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13)

3585. 하늘도 땅도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도 어디서나 당신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변명할 수 없게(로마 1,20 참조) 그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이 말을 그치지 않고 건넵니다.…제가 당신을 사랑할 때 제가 사랑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몸의 자태도 아니고 때의 아름다움도 아닙니다. 눈에 즐거운 빛의 찬란함도 아니고 온갖 노래의 달콤한 가락도 아니고 꽃과 향유와 향기의 입맞춤도 아니고 만나와 꿀도 아니고 안아서 흐뭇한 육신의 지체도 아닙니다. 저의 하느님을 사랑할 적에 제가 사랑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저는 어떤 빛, 어떤 음성, 어떤 향기, 어떤 음식, 어떤 포옹을 사랑합니다.(우리는 내적 사람의 감각을 갖추고 있으며 그 감각으로 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을 감지한다.…그 감각의 임무를 맡은 것은 눈동자의 정곡正鵠(고니 곡)도 아니고 귀의 열공裂空(찢을 열)도 아니고 코의 기통氣通도 아니고 미각의 식도食道도 아니고 그 어떤 물체적 촉각도 아니다. 그 감각에 힘입어서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안다.-신국론 11,27,2) 제 내면 인간의 빛, 소리, 향기, 음식, 포옹을 사랑합니다. 거기서는 공간이 담지 못하는 무엇이 제 영혼에게 반짝하고, 시간이 붙들지 못하는 무엇이 소리를 내고, 숨결이 흩어 보내지 못하는 무엇이 향내를 풍기고, 실컷 먹어도 줄지 않는 무엇이 맛을 내고, 흡족하고도 풀려버리지 않는 무엇이 사로잡고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을 사랑할 때 제가 사랑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10-6.8)

3586. ‘내 하느님에 관해서 내게 말해 다오. 너희가 하느님이 아니라면 그분에 관해서 뭔가 얘기해다오.’라고 했더니 그것들이 큰소리로 외쳐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내셨다!”(시편 99,3 참조-우주를 바라보노라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리라. ‘신이 나를 만들었다.’-Plotinus, Enneades, 3,2,3) 제 질문은 저의 지향으로 제기되었고, 그들이 갖춘 형상이 곧 그들의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로 저를 돌려세웠고 “너는 누구냐?”고 저한테 물었습니다.…내적 인간(homo interior, 라틴어법상 summus mons가 ‘가장 높은 산’이 아니고 ‘산 꼭대기’와 같은 용례상 이 단어는 ‘내면 인간’이라기보다 ‘인간 내면’이라고 번역할 만하다. homo exterior 역시 ‘외적 인간’ 혹은 ‘인간 외면’이라는 번역이 적절하다.)은 외적 인간의 심부름을 거쳐서 이것들을 알아냈습니다.(10-6.9)

3587. (지성이 감관으로 받아들인 감각적 소여eius vocem acceptam foris를, 지성을 비추는 신적인 광명에 비추어보면서intus cum veritate conferunt 진선미의 판단을 내린다는 이론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설照明設’이라 한다.-no. 3596 참조)

3588. (하느님은 생명과 감각 그 위에서 찾아야 한다)눈에게 들으라고 명령하지 않고 귀에게 보라고 명령하는 일 없으며(10-7.11)

3589. 그러니까 내 자연 본성의 그 힘도 넘어서고 층계를 밟아서 나를 지으신 그분께로 올라가겠다.(그대 자신도 초월하라.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초월할 적에 그대는 추론하는 영혼을 초월하고 있음을! 그러니 이성의 원초적 광명이 밝혀져 있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라!-참된 종교 39,72)

3590. (교부가 구사한 용어를 살리는 뜻에서 memoria는 기억記憶memory, recordatio는 회상回想remind, reminiscentia는 상기想起remember로 구분해서 옮긴다)

3591. (사유cogitare라는 것은 앞 절에서는 기억에 축적된 감각적 자료를 ‘첨가하거나 삭제하거나 또한 변경하는vel augendo vel minuendo vel variando 활동으로, 이 절에서는 기억된 자료를 재호출하고recolenda 재검토하는retractanda’ 활동으로 정의되었다.)

3592. (표상imagines은 기억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매개체다.)

3593. (절대 망각의 상태란 존재하지 못한다. 인간의 모든 사유나 회상이나 발상은 기억된 소여를 자료로 해서만 엮어진다.)

3594. (당대에 수사학oratoria은 ‘토론의 기술peritia disputandi’로서 여하한 주제가 제시되어도 ‘세 가지 종류의 질문tria genera quaestionum’, 곧 다음 절에서 나오듯이 ‘존재하느냐?’, ‘무엇이냐?’, ‘어떤 것이냐?’를 천착하는 변증작업이 되었다.)

