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에서는 우리말로 ‘베네딕토’라고 표기하지만,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나 올리베타노 수도회의 홈페이지에서는 ‘베네딕도’라고 표기하므로 혼용하였다. 몬테카시노에서 기도 중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진 성인의 상징은 깨어진 컵, 까마귀, 종, 아빠스 문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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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생애
그레고리우스 1세 교황의 ‘대화집’ 제2권에 따르면, 베네딕도 성인은 480년경 이탈리아 누르치아(Norcia)의 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학업을 위해 유모와 함께 로마로 유학갔던 베네딕도 성인은 환락과 퇴폐가 만연했던 로마 생활에 염증을 느껴 곧 로마를 떠난다.
그는 로마에서 멀지 않은 엔피테(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간다. 거기서 기적을 행한 후 사람들을 피해 더욱 고독한 삶을 살려고 수비아코(Subiaco) 계곡의 천연 동굴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거룩한 동굴)에 은거하여 철저한 고독 속에 3년간 은수생활을 하게 되고, 거기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한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인근의 비코바로(Vicovaro)라는 수도 공동체의 원장이 되어 수도생활의 개혁을 시도한다. 그러자 수도승들의 반대에 부딪혀 다시 수비아코 계곡으로 돌아와 각각 12명으로 구성된 12개의 작은 수도 공동체를 설립한다.
그 후 인근 본당신부의 시기심으로 인해 또 한 번 곤경에 처하게 된다.
심각한 반대와 불행을 극복한 베네딕도 성인은 수비아코를 떠나 몬테카시노(Montecassino, 카시노 산)로 간다. 이 산 위에 수도원을 세워 본격적으로 공동체를 지도한다. 여기서 생애 말기에 몬테카시노 수도 공동체를 위해 규칙서를 하나 저술한다. 이것이 바로 ‘베네딕도 규칙’(Regular Benedicti)이다. 이 규칙은 이후 서방 수도승 생활의 초석이 되었다.
베네딕도 성인은 547년경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품으로 되돌아가셨다.(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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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분 참이신 그리스도를 찾고 섬기는
존경하올 저의 선임자이신 성 대 그레고리오(St. Gregory the Great)께서는 베네딕토와 같은 수도자로서, 또한 베네딕토 성인의 유명한 전기 작가로서 노르시아 출신 성인의 원래 가족을 불러일으켜 하느님을 향한 큰 믿음과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분위기 안에서 “오직 한 분 참이신 그리스도를 찾고 섬기는”(성 베네딕토 기념 미사 감사송) 데 온전히 투신하신 분의 삶의 기초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피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성인의 영적인 노력은 인생의 도전에 직면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해갔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젊은 베네딕토를 세속적인 지식과 소유에 대한 환상을 떨쳐 십자가의 지혜를 배우며 오직 그리스도께만 순종하도록 그를 이끌어 갔습니다. 노르시아에서 로마로, 아필레에서 수비아코로, 베네딕토의 영적인 여정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열망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이러한 갈망은 ‘사크로 스페코’ 동굴에서 살았던 3년 동안 더욱 강화되었고 커졌습니다. “성인께서는 거기서 그리스도인 완덕의 견고한 기초를 놓았으며, 훗날 그 기초 위에 엄청나게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교황 비오 12세께서 1947년 3월 21일에 성 베네딕토를 두고 발표하신 공식 서한 ‘밝은 빛 – Fulgens radiatur’에서): My revered Predecessor, St Gregory the Great, a Benedictine monk and celebrated biographer of St Benedict, invited us to discern the basis of a life wholly dedicated to “seeking and serving Christ, the one true Saviour” (Preface of the Mass of St Benedict), in the atmosphere of great faith in God and intense love for his law which motivated the original family of the saint from Norcia. This spiritual striving, which grew and developed as he faced the challenges of life, soon led the young man to foresake the illusions of worldy knowledge and possessions to devote himself to learning the wisdom of the Cross and to being conformed to Christ alone. From Norcia to Rome, from Affile to Subiaco, Benedict’s spiritual journey was guided by the one desire to please Christ. This longing was strengthened and increased during the three years he lived in the grotto of the Sacro Speco, when “he laid those solid foundations of Christian perfection on which he could later build an edifice of extraordinary height.”(Pius XII, Fulgens radiatur, 21 March 1947)
수비아코의 흙 속에 자신을 묻는 밀알
