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은 성녀 마르타 축일?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by Johannes Vermeer, 1655년

오랫동안 로마 전례력에서는 7월 29일을 성녀 마르타의 기념일로 지내왔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극진히 대접했던 마르타 성녀는 집사, 요리사, 영양사, 주부, 하녀, 독신 여성들, 여관 주인, 여행자의 수호성인이다. 교황에 즉위한 이래 교황청이 아닌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숙식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마르타 성녀가 각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7월 29일을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요한 11,1)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로 지낸다. 마리아는 영적인 연구와 가르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고, 라자로는 무덤 파는 이들(gravediggers)의 수호성인이다.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의 경축에 관한 교령’(*아래 첨부문서 참조)에 따라 2021년 이후부터는 7월 29일이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이 되었다. 이렇게 성녀 마르타 기념일이 3남매 기념일로 바뀐 것은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라자로라는 3남매 중 마리아가 7월 22일에 기념하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참조. 7월 22일, http://benjikim.com/?p=4903)와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음에 따라서 마르타의 기념일만을 7월 29일에 따로 지내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3남매를 함께 기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근거를 최근에 찾아내었고, 이에 교회가 교령으로 이를 확인하였다.

참고로, 전례력에서 성녀 마르타의 기념을 시작한 것은 1262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인물로 여기고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 8일 후인 7월 29일에 마르타를 따로 기념하였으며, 정교회에서는 수백 년 동안 두 자매의 축일을 한 날에 기념해오기도 하였다. 최근의 연구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라자로의 누이인 마리아라는 두 마리아를 분리하고 마르타의 여동생은 ‘베타니아의 마리아(Mary of Bethany)’로 따로 부른다.

교령은 “주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참조. 요한 11,3) 하셨음을 밝히면서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기록하고, (이러한 결정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설명한다: 「라틴 교회의 전승에서 마리아의 신원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다음 나타나셨던 막달레나인지, 마르타의 동생인지, 주님께서 죄를 용서하셨던 죄 많은 여자인지 불확실했다. 따라서 로마 보편 전례력은 7월 29일을 마르타의 기념일만 수록하도록 했다. 하지만 오늘날 「로마 순교록」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7월 29일과) 같은 날 마리아와 라자로도 기념하는 근거를 입증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았다. 또한 일부 특정 (지역) 전례력은 3남매를 이미 같은 날 함께 기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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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의 경축에 관한 교령

문서 번호 35/21

 주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와 가족 같은 친근한 우정을 나누셨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확언한다. 마르타는 열렬한 환대로 주님을 맞아들이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였으며, 죽어 묻혀 있던 라자로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시자 즉시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라틴 교회의 전통에서는 마리아의 신원에 대한 의혹 때문에, 곧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뒤에 나타나신 막달레나인지, 마르타의 자매인지,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신 죄지은 여인인지 불확실하여 로마 전례력의 7월 29일에 마르타만 수록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최근 연구로 그 의혹이 풀려, 개정된 「로마 순교록」에서 증언하는 대로 같은 날 마리아와 라자로도 함께 기념한다. 다른 개별 전례력에서도 이 세 형제를 같은 날 경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그들이 주 예수님을 자기네 집에 모셔 들이고 당신께서 바로 부활이며 생명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는 복음의 매우 중요한 증언을 숙고하신 뒤, 경신성사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로마 보편 전례력의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의 기념일을 수록하도록 결정하셨다.

 이렇게 지정된 이 기념일은 미사와 시간 전례(성무일도)의 거행을 위한 모든 전례력과 전례서에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 교령에 첨부된 전례문에서 바뀌고 덧붙인 부분들은 주교회의가 번역문을 마련하고 승인한 다음에 경신성사성의 추인을 받아 발행해야 한다.

 이에 반대되는 것은 무효이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2021년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장관 로베르 사라 추기경

차관 아서 로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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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는 사랑의 법으로 세 직무를 나누어 받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집에서 마르타의 봉사, 마리아의 관상, 라자로의 참회, 이 세 가지를 사랑의 법으로 어떻게 나누어 받는지 생각해 봅시다. 완전한 영혼을 지닌 이는 누구나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받은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이들은 거룩한 관상에 전념하고, 어떤 이들은 형제들을 섬기는 데 헌신하며, 어떤 이들은 죄의 상처를 안고 무덤 속에 잠든 사람처럼 쓰라린 마음으로 살아온 날들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으로 마리아는 자신의 하느님을 드높이 경건하게 체험하고, 마르타는 너그럽고 자비롭게 이웃을 섬기며, 라자로는 겸허하게 자신을 가련히 여겨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비록 이 성읍에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 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의로움으로 제 목숨만 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들은 아들도 딸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현혹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디 어느 누구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어떤 관리나 운영을 위임받지 못한 이들은 모두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거나, 분명히 라자로와 함께 무덤에 갇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 마르타는 많은 일을 걱정하고 많은 이를 위하여 염려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그대는 둘 가운데 하나는 해야 할 것입니다. 걱정해야 할 일이 전혀 없으면, 주님 안에서 더욱더 기뻐해야 합니다. 그대가 아직은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일을 걱정 하지 말고, 바로 그 예언자가 말하는 대로 그대 자신에 대해서만 걱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마르타 자신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으로, 그는 충실한 사람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순수한 지향으로 해야 충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올바른 행위가 됩니다. 제 눈으로 많은 것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이득을 얻습니다. 제 마음대로만 움직이는 사람들이 봉헌하는 모든 것은 더럽혀져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뜻은 그 봉헌물에서 드러납니다.

이제 저와 함께 사랑 노래를 들으러 오십시오. 신랑이 신부를 어떻게 부르는지 봅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떠한 것도 빼놓지 않고, 여기에 어떠한 것도 더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랑이 말합니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나의 비둘기여!”(아가 2,10.13) 주님의 이득만을 바라며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충실하게 내어놓는 이가 바로 애인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작은 일 하나일지라도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버릴 때마다. 그는 영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으로 비추듯 찬란히 빛나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어, 주님의 영광이 빛나는 얼굴로 드러나는 이가 아름다운 여인 아니겠습니까? 마치 돌 속에 묻힌 것처럼, 바위틈에서, 벼랑의 동굴 속에서 울며 탄식하는 이가 비둘기 아니겠습니까?(성무일도 독서기도 제2독서,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설교집」에서-설교 3,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승천에 관하여, 4.5: PL 183, 42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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