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칼라의 역사와 의미

로만 칼라(Roman collar)는 오늘날 가톨릭 사제와 성직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복장 가운데 하나다. 사제의 목을 둘러싼 작은 흰 띠는 그 어떤 말보다 먼저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로만 칼라를 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성직자로 알아본다.

그런데 이 작고 단순한 흰 띠가 처음부터 가톨릭 사제의 복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성직자들이 평신도와 구별되는 복장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중세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다. 성직자의 복장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화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단과 성직자 복장도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오늘날의 탈부착식 성직자 칼라(clerical collar)는 특히 19세기의 개신교 성직자 복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 도널드 맥클라우드(Donald McLeod)가 1865년경 글래스고에서 탈부착식 성직자 칼라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 형태의 칼라는 성공회를 비롯한 여러 개신교 교파로 확산되었고, 나아가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여러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옥스퍼드 운동(Oxford Movement)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존 케블(John Keble), 에드워드 부베리 푸지(Edward Bouverie Pusey),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성공회 안에서 교회의 전통과 성사, 전례의 중요성을 새롭게 일깨웠으며, 성직자의 가시적인 정체성과 전례적 복장에 대한 관심도 높였다. 뉴먼을 비롯한 일부 핵심 인물들은 훗날 가톨릭교회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로만 칼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언제, 누구에게서부터 시작되었는가보다 교회가 왜 성직자의 복장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917년 교회법전 제136조는 성직자가 지역의 합법적인 관습과 지역 직권자의 규정에 따라 품위 있는 성직자 복장을 착용하도록 규정하였다. 오늘날의 1983년 교회법전 역시 제284조에서 “성직자는 주교회의가 정한 규범과 합법적인 지역 관습에 따라 품위 있는 성직자 복장을 착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법이 로만 칼라라는 특정한 형태 자체를 보편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복장의 형태와 색상은 주교회의의 규정과 지역의 합법적인 관습에 맡겨져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주교회의의 보충 규범에 따라 전례 밖에서 검은색 정장과 로만 칼라를 사제의 통상적인 복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황청 성직자성이 1994년에 발표한 『사제의 생활과 직무 지침』 제66항은 이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 문서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성스럽고 초월적인 실재를 드러내는 외적 표지가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사제가 자신의 복장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사람이며 교회의 공적 봉사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2013년 개정판에서는 이 내용이 제61항으로 옮겨져 ‘교회 성직자 복장의 중요성과 의무적 성격’이라는 제목 아래 다시 강조되었다.

그러므로 로만 칼라는 단순히 사제에게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다. 그것은 사제가 누구인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가시적인 표지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사제가 옷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라는 것이 아니다. 2013년 지침은 오히려 사제가 무엇보다 자신의 삶과 행동으로 식별되어야 한다고 먼저 말한다. 복장은 그 정체성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또 하나의 표지일 뿐이다.

그렇다면 로만 칼라는 사제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봉헌과 정체성

로만 칼라는 사제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작은 표지다. 결혼반지가 한 사람이 사랑하는 이와 맺은 혼인의 약속을 드러내듯, 사제의 칼라는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신원을 일상 한가운데에서 드러낸다.

영성적으로 말한다면, 흰 칼라는 때로 사제에게 ‘노예 칼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굴욕의 노예 칼라가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드린 사람의 자유로운 예속을 뜻한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다.”라는 고백을 날마다 목에 걸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목 족쇄’이기도 하다. 사제를 억누르는 족쇄가 아니라, 사제의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만 매이지 않고 그리스도께 묶여 있도록 하는 사랑의 족쇄다. 내 뜻보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내 삶보다 맡겨진 이들의 삶을 먼저 돌아보도록 자신을 그분께 묶어 두는 것이다. 때로 그 칼라가 목을 조이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작은 불편함마저도 사제에게는 ‘일상의 보속’이 될 수 있다. 오늘도 내 뜻보다 그리스도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내 편안함보다 누군가의 필요와 구원을 먼저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작은 봉헌이다.

그러므로 로만 칼라는 단순한 복장이 아니다. 그것은 목에 거는 작은 고백이다.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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