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절切/絕=絶

무엇인가를 끊는다는 뜻으로 글자를 찾으면 맨 먼저 연상되는 것이 ‘칼 도刀’가 들어가 있는 ‘끊을 절切’이다. 소리에 해당하는 ‘일곱 칠七’과 뜻에 해당하는 ‘칼 도刀’가 합쳐져 이루어졌다는 ‘끊을 절切’은 ‘일곱 칠七’ 역시 내려치는 칼질의 모양새이므로 칼날과 같은 것으로 무엇을 베어내고 잘라내어 동강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또한 ‘온통/모두 체切’라고도 새겨서 ‘일체一切’와 ‘일절一切’이 어떤 경우에 쓰이는가 하고 시험문제에 자주 등장했던 말이기도 하다. 전자는 ‘모든 것, 온갖 사물’(명사) ‘통틀어서, 모두’(부사)라는 말이고, 후자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할 때 쓰는 부사로서 ‘아주, 도무지, 전혀, 결코’라는 말이라고 외웠던 기억이 있다.

그 ‘절切’이라는 글자가 더해 생긴 낱말 ‘친절親切’에서 도무지 ‘절切’이 붙은 이유를 몰라 아주 오랫동안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절切’은 중국어 문법상 절단한다는 뜻으로는 1성으로 발음하고, 가깝다는 뜻으로는 4성으로 발음하는 것이어서, ‘친절親切’ 할 때의 ‘절’은 4성으로서 친하고 가까우며 우호적이고 정성스럽다는 것을 뜻하여 친절이라 한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 뜻으로 ‘절실切實’(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이 긴요하고 다급하다) ‘간절懇切’(정성 간懇-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지성스럽다) ‘애절哀切’(애가 타도록 견디기 어려운 상황) ‘절박切迫’(닥칠 박迫-급한 상황이 가깝게 다가옴) 하는 말들도 가능하게 된다. ‘친절親切’의 ‘절切’을 알아내기는 ‘은행銀行(bank)’이라는 낱말에 왜 ‘갈 행/항렬 항行’이 붙어있을까를 알아내는 것만큼 어려웠다.(*‘행/항行’에는 사고파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

‘끊을 절切’은 칼과 같은 것으로 어떤 사물을 끊어내고 잘라낸다는 뜻이 강하지만, 하던 일을 멈추거나, 더는 하지 않는다, 사람의 인연이나 관계와 같은 것을 끊는다고 할 때는 이와 달리 ‘끊을 절絶(=絕)’이라는 글자를 쓴다. 이는 ‘가는 실 사糸’ ‘칼 도刀’ 그리고 ‘꼬리/바랄/땅 이름 파巴’이거나 혹은 ‘알 란/난卵’의 오른쪽(병부 절卩)이 붙어있다고 보는 것인데, ‘사糸’ ‘도刀’는 당연히 연결된 상태를 끊는다는 점에서 ‘끊을 절絶(=絕)’이라는 글자 그대로라 할 것이다. 문제는 ‘파巴’나 ‘절卩’인데, 이는 두 글자 모두 사람이 꿇어앉아 있는 모양에서 온다. 이렇게 보면 ‘끊을 절絶(=絕)’은 무릎 꿇고 앉아 정성을 다해 무엇인가를 끊어낸다는 것이거나, 아니면 무릎을 꿇고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람으로써만 끊어지는 어떤 것이다. 사실 ‘파巴’라는 글자에는 ‘바라다’라는 뜻이 있기도 하다. 이런 글자들로 이루어진 ‘끊을 절絶(=絕)’은 뜻이 발전하여 ‘끊다, 끊어지다, 가로막다, 사이를 띄우다, 없애다, 멸망시키다, 건너다, 지나다, 뛰어나다, 빼어나다, 물이 마르다, 망하다, 숨이 그치다, 없다, 떨어지다, 결코, 몹시, 심히 등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닌다. 마치 우리 말에서 ‘끝내다’라는 말이 ‘끝내준다’라는 말로 나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끊을 절絶(=絕)’과 함께 만들어지는 말들은 거절拒絶(막을 거), 단절斷絶(끊을 단), 사절謝絶(사례할 사), 근절根絶(뿌리 근), 의절義絶(옳을 의), 애절哀絶(슬플 애), 처절悽絶(슬퍼할 처), 절연絶緣(인연 연), 절교絶交(사귈 교), 절망絶望(바랄 망), 절명絶命(목숨 명), 절필絶筆(붓 필), 절경絶景(경치/볕 경), 절대絶對(대답할 대-상대할 것이 없음), 절색絶色(빛 색-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미인), 절묘絶妙(묘할 묘), 절정絶頂(정수리/꼭대기 정), 절호絶好(좋을 호-더할 나위 없이 좋음), 절규絶叫(부르짖을 규), 절체절명絶體絶命(몸도 목숨도 다 되어 어쩔 수 없는 지경), 포복절도抱腹絶倒(배를 부여잡고 뒤집힐 정도로 몹시 웃음)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 안에서 온통 잘라내거나 베어버려야 할 것들이 있고, 단호하게 끊어야 할 것들도 있다는 것을 내심 잘 알고 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산다. 인연이나 미련도 그러하지만 못된 습성이 몸에 붙은 것은 참 질기다. ‘어쩔 수 없다’ 하거나 ‘그렇게 살다가 죽지 뭐’라고 하면서 포기하고 만다. 인간의 연약함이고 유약함이다. “자기 잘못을 감추는 자는 성공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고백하고 끊어 버리는 이는 자비를 얻는다.”(잠언 28,13) 하는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세월이 가면서 잘라내고 끊어내야 할 것들이 이미 여러 겹으로 꼬아져 질긴 실(糸)이 된 까닭일 것이다. 이를 끊으려면 무릎 꿇은 정성과 예리한 단호함으로 간절한 기도와 함께 끊어내야만 한다. 그러라고 나를 오늘 하루 더 살게 하시고, 어리석은 바보처럼 매번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시는 하느님은 그래서 참으로 인내의 하느님이시다.(20190122 *이미지-구글 ※ 참조-맺을 결結, http://benjikim.com/?p=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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