“(성인의) 그리스도와 오래되고 친밀한 일치는 ‘성령의 영감이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계획과 목표’(같은 책)를 수행하도록 자기 주위에 다른 형제들이 모이도록 부추겼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하느님의 빛으로 믿음을 찾는 가난한 목자들과 주님의 길에서 지침이 필요한 이들에게 횃불이자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고독과 힘든 시련의 기간을 보낸 후, 1천 500년 전. 겨우 스무 살이었던 성인은 사크로 스페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비아코에 최초의 베네딕토 수도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렇게 수비아코의 흙 속에 자신을 묻는 밀알이 되기를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보속하면서 성인은 새로운 봉헌 생활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어 갔습니다.(1999년 7월 7일 유럽의 수호성인인 성 베네딕토 축일에 수비아코 수도원장에게 보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메시지에서): “His prolonged and intimate union with Christ prompted him to gather other brothers around him in order to carry out “those great designs and goals to which he had been called by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ibid.). Illumined by divine light, Benedict became a beacon and guide for poor shepherds in search of faith and for devout people who needed direction in the way of the Lord. After a further period of solitude and difficult trials, 1,500 years ago, when he was barely 20 years old, he founded the first Benedictine monastery at Subiaco, not far from the Sacro Speco. In this way the grain of wheat that had chosen to hide itself in the soil of Subiaco and to waste away in penance for love of Christ, gave rise to a new model of consecrated life, becoming a fruitful ear of wheat.” – from the “Message Of John Paul II to the Abbot of Subiaco on the Occasion of the Feast of St. Benedict, Patron Of Europe” (from the Vatican, July 7,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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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다
우선 무슨 선행을 시작하든지 그것을 마치기 위해 주님께 간절한 기도로써 청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신 주님께서 우리의 악행 때문에 한 번이라도 상심하시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언제나 우리 안에 주어진 선에 따라 그분을 섬겨, 아버지께서 분노하시어 당신 아들에게서 상속권을 박탈할 뿐 아니라 우리 악행 때문에 격분한 무서운 주인으로서 당신 영광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극악한 종들에게 영벌을 주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침내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로마 13,11) 하신 성서의 말씀에 자극을 받아 일어나도록 하자. 우리는 하느님의 빛을 향해 눈을 뜨고 주의를 다하여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시며 훈계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니,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히브 3,7.15) 하시고, 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23;7,16 루카 8,8;14,35) 하시면서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신 바를 들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러면 (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아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주님 경외함을 가르쳐 주마.”(시편 34,12) “빛이 너희 가운데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요한 12,35) 하시는 것이다.
주께서 이 말씀을 백성의 무리에게 외치시고 그들 가운데서 당신 일꾼을 찾으시며, “생명을 원하고 좋은 날들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말씀하신다. 만일 내가 이 말씀을 듣고 “저로소이다.”라고 대답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만일 네가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거든, 네 혀는 악을 피하고 네 입술은 거짓된 말들을 삼가라. 사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아서 뒤따라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이대로 행한다면 내 눈은 너희를 바라보고 내 귀는 너희의 기도를 들을 것이며, “너희가 나를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 있노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친애하는 형제들아,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보다 우리에게 더 반가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보라, 주께서 당신 자애로써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신다. 우리는 신앙과 선행의 실천으로 허리를 묶고 복음 성서의 인도함을 따라 주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우리를 당신 나라로 부르시는 주님을 뵈옵도록 하자. 만일 우리가 그분 나라의 장막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선행으로 달리지 않고는 결코 그곳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분리하여 지옥으로 이끄는 쓰고 나쁜 열정이 있듯이, 악습에서 분리하여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좋은 열정도 있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지극히 열렬한 사랑으로 이런 열정을 실천할 것이다. 즉,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 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복종하고, 아무도 자기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성 베네딕토 아빠스의 ‘수도 규칙’에서, 성무일도 독서기도 제2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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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사람
성 베네딕도(480?~547?)는 사실상 가리워진 인물이다. 천생 수도승인 그는 자기 업적의 뒤편으로 물러서서 자기를 가리는 데 상당히 성공한 편이다. 그렇다고 우리 눈에 완전히 숨어 버리지는 못했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540~604)이 남긴 전기 때문이다(「대화집」 제2권). 그리고 스스로 남긴 유일한 작품인 「수도 규칙」 역시, 깊은 눈매를 지닌 이들에게는 그의 웅숭깊은 사람됨을 엿보게 해 준다.
