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마지막 기간인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날 로마 전례를 따르는 곳에서는 특별한 전통이 이어진다. 이러한 전통은 초대 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복음서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전승되었다. 이 전통은 예수님의 수난을 더욱 풍성하게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서 독특한 방식으로 예수님의 수난에 집중하고 기다리는 파스카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묵상할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수난(성지) 주일에 담긴 전통 안에서 일곱 가지의 특별함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새기며 묵상하도록 하자.(참조. Philip Kosloski, aleteia.org, 2021년 3월 24일*이미지-구글 검색)
1. 행렬
미사는 다른 주일과 달리 성대한 입당이나 간단한 입당의 행렬로 시작한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것인데, 이는 단순히 복음서에 기록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고 재현할 뿐만 아니라 천국을 상징하는 새 도읍 예루살렘으로 가는 우리 교회와 인생의 순례길, 그리고 지성소至聖所의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우리 자신의 일상적 행진이 담는다. 성당은 대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곳이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듯 우리의 눈과 마음도 하느님께로 드높인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르셨던 십자가의 길, 곧 갈바리 산으로 오르는 여정이기도 하다. 사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봉헌하시기 위해 십자가 산에 오르셨음을 상기하며 예수님을 따라 미사의 희생 제물을 봉헌하러 성전에 오른다.
2. 종려 나뭇가지
개선장군을 환영하는 관습이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중에 “수많은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마태 21,8) 우리가 알고 있는 종려 나뭇가지가 아니더라도 적절한 나뭇가지가 대신 사용될 수 있다. 이는 예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깔아놓음으로써 예수님께서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들어오시도록 그분을 환영하는 의미를 담는다. 어떤 나뭇가지를 구할 수 없어 물리적으로 손에 들 수 없다 하여도 성지聖枝 주일에 영적인 참여가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3. 사제의 빨간 색 제의
빨간색은 가톨릭교회의 전례 안에서 사랑과 열정, 그리고 불의 상징이며 희생의 피를 상징한다. 교회는 수난 주일을 비롯하여 성금요일,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된 모든 날, 그리고 성령강림절과 신앙을 위해 죽은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에 빨간색 제의를 입도록 규정한다. 빨간색은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거룩한 희생의 색이고,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하신 주님,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사도 2,3)로 사람들 위에 내려오신 성령의 색이며, 불같은 사랑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위해 피를 흘린 순교자들의 색이다.
4. 가려진 성상들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성목요일 만찬 미사 후부터로 자리를 잡아가지만, 많은 곳에서는 성지주일이나 그 이전부터 성당 안에 있는 성상들이 가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순절이라는 재계와 거룩한 시기에 가톨릭 신자들은 모든 것을 가리고 덮는다. 심지어 십자가까지도 가린다. 성금요일 십자가 경배 때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십자가를 보이는 예식을 제외하고 부활 전야 미사 때까지 성당에 있는 제대를 벗기고, 될 수 있으면 십자가를 비롯한 모든 성상이나 조각품들을 성당에서 가려 보이지 않게 하며, 심지어는 성당 밖으로 내가기까지 하는 오랜 관습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나 십자가의 길을 묘사한 14처 외의 모든 이미지에 해당하기도 한다. 미국 여러 성당에서는 사순 제5주일부터 이러한 관습을 지키고, 독일 같은 곳에서는 사순시기 내내 그렇게 하기도 하며 일반 가정(가정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기를 권고하지만, 대부분 성금요일의 수난 전례 때 십자가 경배를 위해 보인 십자가 외에 성목요일 만찬 미사 후부터 부활 전야 미사 때까지 성당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으로 축소되어 자리를 잡아간다. 모든 감각을 절제하며 예수님의 부활만을 고대하고, 극기와 재계齋戒로 사순시기를 지내다가 부활 성야에 모든 성상과 이미지들이 베일을 벗고 다시 드러나 복원되면서 우리의 기쁨과 희망이 찬란히 빛나는 부활 시기로 전환된다.(참조.https://blog.naver.com/kbenji/memo/222692886064)
5. 긴 복음–수난기
주일의 복음은 일반적으로 한두 대목이지만, 성지주일의 복음은 길어서 긴 시간 서 있어야 하는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다소 힘들 수 있고 이를 불평하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초대 교회의 전례에서는 매주 주일의 복음이 그렇게 길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거나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 최초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상당수가 유다인들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회당 전례가 미사의 모델이 된 셈이라 할 수 있다. 유다인들은 주일을 이어가며 성경의 내용을 들었고, 한 부분은 모세오경이라 일컬어지는 율법서에서, 그리고 다른 한 부분은 예언서라 부르는 부분에서 들었다. 이제 우리 교회는 구약의 한 부분과 그에 대한 화답으로서 시편, 그리고 신약의 서간문과 복음으로 이어지는 말씀의 식탁을 거행한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활을 목전에 둔 시점에 우리를 “끝까지 사랑”(요한 13,1)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수난기 전체를 듣는 것은 그렇게 무리가 아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로마 10,17)
6. 수난기의 낭독에서 일부 신자나 회중의 참여
성주간은 교회의 전례력에서 가장 성스러운 시기이다. 이 주간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집중되어 있다. 신자들은 한 주 내내 예수님과 동행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예수님의 수난기를 낭독하는 데서부터 교회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한다. 더구나 교회의 온 백성이 한 목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태 27,23) 하고 크게 외칠 때 이미 우리를 앞서간 세대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까지도 포함하여 우리 모두의 죄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그 죄가 우리의 주님을 어떻게 못 박았는지 되새긴다.
7. 축복된 성지 가지
성지 주일의 미사 후에 우리는 성지 가지 하나씩을 들고 집에 돌아온다. 이는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잡신을 쫓거나 그 위해로부터 보호되기 위한 부적符籍이 아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면서 예수님을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모셔 들이기 위한 상징으로서 사제의 축복이 담긴 가지이다. 이는 집 안 적당한 기도의 장소에 소중히 모셨다가 이듬해의 사순 시기를 시작할 때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뉘우치며 다시 우리 이마에 얹는 재(灰)가 된다.
본당에 있으면서 유익한 정보로 인해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훈화에도 도움을 줄 수가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