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이미 우리는 스마트 세상을 한참 넘어 AI의 윤리 규범에 관한 법률적 근거들을 논의하는 사회를 산다. 내 생애에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가장 경이로운 문명의 산물이나 이기利器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GPS와 메모리 카드,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세 가지를 들겠다. 세상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어느 과정을 거쳐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꿰뚫고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주간에 교회는 온 천하에 당신을 드러내신 예수님이 과연 누구이신가를 밝혀주는 복음들을 듣는다. 그중 하루는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을 만난다. 복음의 맥락에서 본다면 이미 앞선 4장(35-43)에서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밤바다를 건너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 죽게 되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도움으로 살아난 이야기를 들었다. “물 위를 걸으시는 분”이 누구이실까? 거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고,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 연중 제1주일 오늘 끝 기도로 성탄시기를 끝낸다. 지난주 공현 대축일로 실질적인 성탄시기를 마감한 교회는 바로 사순시기로 넘어가지 않고 부활절이 언제 올 것인가를 계산하여 연중시기를 지낸다. 그래서 연중 제1주일이면서 동시에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로서 주님의 세례 축일을 지낸다. 이는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신다는 의미를 담는데, 본격적인 연중시기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성령
제1권 이 책 전체에 대한 준비 제1장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영혼의 모든 기능을 의지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셨다 차별 안에 확립된 통일은 질서를 만든다. 질서는 조화와 균형을 낳고 또 온전하고 완성적인 사물 안에 있는 조화調和는 아름다움을 낸다. 군대란 질서정연하게 예하 모든 부대를 거느리고 있을 때 비로소 볼만 하며, 또 이 질서에 있어서 상호구별은, 한
‘홀로 독獨’이라는 글자는 ‘혼자’나 ‘홀로’라는 뜻을 지닌 글자이다. 이 글자를 순서대로 펼쳐서 큰 개나 사슴을 가리키는 ‘개 견犭’ + ‘눈 목目’ + ‘쌀 포勹’ + ‘벌레 훼/충虫’의 조합이므로 개와 벌레가 서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외롭다는 뜻이라고 풀이한 것을 읽고 피식 웃었던 적이 있다. 떠돌이 개가 목욕을 안 해서 애벌레가 붙어 있다는 식이거나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시어 탄생하신 것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은 거듭 태어나셔야만 한다. ‘예수님을 낳는다(giving birth to Jesus)’라고 하는 이 개념은 교회의 초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 이레네우스St. Irenaeus는 인간이 “운반”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인간이
히브리 말이나 희랍어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언약에 따른 충성·충실과 신실함, 희생적인 보살핌, 정서적인 친밀감 등을 아우르는 몹시 다면적인 개념이다. 사랑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의 본성과 인간의 부르심을 밝혀주는 기초이다. 성경의 주요 ‘사랑’ 개념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신적神的인 차원과 인간적인 차원이라는 두 차원을 발견한다. 히브리말 아하바(אַהֲבָה, Ahavah)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을 뜻하는 중심어는 ‘아하바’이다. 이 말은 ‘사랑하다(to love)’라는 뜻을 지닌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 전문가들은 2024년 동안 대화와 분위기에 영향을 준 6개의 후보 단어 목록을 선정하고 2주 간의 논의와 37,000명이 넘는 대중 투표, 그리고 언어 데이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2024년의 단어로 ‘뇌 부패(brain rot)’라는 단어를 선정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이를 「‘뇌 부패’란 사람의 정신적이거나 지적 상태가 악화된다고 여겨지는 것, 특히 사소하면서도 도전적이지 않은 자료의 과도한 소비의
공현 대축일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말마디 ‘에피파니Epiphany’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되어 “보여주다(to show)”, “알게 하다(to make known)” 또는 “계시하다(to reveal)”를 의미한다. 공현 대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 축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메시아이자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으로 드러나심을 강조하면서 삼위일체의 초자연적인 계시를 강조하고,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방인들이었던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고 경배하면서 이를
구유 위에 오신 아기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루카 2,16) 합니다. 목자들에게 구유는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 천사들에게서 들었던 소식의 확인이자(참조. 루카 2,12절) 구세주를 발견한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구세주라는 분께서 그들이 익숙하게 잘 아는 구유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나셨다는 점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들과 가까이 계시며 그들과 친숙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였습니다. 구유는 우리에게도 기쁨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