출세 수단으로서의 학문 거부
어려서부터 「노인의 마음」(cor senile)을 지녔던 베네딕도는 이탈리아 중부 누르시아의 넉넉한 집안 출신으로, 젊어서 공부를 위해 로마로 떠났다. 그러나 일체의 학업에 몹시 환멸을 느낀 그는 중도에 공부를 작파한다. 출세와 향락의 수단으로서의 학문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참된 출세, 즉 「출세간(出世間)」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는데, 그레고리우스는 이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분은 유식한 분이시면서도 무식한 사람이 되셨고, 지혜로운 분이시면서도 무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은둔하셨다』(「대화집」 2, 1).
세상 지식을 초월하여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신령한 지혜의 길, 이른바 「절학무우(絶學無憂, 「노자」 20)」의 영적 여정에 접어든 것이다. 이어지는 「대화집」의 이야기는 수많은 기적들로 가득 차 있어 자칫 현대인의 눈에는 가소롭게 여겨지기가 십상이지만, 성서와 고대 교부들의 어법에 밝은 사람이면 그 기적 이야기들이 깊은 속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느님의 말씀은 신약 시대에서는 성인들을 통해 현현(顯現)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 말씀의 현현이었듯,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 신비의 현현은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몸과 삶이다. 그레고리우스에게 있어서 베네딕도는 바로 그런, 하느님 말씀의 투명하고도 빛나는 반영이었다.
그래서 그는 베네딕도를 「하느님의 사람」(vir Dei)라고 부르며, 그가 행한 수많은 기적 이야기를 통해 구약과 신약 성서의 말씀이 어떻게 면면히 한 인간의 삶에 육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첫 기적은 로마에서 물러나 유모와 함께 한적한 마을에 정착하여 살 때 생겼다. 유모가 빌려온 체가 떨어져 두 조각으로 부서지고, 유모의 눈물에 측은지심이 북받친 베네딕도가 기도로써 체를 원상 복귀한 것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마을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된 베네딕도는, 이 찬사를 피해 본격적으로 수행자의 길에 접어든다.
독살 음모, 사랑으로 감싸
수비아코 골짜기의 한 동굴에서 3년간 은수 생활에 정진하며 가혹한 영적 투쟁 끝에 마침내 믿음직한 영적 스승으로 드러난 그는 인근 수도원의 아빠스로 불려간다. 그러나 느슨한 생활에 익숙해있던 그곳 수도승들은 자기들이 모셔온 새 아빠스의 복음적 긴장과 활력을 견딜 수 없어 독살 음모를 꾸미게 된다.
독을 탄 포도주 잔이 그의 강복으로 깨어져 고약한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난 순간에도 그는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화한 얼굴과 평온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서, 『하느님 안전에서 당신 자신과 함께 홀로 지냈다』.
그러나 이렇게 공명심(체의 기적으로 말미암은 찬사), 육욕, 그리고 분노와 공격성이라는 내면의 적을 극복한 베네딕도 곁에는 이내 수많은 제자가 몰려들고, 그는 수비아코 골짜기에 열두 수도원을 짓고 형제들의 안내자가 된다. 그러나 시기심에 불탄 인근의 한 사제가 그를 독살하고 형제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기에 이른다.