3595.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마음cor은 지성mens과 동일하지만 지성과 의지와 감성을 한데 일컫는 기능이다.)

3596. (추상적 개념rationes이 사유에 떠로은 경우 지성은 자기 내면에 거처하는 신적 광명Magister에 문의하여 진위와 확실성을 판단하고 수긍한다approbare는 설명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설照明設이다.-no.3587 참조)

3597. 이런 말을 하는 저를 비웃어도 상관없지만, 저 역시 저를 비웃는 사람을 두고 탄식하고 싶습니다.(10-12.19)

3598. 기억 자체가 곧 영혼ipsam memoriam vocantes animum입니다.(10-14.21)(인간의 기억 자체를 분석할수록 그 엄청난 능력capax에 놀라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은 곧 영혼’이라는 결론에 접근한다. 기억은 개념-이념-들을 간직하고 있을뿐더러, 지적 인식을 습득하는 방법까지도 기억하고 있고, 개념들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는 시비까지도 내포하고 있으며,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는 능력마저 있다. 이 성찰은 그의 ‘삼위일체론’의 사변적 근간을 이룬다.)

3599. (라틴어 관용구 illud in animo habeas는 ‘마음에 간직하라, 염두에 두라’, non fuit in animo는 ‘마음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elapsum est animo는 ‘정신없었다’라는 뜻이다.)

3600. 제 영혼의 격정이 욕망, 기쁨, 두려움 그리고 슬픔 네 가지라고 언급할 때는(스토아 이래로 이 네 감정은 ‘영혼의 질병aegritudines animi’으로 불려왔다.)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것이고, 그중 어느 것이든 나름대로 하나씩 그 고유한 종種과 유類에 따라서 분리를 하고 정의를 내림으로써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10-14.22)

3601. (기억하는 망각과 기억된 망각이 둘 다 현존한다)

3602. (망각이 무엇인지를 기억을 통해 아는 까닭에 교부는 망각이 기억의 완전한 결핍은 아님을 설명…어둠은 빛의 결핍이요 침묵은 소리의 결핍이지만-고백록 13권 2.3 참조-망각은 무지, 곧 지식의 완전 결핍과 동일하지 않다.)

3603. 주님, 제가 바로 여기서 고생을 하는 중입니다. 제 자신을 두고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저, 기억을 하는 저, 영혼인 저입니다.(10-16.25)

3604. (망각은 심리학적으로 기억에 인지되고 각인된 내용을 제거해버리는 작용이다)

3605. (‘숨어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기억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교부는 평생 동안 궁구하였다)

3606. 눈으로는 잃어버렸을지라도 기억으로는 간직하고 있었다는 말(10-18.27)

3607. 당신 곁에서, 당신을 두고, 당신 때문에 기뻐함(그리스도의 동정녀들의 즐거움은 그리스도를 두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뒤따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때문에 누리는 즐거움이다.-De Sancta virginitate 27)(10-22.32)

3608. 행복한 삶은 진리를 두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저의 빛이시여, 저의 낯을 살려주시는 저의 하느님, 그것은 진리이신 당신을 두고 기뻐함입니다.(10-23.33)

3609. 이다지도, 이다지도, 그러니까 이다지도 인간 정신은 이다지도 눈멀고 병들고 더럽고 치사하게 자리를 숨기고 싶어 합니다.(10-23.34)

3610. 주님, 보십시오! 제 기억 속에서 당신을 찾아 얼마나 넓은 공간을 돌아다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곳 밖에서는 당신을 발견 못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던 것이 아니면 당신께 관해서 아무것도 발견 못 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배워 알게된 그것으로부터 말입니다.(하느님은 기억의 대상도, 기억 자체도 아닌, 기억 자체가 작동하는 원리이시다)…제가 진리를 찾아 만난 곳에서 진리 자체이신 저의 하느님을 만나 뵈었습니다.ubi enim inveni veritatem ibi inveni deum meum, ipsam veritatem(이 진술은 일평생 ‘진리로서의 하느님’을 찾았고 또 만났음을 밝히는, 이 ‘고백록’의 결어에 해당한다.)

※ 총 13권 278장으로 이루어진 <고백록>을 권위 있게 맨 먼저 우리말로 소개해주신 분은 최민순 신부님으로서 1965년에 바오로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을 따랐다. 각 문단의 앞머리 번호는 원문에 없는 개인의 분류 번호이니 독자들은 괘념치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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