과 시종들을 착안하였다. 그리고 백성을 위해서 재판관들을 두게 하고 더구나 정의를 집행토록 관헌들을 두며, 왕국의 보장과 태평 시대에 처한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또 평화 시대였으나 불시에 있을 수 있는 전쟁에도 대비시키기 위하여 이백오십 명의 장군들을 제각기 임무를 주어 담당케 하였으며 사만 필의 말과 모든 대 기병단을 두었었으니, 이것은 모두 성경과 역사가들이 기록하여 놓은 사실이다.

그런데 자기 왕국에 소요되는 모든 주요한 일을 자기 머릿속에서 착안하여 검토하고 배치한 후, 그는 이를 마련하는 행동을 시작하였고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각해 내었으니, 성전 관원들과 궁중의 장관들, 관리들과 교사들. 군인 등을 유지하는 일이며, 특히 군인들을 그는 배정하여 희랍으로 보내서 목재를 구하게 하고, 페루Peru(여기서 페루를 언급하고 있으나 살레시오 성인 시대에는 실제로 없었던 듯)와 오피르Ophir와의 무역을 시작하게 하여 자기가 착상한 바의 완성과 성공을 위하여 요구되는 물건을 준비하기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1열왕 5장, 9장에 대한 Cornelius A Lapide의 성서 주해 참조. 특히 1열왕 9,28 주해에서 솔로몬은 남미 제국과도 무역하여, 성전 장식용 금을 실어 왔다고 많은 성경 주해자들이 말하고 있다)

테오티모여, 그는 자기의 설계를 마친 후, 가만히 앉아 있지 아니하고, 설계대로 완성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였으며, 실천에 옮기었고, 실제로 자신이 직접 관리를 선발하였으며, 배치하였고, 선정善政을 베풀어서 각자가 제 맡은 바를 수행 하는데 요구되는 모든 것을 마련해 주도록 힘썼다. 그리하여 잘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되자, 그는 아는바 그대로 실행하였다. 그리고 그가 모든 종류의 관리들을 선발하기 위하여 마음속에 작정한 바를 실시하였고, 예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던 바를 예비시켰다. 그래서, 배려와 예비와 선견先見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정책은 관리선발과 현실적인 통치와 충실한 관할에 의해 실현되어 나아갔다.

그러나, 배려함이란 관리官吏가 없이는 무익한 것이고. 또 관리들이란 미리 준비하는 예견이 없이는 헛된 것이니, 선발되고 임명된 관리들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바가 무엇인지를 보살펴야 되는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선정善政으로 이루어지는 유지, 발전은 효과적으로 취해진 예비 내지 안배 이외에 별다른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배치력 뿐 아니라 그의 선발과 선정은 안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제대로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안배할 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테오티모여, 이제 우리가 인간적 일을 고찰해보고 얻은 바를 따라 천상적 일에 맞춰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확언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영광을 위해 세계를 만드심에 있어 영원하고 완전한 지식을 가지시고, 우선 당신에게 존경과 영예를 돌리게 될 우주의 모든 주요한 부분을 당신 지성 안에 배려하셨다는 사실이며 그것은 바로 천사들과 사람들인 것이다. 천사들에게는 다양한 등급이 있으니, 이 서열에 대해서는 성경과 교회의 학자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와 같으며, 사람들 사이에도 우리가 보아 알듯이 아주 큰 다양성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영원한 배려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정신 안에서, 사람과 천사에게 요구되는 모든 수단을 마련하시고 결정하셨으니,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느님이 정해 주신바, 목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당신 안배의 행동을 하셨으며, 여기서 중지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배려하신 바를 효과적으로 결실하도록, 천사와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당신의 안배가 결실을 맺도록 다스리심으로써 이성적인 피 조물에 필요한 바를 마련해 주시어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

이와같이, 한마디로 말해서, 하느님의 최고의 섭리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천사와 사람에게 그 목적 달성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주시고자 하시는 그 행동, 즉 하느님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니, 우리는 이 섭리를 갖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사실이며, 다만 자연적인 섭리와 초자연적인 섭리가 있다고 우리는 흔히 말하는데, 이 후자는 또다시 일반적인 것이든가, 특종적인 것이든가, 아니면 특수한 것이 있다.

그리하여, 테오티모여, 너는 네 의지를 하느님의 섭리에 일치시켜라, 나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자연적 섭리에 관해서 하는 말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그 착하심에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모든 이를 보살피고자 하시며, 그들의 편리를 위해서 모든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을 내셨으며 또 이 동식물들을 보살피시고자 다른 것들을 또 내셨다. 즉, 갖가지의 땅과, 계절과, 물과 바람과, 비를 내셨다.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당신께 예속된 모든 다른 만물을 위해서도, 하느님은 갖가지 원소와 하늘과 별과 그 모든 것을 내시고 기묘한 방법으로 질서들 정해 주심으로써 서로 이용하고 이용되도록 하셨다.