베네딕도는 다시금 맞은 이 시험에서 이전보다 월등히 큰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니, 독살 음모가 탄로난 후에도 『자기 자신보다 그 불행한 사람을 위해 더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베네딕도가 마침내 몬테 카시노로 옮겨와서 「산 위의 마을」과도 같은 대수도원을 짓게 된 때는 이렇게 악습과 싸우는 시기가 모두 끝나고 영적인 절정기를 맞았을 때였다.
「대화집」은 이후에도 여러 기적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누이 스콜라스티카 일화는 참으로 아름답다. 인근 수녀원의 책임자로 있던 누이가 찾아와, 둘은 수도원 밖의 한 집에서 밤이 이슥해지도록 거룩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지 말고 밤새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청하자 펄쩍 뛰는 오빠 앞에서 누이는 천연스레 기도를 바치고, 그러자 마른하늘에 난데없이 천둥 번개와 함께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이리하여 거룩한 오누이는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레고리우스는 스콜라스티카가 베네딕도보다 『더 강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맺고 있다. 『더 많이 사랑하였으므로 더 능했도다』. 복음적 강조가 묻어나는 의미심장한 유머가 아닐 수 없다.
규칙서에 임시성 부여
그레고리우스는 「베네딕도의 규칙서」를 두고 그 단순명쾌한 필치와 함께 무엇보다 「훌륭한 분별」을 상찬한다. 사실 그의 규칙서는 많은 부분 「스승의 규칙서」(익명의 「스승」을 일인칭 주어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 그리 부른다)의 발췌 요약이다. 그리 길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수도 생활의 모든 면을 세세히 규정하려 든 「스승」과 달리, 자기 규칙서에 일종의 임시성을 부여했다. 큰 줄기만 규정하고, 나머지 세세한 부분은 다양한 지역 수도원의 아빠스들 재량에 맡긴 것이다.
사실 타인의 분별력을 신뢰해 주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큰 분별력일 것이다. 바로 이런 「임시성」으로 말미암아 「베네딕도 규칙서」가 가장 널리 그리고 오래 지속된 규칙서가 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얼굴 없는 성인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 흩어져 다양한 모습으로 베네딕도의 정신과 규칙을 살고 있는 수많은 베네딕도 회원들의 삶이야말로 「얼굴 없는 성인」인 베네딕도의 얼굴을 가장 잘 비추어주는 거울인지도 모른다.(이연학 신부, 가톨릭신문, 2003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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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넘어서는 노동, 베네딕토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성인은 ‘노동’에 대한 특별한 영성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그레고리오 교황이 쓴 전기에는 이런 기적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한 어느 콥트 사람이 끝에 낫이 달린 긴 막대기로 연못가의 덤불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있었다지요. 그러다 쇠로 만든 낫이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그 막대기를 물속에 집어넣자 낫이 막대기 끝에 다시 원래대로 붙었답니다. 성인은 이 연장을 다시 콥트 사람들에게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Ecce labora et noli contristari. 자, 일하게. 그리고 이제 슬퍼하지 말게!”
이 문장은 오늘날에도 수도회마다 일하는 공간의 벽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이 문장은 일이나 노동에 대한 베네딕토 성인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일은 우리를 슬픔에서 해방시키고, 부질없는 ‘자기연민’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지요.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규칙>을 잠깐 읽어 볼까요.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할 것이다 … 그러나 만일 지역의 필요성이나 가난함 때문에 직접 곡식을 추수해야 할 경우라도 불만스러워하지 말 것이니, 우리의 교부들과 사도들처럼 자신의 손으로 노동하면서 살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심한 사람들 때문에 모든 일을 적절하게 행할 것이다. … 병들거나 허약한 형제들에게는 한가하지도 않고 과도한 일에 짓눌려 도망치지 않을 정도의 일이나 기술을 맡길 것이다. 그들의 연약함을 고려하는 것은 아빠스가 할 일이다”(규칙 48).
