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장場

‘흙 토土’와 ‘볕 양昜’이 합쳐진 글자가 ‘마당 장場’이다. 볕이 잘 드는 곳에 흙을 평평하게 다져 넓게 만든 곳이고 뜰이다. ‘넓을 광廣’을 붙이면 광장廣場이 되고, 사람이 많이 모여 사고파는 ‘저자 시市’가 붙으면 시장市場이 되며, 일정한 곳이나 지역을 뜻한 ‘바 소所’가 붙으면 장소場所가 된다. 마당은 ‘맏+앙’인데, 이때 ‘맏’을 ‘마당 장場’을 뜻하는 우리말로, 혹은 땅이나 뭍(陸)으로 보거나 맏아들이나 맏딸 등에서처럼 ‘으뜸’, ‘큰’이라는 뜻으로 보고, ‘앙’을 장소를 일컫는 접미사로 본다면 마당은 볕 잘 드는 너른 터요 큰 공간이다. 마당은 대개 사적私的인 공간일 때 영어로 a yard, a court, a garden이며, a public square, a plaza처럼 많은 이에게 개방되고 열린 공간일 때 더 넓은 공적인 공간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ἀγορά(agora)에 그 뿌리를 둔다. 잠들지 않는 도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인 뉴욕 맨해튼 스트리트street와 애비뉴avenue의 교차점에는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가 있고, 이탈리아 피렌체의 중심에는 시뇨리아 피아짜Piazza della Signoria가 있으며, 모스크바에는 붉은광장이 있고, 북경에는 천안문광장,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에는 광화문광장이 있다.

한 집에서 마당은 식구들이나 외부인들이 거쳐서 나가고 들어오는 곳이면서 소통의 공간, 활동의 공간, 생활의 공간, 놀이의 공간이다. 평상 하나를 놓으면 쉼터의 공간이고, 장독대나 볏가리를 놓고 정화수를 올릴 작은 상을 놓으면 식생활의 기본을 비축하는 공간이자 신앙 공간이 되며, 병풍 하나를 두르면 잔치와 의례 공간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안팎으로 서비스 공간이자 주요 생활 공간, 다기능 복합 문화 공간을 넘어 마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을 구별할 때 질서의 공간이며, 꽃이나 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둘러 햇볕과 바람이 머물다 갈 때는 시간과 계절의 가늠 공간이자 시詩와 노래의 공간이다. 우물이나 지하수 펌프가 있던 시대까지만 해도 마당은 빨래터요 이웃과의 생명수 나눔이 있던 공간이고 몸을 정갈하게 하는 공간이며, 작업 공간이자 동물과 자연이 인간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마당은 이처럼 선사시대 움집 주변으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인간의 삶에 당연한 것이었다. 서양이 채움으로 그 터를 장식하고 동양이 비움으로 그 터를 두었어도 그 너른 터는 누구에게나 늘 넉넉한 공간이었다.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마당을 요즘 말로는 넓은 의미로 플랫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 주거에 익숙해지고, 마당이 없어지거나 아예 주차 공간으로 변해 마당을 잃은 지 오래된 우리로서, 더구나 서양식의 교육을 받은 우리로서는 늘 과목을 정하는데 뛰어난 선수이다. 시간을 정해 이것이 오고 그다음에는 저것이 와야 한다는 것에 너무도 오랜 시간 숙련된 우리는 마당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동안 일정한 양식이 있어 왔던 너른 터가 비어 있다고 생각할 때 불안해진다. 없어진 마당은 시급히 복구해야 하고, 시간과 순서에 얽매여 있던 마당은 차라리 비워야 한다. 비어 있는 마당에서는 우두커니 서거나 쪼그리고 앉아서라도 울타리 밖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간간이 말도 건네면서, 그리고 뜰에 핀 꽃들을 바라보면서 불안해하지 말고 미소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마당에 서서 내가 사는 집을 보고, 집 안에 앉아 마당을 바라봐야 한다. 어느 날, 지나던 풍물패가 들어오면 이 마당은 풍물 마당이 될 것이고,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뒷마당 앞마당 할 것 없이 뛰어다니면 놀이 마당이 될 것이며, 쑥대 끊어 연기 피우고 모두 툇마루에 누워 별을 세다 보면 이야기 마당이 되고 별빛 마당이 될 것이다. ‘마당’에 대해 숙고해야 하고 성찰하며 토론해야 한다.