말은 우리를 태우고 다니며, 우리는 말을 돌보아 준다. 양을 치면서 우리는 옷을 얻어 입고 우유와 고기를 얻어먹으며, 땅은 수증기를 공중으로 올려보내고 공기는 수증기로 비를 만들어 다시 땅에 내리게 한다. 손은 발을 거들어 주고 발은 손을 섬긴다. 오! 피조물들이 서로 함께 상통하며 거래하는 이 교역과 통교를 관찰하고 특히 피조물들이 서로 그처럼 완전한 상호대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관찰하는 자는, 그 얼마나 거창하고 주도면밀한 지혜가 움직이고 있음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감동되랴! 오! 당신의 섭리하심이여! “아버지,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당신의 섭리입니다.”(지혜 14,3)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는도다!

성 바실리오St. Basil와 성 암브로시오St. Ambrose는 그들이 쓴 헥소메론(Hexomeron, 영어- Hexaemerons, 창조에 대해서 쓴 책)에서, 그라나다의 선인善人 루이Louis of Granada는 그가 쓴 신경 입문에서, 또 루이 리세옴Louis Richeome은 자기가 저술한 많은 책 가운데서,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위와 같은 관찰에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숱한 주제를 구비하여 주고 있다.

사랑하는 테오티모여. 이와같이 섭리는 모든 것에 다 이르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모든 것을 그 영광으로 귀납시킨다. 물론 거기에도 우연한 경우가 없지 않고 뜻밖의 사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우연하고 뜻밖의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사실을 예견하신 하느님의 섭리에는 두말할 필요 없이 가장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다 우주의 일반적인 선을 위해서 이런 우연한 사건들은 갖가지 원인에 의하여, 힘으로 생기게 되는데, 그 원인들은 자연적인 아무런 상호관계 없이 갖가지 독특한 결과를 내게 하지만 이렇게 여기저기서 나온 결과의 상합과 분리는 상이한 성질의 다른 결과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미리 보지는 못하지만 모든 이러한 원인들이 주어져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시인 애스킬루스Æschylus의 호기심이 벌 받았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다. 애스킬루스는 자기가 어디선가 집이 무너져 깔려 죽으리라고 일러 주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그 비참할 운명을 미리 피하려고, 그날 온종일, 벗어진 대머리 그대로 시골의 벌판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거북이를 잡아 높이 날아가던 독수리가, 그의 대머리가 바위 꼭대기인 줄로 잘못 알고, 거북이를 바위에 부딪쳐 죽이려고 그만 애스킬루스의 머리 위에 그 거북이를 떨어뜨렸으므로, 애스킬루스의 머리는 깨어졌고, 거북이 집에 깔려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것은 의심 없이 한 가지 우연한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애스킬루수는 사실 죽으려고 그 벌판에 간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죽음을 피해 보기 위해서였고, 그 독수리도 사실상 시인의 머리 위에 제가 잡은 거북이를 떨어뜨린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고, 다만 바위에 내던져서 거북이가 죽으면 그 맛있는 고기를 먹으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대의 결과로, 거북이는 무사하였고 애스킬루스는 즉사하였다. 우리가 이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뜻밖에 생긴 우연사이겠지만, 높은 데에 계시는 하느님 섭리의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여러 가지 원인들의 상합相合으로 인해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겠으나, 점쟁이 미신을 따르는 인간을 벌하신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요셉의 모험은 그 다양성에 있어서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에로의 그 전환은 아주 경탄할 만한 일이다. 그를 죽이려다가 팔아버렸던 그의 형제들은 그가 총리대신이 된 것을 보고 경악하였고, 자기들이 그에게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그가 원한을 품고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말을 아니하였고. 다만,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파라오의 아버지로, 그의 온 집안의 주인으로, 그리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창세 45,8) 하며, ‘여러 형님의 공모로 내가 여기 오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이며, 여러 형님은 나를 거슬러 간계를 꾸몄으나, 하느님께서는 그 악을 선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하였다.

테오티모여, 이것을 보라. 요셉이 말하는바, 이 최고 섭리의 계획을 사람들은 행운이나, 우연한 운명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하느님을 섬기도록 섭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세상에서 생기는 일이 다 그러하니, 어떤 괴물의 존재는, 충만하고 완전한 일들을 더욱 존중케 하고 경탄을 자아내게 하며, 토론을 야기시켜 철학을 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좋은 생각을 내게도 한다. 종합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러한 모든 것은 마치 그림 속에 그려진 그늘과도 같아서, 고맙게도 그림의 색깔을 부각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