[* 여기서 아빠스(라틴어: Abbas)는 라틴어로 아버지를 뜻하며,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의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들과 일부 특정 수도회들에서 속한 자치 수도원의 원장을 일컫는 명칭이다. 아빠스는 “아버지”라는 의미와 “원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나 시리아 등에서는 “영적 아버지”, “영적 스승”, “사부”의 의미로 통용된다. 특히 은수자들의 스승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다른 말로는 대수도원장(大修道院長)이라고 부른다. 여성형은 ‘아빠티사’이다.]
성인은 일하는 것, 특히 손으로 하는 노동을 귀하게 여겼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용품들을 자기 힘으로 생산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을 직접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 독서를 하는 것처럼 매일 자신의 손으로 노동하는 것은 영성적 의미를 갖습니다. 수도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어떤 환상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쉬지 않고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데, 노동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관상생활을 잘못하면,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피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한가한 사람은 일에서나 기도에서나 한곳에 몰두하지 못하여, 결국 하느님에게서 도망치거나 골똘히 자신만 생각하는 ‘종교적 나르시즘’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실제적인 것이고, 생활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요.
육체노동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관상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일하는 모습은 곧 우리 영혼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꼬이고 얽히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계속 실패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거나 잘못된 환상이나 쓸데없는 죄의식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언제나 내면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성인은 가르칩니다.
또한 노동은 그리스도교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헌신적인 봉사, 섬세함, 이 세상 사물들에 대한 경외감, 겸손 등을 배울 수 있는데, 베네딕토 성인은 당가(當家, 수도원 살림을 맡는 수도자)에게 수도원의 재산과 기구들을 제대 위에 놓인 거룩한 물건처럼 보라고 하였다지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알려준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물 안에서 빛나십니다.
그리고 육체노동은 정신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부정적인 느낌과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질서를 제공하며, 하느님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오직 적당한 양의 노동을 할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따라서 누구도 일에 대한 압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수도자들은 자신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일을 통하여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일을 통하여 이 세상을 보호하고 다듬어가도록 하신다는 것이지요.
베네딕토 성인은 480-490년경에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나 547-575년경에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했습니다. 그분이 활동하시던 시기는 평화가 깨어진 불안정한 시대였지요. 로마와 비잔틴 제국이 분열되고,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들판을 약탈하여 농사를 지어도 허망한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 속에서 우울함과 황량함이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지요.
이 절망의 시대에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원을 창립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그가 설립한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은 더 이상 불안정하게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머무는 고요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불안정한 시대를 안정시키는 데 한몫을 하였습니다. 그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거슬러 사람들 속에 있는 착한 뜻과 거룩함을 통해 수도원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베네딕토가 서유럽에서 처음 수도원을 건설한 사람은 아닙니다. 410년경에 칸느 부근에 설립된 레린 수도회가 관상 수도원의 중심이 되었고, 카시안은 마르세유 근교에 동방수도회를 본받아 415년경 남자 수도원과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였습니다. 베네딕토의 탁월한 점이라면 오늘날 많은 수도원의 모범이 된 <수도규칙>을 마련했다는 점인데, 예전부터 전해오던 <스승의 규칙>과 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염세적 관점을 버리고, 이 세상의 사물과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친절한 정신을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란 통제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맘대로 돌아다닌다고 믿어서 수도자들에게 행할 것을 세세히 알려주고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자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이 한 마음, 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초기교회의 모범을 따라서 수도자들 사이에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관계가 맺어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규칙을 마련했으며, 여기엔 남성들의 엄격함과 여성의 자비가 성공적으로 종합되었습니다.