『…돌담장이 수평선에 닿아서 검은 바다와 붉은 바다가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을 백성들은 그 언저리가 땅이 끝나고 하늘이 시작되는 자리라고 말했다. 바다를 달리는 물의 소리가 공간에 가득 찼고, 높이 나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맑고 고요한 날 물 위에 뜬 달무리가 흔들릴 때 별이 스칠 듯이 가까웠다.…(김훈, 흑산黑山, 학고재, 2013년 초판 7쇄, 82쪽)』

살레시오회의 창립자요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친구이며 스승이었던 돈 보스코는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들을 만나지 않았다. 빈 마당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이든 그곳에서 아이들을 만나 함께 놀다가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려 했고 이를 실현하려 했다. 어쩌면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살레시오회나 교육 마당은 이제 다시, 청소년이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빈 마당을 만들어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마당’은 그 상징적인 의미에서 현대어로 표현할 때 ‘도서관’과 대단히 유사한 개념이다. 도서관에서는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격차, 인종과 계층을 넘어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 그리고 유명한 이나 이름이 없는 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각자 자신의 꿈과 이상을 향해 자기만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똑같은 한 공간에서 모두 함께 같은 조건 아래 대단히 민주적으로 존재한다. “제임스 애덤스James Truslow Adams는 미국 의회 도서관을 가리켜 ‘민주주의가 그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모든 삶의 영역의 미국인들이 자유롭게 와서 공공 학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애덤스는 ‘(도서관)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확실한 사례다. 사람들 스스로가 쌓은 자원으로 마련된 수단,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대중 지성, 이 예가 우리 국민 생활의 모든 부문에 그대로 실현된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있는 현실이 되리라’라고 썼다.…애덤스가 미국은 ‘인류에게 내려진 독특하고 유일한 선물’이라고 쓴 까닭은 그 꿈이 ‘그 땅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더 낫고, 더 부유하고, 더 온전한 삶을 살아갈 기회가 누구에게나 자신의 역량이나 성취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우리는 오늘날 조건의 평등을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다. 계층, 인종, 민족, 신앙과 관계없이 사람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은 얼마 없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0년 12월, 350-351쪽·결론)

‘마당’은 다소 여성적인 의미로 각색하면 ‘우물’이 된다. 우물은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우물은 대지의 저 깊은 속마음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시원한 생수를 보존한다. 우물은 홀로 있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선물이며 겸손하고 자유로우며 관대함의 자리이다. 그런데도 우물은 파고 퍼내는 수고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우물은 깊이를 선뜻 짐작하지 못할 만큼 신비스러움을 지니는 조용함의 상징이다. 그런가 하면, 우물은 어느 공동체에나 활력의 매듭이 되고 만남의 자리가 되며 삶이 어우러지는 터전이고, 누군가는 물을 부탁하고 또 누군가는 내어주는 곳이다. 예기치 않았던 사람들 간의 교류가 있는 자리이며 낯선 이가 친구가 되는 자리이고 여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마치 남자들이 마을의 광장이나 성문 앞을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여인들은 우물가를 맴돈다. 우물은 사람들에게 사회생활의 가능성, 경험과 소식의 나눔, 참여와 연대의 결의, 일상사 작은 얘깃거리들의 교환, 즉 기쁨·슬픔·문제·걱정·욕망·꿈·호기심 같은 것들이 교차하는 현장이다. 우물은 사적인 것들이 공적인 것들과 연결되는 자리이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만나는 자리이며, 노동과 여가가 함께 하는 자리이다. 예수님께서도 어느 날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다.(참조. 요한 4,1-42)(20221029 *이미지-구글)

One thought on “마당 장場

  1. 푹푹 찌는 더위와 매미 울음 소리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찾은 동네 도서관. 아~~시원해! 평온해! 진즉 올 것 그랬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의 향기에 빠진 나는 “마당 장” 글을 읽고 설레었다. 마당, 평상, 툇마루, 식물, 물, 달, 별, 햇볕, 살레시오, 아이들, 청소년, 우물, 광장…. 이 하나 하나가 빈 마당에 어우러지면 어떤 공간이 나올까 상상하며…. 우리 동네, 숲 속에 숨겨진 안식처 같은 이런 공간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더위와 매미에 감사, 덕분에 독서 삼매경에 빠져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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