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어린이(파이디온, παιδίον)

신약성경 공관복음서에는 ‘어린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마태 18-19장, 마르 9-10장, 루카 9장·18장)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는 파이디온(παιδίον)으로, 주로 어린아이, 유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가정의 중심이며 가장 귀하게 보호받는 존재이다. 사랑과 관심은 자연스럽게 어린이에게 모이고, 어린이는 순수함과 희망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사회적 현실은 오늘과 크게 달랐다. 어린이는 아직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 보호와 양육의 대상이었으며, 사회적 지위나 법적 권리를 거의 갖지 못한 존재였다. 아직 율법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졌고, 경제적 생산이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는 만큼 공동체 안에서도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머물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마태 14,21) 이 표현은 여자와 어린이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라기보다, 당시 사회에서 대표권을 가진 성인 남성만을 공식적인 숫자로 헤아리던 관습을 보여준다. 그만큼 어린이는 사회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였고,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작은 사람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배경을 안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당신 곁, 제자들 한가운데 세우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3-4)
이어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품에 안으시며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려와 축복해주시기를 청했을 때, 제자들은 스승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며 그들을 막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며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느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손을 얹어 그들을 축복해주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이’는 누구이며,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는 흔히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씀을 천진난만함이나 순수함을 닮으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현대 사회에서 어린이는 사랑받고 보호받는 존재이기에 이러한 해석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특히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어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는 권고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어린이는 스스로 겸손해지려고 애쓰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 안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그 깊이가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신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가장 작은 존재,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를 공동체의 중심에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처럼 되어라.”는 말씀은 순진한 태도를 흉내 내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초대이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어라.”는 말씀 역시 겸손한 척하라는 뜻이 아니다. 명예도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자리, 가장 작은 이들의 자리까지 기꺼이 자신을 낮추라는 요구이다. 또한 “어린이를 받아들여라.”는 말씀은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그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는 명령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어린이는 단지 사회적으로 가장 작은 존재일 뿐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이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린이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부모의 손길을 신뢰하며 먹여 주고 이끌어 주는 이를 의지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존재 방식을 하느님 나라의 모습으로 제시하신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린이는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자신보다 크신 분께 의탁하는 존재이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역설을 더욱 깊게 드러낸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세상에서는 가장 작은 존재가 하느님 나라에서는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놀라운 선언이다.
복음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예수님께 찾아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 앞에 선다. 그러나 그 작은 존재들은 마침내 예수님의 품 안에서 하늘 나라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표징이 된다. 하느님 나라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손을 내밀어 도움을 받고, 받아들여지고, 품어지고, 사랑받는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교회의 모습을 밝혀준다. 교회는 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장 작은 사람이 중심에 서는 공동체이다. 높은 자리에서 다스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섬기는 공동체이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약함을 품어 주는 공동체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는 한 사람의 어린이임을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누구도 자신의 공로나 능력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받아들여짐으로 살아가고, 은총으로 살아가는 어린이들이다. 바로 그러한 은총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
※ 함께 읽기: 어린이·아동兒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