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모니카(8월 27일)

St. Monica, GOZZOLI, Benozzo, 1464-65년, Fresco, Apsidal chapel, Sant’Agostino, San Gimignano

어머니와 아들 성인의 축일을 연이어 하루 간격으로 나란히 기억하는 것은 교회의 전례력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교회는 어머니 모니카의 축일을 8월 27일에 지내고 다음 날에 아들 성인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축일을 지낸다. 성녀 모니카는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오늘날 알제리의 수크아라스Souk Ahras)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이교도인 파트리치우스와 결혼하여 아우구스티누스, 나비지우스, 페르페투아라는 3남매를 두었다. 남편과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개종시켰으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자 졸지에 과부가 되어 수절하며 아이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로 키워냈다.

훗날 성인이 되신 암브로시오 주교에게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염려하여 눈물로 부탁했으며, 이에 암브로시오 주교로부터 “이러한 눈물의 자식이 망할 리가 없습니다.(It is impossible that the son of these tears should perish.)”라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중에 로마 근처 로마 항구 도시인 오스티아에서 열병으로 55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아들을 말없이 지켜본 침묵의 기도, 아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인내의 기도, 오직 사랑으로만 그를 동반했던 사랑의 기도를 평생 살았다. 여성 단체의 수호 성녀이고 그리스도교의 모범적 어머니로 칭송받는다. 종종 아우구스티노회 수도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상징물은 아우구스티노회의 규율집과 십자가이다. 다음은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에서 발췌한 내용으로서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묘사하는 대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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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제가 아직 신자가 아니었지만, 혹시 제가 비뚤어진 길, 당신께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등을 돌리는(예레 2,27 참조; 교부는 자신과 뭇 인간의 인생 여정을 ‘하느님을 등지는 배향背向aversio’과 ‘하느님을 향하는 전향轉向conversio’으로 구분한다) 사람들이 걷는 그런 길을 가지나 않을까, 경건한 설렘을 안고서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2권 3.6)

어머니를 통해서 당신께서는 저에게 침묵하지 않으셨는데, 저는 당신께서는 침묵을 지키고 계시고 어머니만 말을 하신다고 여겼습니다. 그이 안에서 저에게 무시를 당하시는 것은 당신이셨습니다. 그이의 자식, 당신 여종의 자식, 당신 종놈한테서 무시를 당하고 계셨습니다.(시편 116,16 참조) 그것도 모른 채로 저는 지독한 맹목tanta caecitate(교부는 자기의 정신적 도덕적 타락을 누차 ‘맹목’으로 명명한다)으로 곤두박질치며 나아가고 있었습니다.…(2권 3.7)

(어머니가 꾸신 꿈 이야기를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신 뒤로)…그 꿈이 있은 뒤로도 거의 아홉 해나 걸렸고(373년경부터 382년까지에 해당한다. ‘제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9년이란 세월 동안 온갖 욕정으로 인해 홀리기도 하고 속고 속이면서 살았습니다.’-제4권 1.1), 허위의 어둠 속에서 일어나보려고 간간이 용을 써보았지만, 그때마다 변을 당하면서 나뒹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 정숙하고 경건하고 침착한 과부는 희망으로는 더욱 생기를 얻으면서도 통곡과 신음에도 뒤지지 않았으며, 자기의 기도를 바치는 모든 시간에 저를 두고 당신께 눈물짓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이(어머니)의 간구가 당신 앞에 이르고 있었으나 당신은 여전히 그 어둠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뒹굴도록 저를 내버려두셨습니다.(3권 11.20)

(어느 주교를 통해서 모니카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대답) “그러니 거기 그냥 내버려 두시오. 다만 그를 위해 주님께 매달리시오. 스스로 읽어가다 자신이 어떤 오류에 빠졌는지, 얼마나 큰 불경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나한테서 그만 가시오. 잘 될 겁니다. 그렇게나 많은 눈물 바람을 받은 자식이 망할 리 없습니다.”(3권 12.21)

저주스러운 오물로 그득한 바닷물에서 저를 건져내셔서(아우구스티누스는 욕정에 까불거리는 인간 실존을 가리켜 ‘쓴 바다mare amarum’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당신 은총의 물에 이르게 하셨고, 그 물로 제가 씻기고 나서야 비로소 어머니 눈에서 흐르던 눈물의 강이 마를 터였습니다.…제 욕망을 끝장내시려는 생각에 저의 욕망을 되잡아 저를 후려치셨고, 혈육에서 오는 그이의 소망일랑 고통이라는 적절한 채찍으로 매질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이는 어머니들이 으레 하는 대로, 자기와 함께 머무는 저의 현재를 좋아했고, 아니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였지만, 저의 부재로 인해서 장차 얼마나 큰 기쁨을 당신께서 그이에게 만들어주실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몰라 울며불며하였고, 비명을 지르며 낳은 자식을 비명을 지르며 찾아다녔고(참조. 창세 3,16), 품속에 넣고 다니는 하와의 업보를 두고두고 원망했던 것입니다.(5권 8.15)

