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 데레사, 예수님의 작은 꽃,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성녀의 가르멜회 수녀로서 공식적인 수도명은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데레사 수녀(Thérèse of the Child Jesus and of the Holy Face)’이다. 성녀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이름을 다시 짓는 성경의 전통에 따라서 수도회에 입회할 때 이와 같은 이름을 선택하였다. 이 호칭은 성녀 데레사의 어린
3704.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말릴 테지만(이사 34,4 참조.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의 율법서를 ‘두루마리처럼 말릴’ 창공으로 비유하기도 한다.-Enarrationes in Psalmos 93,6), 지금은 저희 위에 가죽처럼 펼쳐져 있습니다.(낙원에서 추방되는 원조에게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창세 3,21 는 구절을 두고 교부는 가죽 옷이 사멸의 상징이라고 풀이하기도 하였다.)(13-15.16) 3705. 천사들은 항상 당신의 얼굴을 뵙고 있고, 시간의 음절
지난주 복음이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어”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도록 마련하신 혼인 계약의 아름다움과 그에 관한 하느님의 의도에 관한 내용(참조. 마르 10,6-9)이었다면, 이번 주 복음은 그렇게 형성된 가족일지라도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상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혼인과 가정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상적인 길이라면, “나(그리스도)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마르 10,29) 실제 열두 제자들에게
손을 뜻하는 ‘촌寸’ 위에 술을 담은 병 모양의 ‘유酉’에 덮개를 씌운 ‘추酋’를 놓아 만들어진 ‘높을 존, 술 그릇 준尊’ 이라는 글자는 술병 혹은 술독(酋)을 두 손(寸)에 공손히 받들고 바친다는 데서 존경의 뜻을 나타내어 「높이다」를 뜻한다. 이 글자는 술을 신에게 바치다→삼가 섬기다→존경을 높이 드린다는 것을 나타낸다. 품위品位나 품격品格이라고 할 때의 ‘품品’은 ‘입 구口’ 세 개가 모여
환난 때의 피신처 “주님께서는 억눌린 이에게 피신처, 환난 때에 피신처가 되어 주시네.”(시편 9,10)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이 시편은 구원을 받은 가난한 이의 시편이다. 돈 보스코는 이 시편 구절을 “환난 중 적절한 때에 도움을 주시는 주님”이라고 읽었다. 어려운 순간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자신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시편 기록자와 함께, 돈 보스코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종종 예수님의 어머니를
현시대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기도와 보속補贖, 그리고 자선을 요구한다. 누구나 나름대로 고통과 시련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삭막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영적인 수련과 단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럴 때 아씨시의 빈자貧者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된다. 성인에 관한 전설적인 일화들을 담은 책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소위 ‘빛의 거장(master of light)’이라고 알려지는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롤라 이 바티스타Joaquín Sorolla y Bastida(1863~1923년)는 발렌시아 출신으로 지중해의 태양을 놀랍도록 포착해낸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지중해 해변의 장면을 색상과 빛으로 채우면서 생명력이 넘쳐나는 서민들의 삶을 세세하게 그린다. 지중해 해변의 또 다른 스페인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는 지중해의 태양 각이 자연과 자연의 요소들을 완벽하게 보여주기에 최적이라고
성모님을 가리키는 수많은 호칭 중에서 ‘바다의 별(Star of the Sea)’이라는 호칭은 라틴어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에서 오는데, 여기에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성모님의 역할이 담겨 있다. 사람들 중 아마도 가장 많은 이름을 지니셨을 성모님의 여러 호칭은 호칭 그 자체로 각각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맡기신 사명의 특정한 역할과 사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많은 여성이 이로부터 스텔라’라는 세례명을 취하고
마르텔리라는 성姓에서 따와 우리나라에서 ‘마신부’로 불렸던 아르키메데 마르텔리 신부는 한국 땅에 첫발을 디딘 첫 번째 선교사로서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여 이 땅에 자신의 뼈를 묻었던 한국 살레시오의 창설자이다. 그는 이탈리아 만토바Mantova 지역 코메사지오라는 농촌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아버지 카를로 마르텔리와 어머니 이다 그라지올리 사이에서 4남 1녀 중 4번째로 출생했다. 총명하였던 아르키메데 마르텔리 소년은 베로나에 있던 돈
복음의 전반부에서 몇몇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조상들이 이혼 가능성을 허락한 경우를 두고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며 시비를 걸어와 예수님과 논란을 일으킨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혼을 반대하는 것이 부당하며, 그렇게 되면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상황이 된다는 것처럼 몰아붙인다. 이 논쟁은 이미 당시 샴마이Shammai라고 하는 엄격주의자들(간음의 경우 이외에는 이혼 절대 불가)과 힐렐Hillel이라고 하는 자유주의자들(어떤 이유라도 이유가 닿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