그가 마련한 수도규칙의 목표는 윤리적 삶을 살도록 촉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었지요. 즉 베네딕토가 생각한 수도생활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을 찾는 것, 종교적 그리움을 채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친절하기를 권하던 베네딕토는 ‘사람’에게 주목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아가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들과 하느님 안에서 함께 머무는 것들이 수도규칙의 관심사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더불어 노동한다는 것은 곧 사람 안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내 생계를 돕고 다른 이에게 봉사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나누는 노동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상이 모두 수도원입니다. 우리 가정이 수도공동체이며, 내가 일하는 현장이 또 다른 수도원입니다. 일상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며 자신을 수련하는 삶, 그것이 곧 수도생활입니다.(한상봉, 가톨릭일꾼, 2017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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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성인 소개(영문)
St. Benedict was born around 480 in Nursia, Italy, and is well known for his Western religious father and patron saint of Europe, and his book The Water Rule.
While studying in Rome as a young man, he becomes disillusioned with the confusion and indulgence of urban life and goes to the wilderness. The saints initially lived as a silver water in Enfidé, then settled in Subiyako, where they were supplied with food from another silver water, and practiced in a cave for three years. Later, when his fame became known, he was invited to become the head of the religious community at Vikovaro, but was threatened with murder for demanding strict rules from them. So I come back to Subiyako. After that, as his followers flocked like a cloud, Subiyako became the center of spirituality and learning.
From this point on, Benedict began to change his life into a communal life. With the aim of a’abbey’ life for fraternal unity and common liturgical life, that life is finally embodied in Monte Cassino. He then established 12 more monasteries and wrote <Monumentary Rules>, which will be the most important texts of Western religious life in the future. The saint ascended from Monte Cassino on March 21, 547. It is reported that he died in front of the church altar, wearing shoes and praying with his arms wide open.
Several provinces have celebrated his feast on July 11 from the end of the 8th century, and on October 24, 1964, Pope Paul VI, together with St. Cirillo and Methodius, declared St. Benedictine as the patron saint of Europe. His symbols include a black monk, a rule book (book), a staff, a crow holding a bread, and a venomous (snake) chalice.
The’Benedic Order’ is a generic term for the congregations that follow his capital rules around the world and has the character of’Confederate’. The Benedictines scattered in each region do not have a subordination relationship with the Benedictines in any one region, but operate independently while observing all the Order of St. Benedictines equally. However, it distinguishes among the many Benedictines scattered around the world under the sub-concept of’Aquarius Congregation’. The first purpose of the Benedictine is to live in a thorough religious life through community life while staying in a certain place. However, depending on the needs of the local church, they also engage in various activities such as education, academics, and missionary activities.
Among these are our Olivetano Association, Solem Association, Subiaco Association, Monte Cassino Association, Otilia Association, Camaldoli Association, Silvestro Association, and Ballumbrosa Association. (The Cistercians and the Umryul Cistercians do not belong to the Benedic City, but the Benedic also follows the rules of the capital.)
And most of all, <Among the Rules>, written by a saint, has not only established itself as a cornerstone of Western religious life due to its wide adaptability, moderation, and discernment, but also has been used by many religious people from time to time to the present day. It has a profound effect. Bosch, a French bishop and theologian in the 17th century, clearly sees its characteristics as follows:
“This rule is an outline of the Christian spirit, a comprehensive and mystical summary of the whole teaching of the gospel, a summary of all the teachings of the Holy Fathers, a summary of every admonition of perfection. In it, wise and simplicity, modesty and courage, and strictness. There is remarkable reconciliation, freedom and dependence, where there is no more rectification, no more humility, no more enchanting, no more decisive command, no less obedience, no more solemn silence, no more words. It is graceful and full of strength, while weakness is encouraging, yet St. Benedict says that it is only the beginning for those who are bound to obey this rule and always live with a holy fear. .”(Jacques Veninue Bosch)
“‘We have to wake up
The time has already come to do it.’ Did
Inspired by the words of the Bible
Let’s get up.”(<Water Rules> Introduction, 8)
“Abandoning your will
The true King, the Lord Christ
Obedience to struggle for
You who hold strong and fine weapons,
I am now to you
This is what I mean.”(<Water Rules> Introduction,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