그분의 육신의 죽음도 제게는 가짜로 보이던 그만큼 제 영혼의 죽음은 진짜였고, 그분의 육신의 죽음이 진짜인 그만큼, 그 사실을 안 믿던 제 영혼의 생명은 가짜였습니다.…그이가 있던 곳에서는 그이의 간청을 들어주셨고, 제가 있던 곳에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셨으니…육으로 저를 낳던 일보다 얼마나 큰 정성을 쏟아 영으로 저를 출산하고 있었는지는 제대로 말씀드릴 길이 없습니다.(5권 9.16)

그이는 기도할 적마다 그것이 당신의 친필 서명이 담긴 문서나 되는 양(참조. 콜로 2,14) 항상 당신께 내보이곤 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자비는 세세에 떨치므로 당신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빚을 탕감해주시는 것도 모자라 당신의 언약을 하고서 빚쟁이가 되어주기까지 하십니다.(5권 9.17)

당신 눈에 저를 살아 있게 하려고 저를 두고 여러 해를 두고 울었던 어머니인데, 임시로 저의 눈에 죽었다고 제가 제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그토록 조금만 울었다고 비웃을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도, 그 사람이 만약 커다란 애덕을 갖추고 있다면 본인이 나서서 어머니 대신 저의 죄를 위해서 당신 앞에서 울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 그리스도의 모든 형제에게 아버지 되시는 당신 앞에서 울어주어야 할 것입니다.(나의 죄과를 두고 하느님 앞에서 울어달라는 부탁이다)(9권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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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혜를 찾읍시다

그녀가 이승을 하직할 날 (우리는 모르는 채 당신만이 아시던 그 날)이 가까워져 왔을 때, 정녕코 그것은 당신의 그윽한 손길로 마련된 줄 아옵니다만 우연히도 그와 나는 단 둘이서 창문에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우리 맞은쪽에 집안의 정원이 내려다보였습니다. 그곳은 오스티아 티베리나! 지루하고 고달프던 여행 끝에 속간을 멀리한 우리는 거기서 배를 타려고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둘이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잊고, 눈앞의 일에만 열중하고 우리는 진리이신 당신의 어전에서 더듬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성자들의 영생, “눈에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고,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르지 않은” 그 미래의 생활을 우리는 차라리 마음의 입을 벌리고 당신께 있는 생명의 샘, 그 샘물의 하늘스런 흐름을 목말라했사옵니다.

꼭 이 말 이대로는 아닐망정,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오나 주여, 당신은 아시나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던 그날, 말하는 동안 이 세상은 그 온 가지 쾌락과 더불어 하찮게만 보여졌던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말하였습니다. “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 낙이라곤 이제 아무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어 했던 것은 한 가지 일 때문이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보겠다고 …… 그랬더니 천주께선 과분하게 나한테 베풀어 주셨다. 네가 세속의 행복을 끊고 그분의 종이 된 것을 보게 되니, 그럼 내 할 일이 또 무엇이겠느냐.”

이 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런지 닷새가 다 못 가서 아니, 더래야 얼마 못 되어서 그는 열병으로 눕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앓던 어느 날, 실신하여서 잠시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바삐 가서 보니 이내 정신을 회복하고는 나와 내 형이 곁에 있는 것을 익히 보더니 무엇을 묻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디 있었더라?” 그는 다시 눈을 들어 슬픔에 당황하는 우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어미를 여기다 묻어다오.”

나는 말문이 막히고,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내 형은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차라리 고향에서 돌아가셔야 마음이 편하지, 남의 땅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찌푸린 얼굴로 나무란 다음, 나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보아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어서 또 우리 둘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몸뚱이사 어디다 묻든지 그 일로 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날 기억해다오.” 어미는 간신히 이런 말로 그 뜻을 전하다가 뚝 그치고, 치열해 오는 증세 때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고백록’에서 Lib. 9,10-11: CSEL 33,215-219 – 성무일도 독서기도 제2독서)

2 thoughts on “성녀 모니카(8월 27일)

  1. 아, 어머니! 눈물의 여인. 이땅의 많은, 고통하는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

  2. “잘 될 겁니다. 많은 눈물 바람을 받은 자식이 망할 리 없습니다.” —— 이 말씀이 많은 위로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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