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mentor #10095

연중 제3주일 ‘다’해(루카 1,1-4;4,14-21)

신약성경에서 루카복음 1,1-4 그리고 사도 1,1-5에만 서문(헌사獻辭)이 있는데,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루카복음의 서문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머리말을 두어 자기가 기록하는 복음의 주제와 집필 방법 및 목적을 명시한다. 루카는 당대 그리스 작가들의 관례에 따라 집필 대상과 선례, 내력과 동기를 밝힌다. 복음의 뒷 대목인 4,14-15절은 갈릴래아에서 벌인 예수 활동의 집약이고, 이하 16-21절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월 24일)

돈 보스코 성인은 아이들과 함께 모이던 자신의 오라토리오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3년) 성인의 이름을 붙였고, 이는 그대로 훗날 그가 설립한 ‘살레시오회’의 명칭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돈 보스코를 따르는 이들은 스스로 ‘살레시안’이라 칭한다. 돈 보스코는 자신의 오라토리오에 살레시오 성인의 이름을 붙이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우리의 오라토리오를 두 가지 이유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라고 부르게

희망希望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정기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를 통해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표어로 올해 ‘희년禧年’을 보내고 있는 우리 교회는 자주 “희망希望”에 관하여 말한다. 교황님께서는 이미 2022년 2월에 희년의 여정을 준비하도록 촉구하는 서한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받은 희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고, 모든 이가 열린 정신과 신뢰하는 마음과 멀리 내다보는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볼

신애론神愛論(2)

제3장 의지는 감각적 욕구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그러므로, 테오티모여, 의지는 기억력과 지능과 상상력을 지배하기는 하되, 강제로 하지 않고 권위로써 지배한다. 그러나 가장이 자녀들과 종들로부터 항상 순종을 받지는 못하는 것처럼 의지도 언제나 틀림없는 순종을 받지는 못한다. 그런데 감각적 욕망에 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성 아우구스티노께서 말씀하시듯이(성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이하 ‘신국론’이라고 약칭함=De Cvitate Dei, XIV, 7) 그것은 우리 죄인들 안에

성 안토니오(1월 17일)

성인은 대략 251~356년에 걸쳐 이집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살았다. ‘은수자들의 아버지’, ‘수도승의 원조’, ‘사막의 성인’ 등으로 불리는 성인은 거친 광야의 동굴에서 금욕생활을 하며 오랜 세월 은수자요 독수자로 살았다. 성인의 명성을 따라 니트리아(Nitria)와 스케티스(Scetis)라는 사막 일대에 금욕 고행자들의 집단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성인을 중심으로 개별 움막에서 지내다가 주일이나 축일에 함께 모여 성사를 집행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성인은

프랑스 안느시 방문회 대성당

살레시오회원이라면 누구나 프랑스 남동부에 자리한 알프스 자락, 스위스 제네바로부터 35km 떨어져 있으면서 아름다운 호수와 강의 도시, 프랑스에서 ‘알프스의 진주’이자 ‘알프스의 베니스’라고도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St. Francis de Sales(1564~1622년)의 도시, 안느시(안시 혹은 앙시, Annecy)라는 도시를 순례하고 싶어 한다. 돈 보스코께서 수도회를 설립하시고 수도회의 명칭을 딴 성인이자 주보로 모신 ‘애덕의 박사’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께서 <신애론神愛論(Traite de L’amour

교회와 소비자 가이드

한동안 미국에 거주하다가 우리나라에 돌아왔을 때 눈에 띄게 늘어난 상점 브랜드 하나가 있었다. 바로 ‘다이소’라고 하는 브랜드이다. 과거에는 뜨문뜨문 보이던 가게였는데,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나 주변을 둘러보면 웬만한 곳에는 반드시 있다. 그곳에서는 비교적 가성비가 좋은 헤아릴 수 없는 상품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여느 곳이거나 제품이나 상품의 종류를 불문하고 ‘365일 세일’을 표방하며 말도 안

형제자매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에는 형제와 자매들의 이야기가 많다. 카인과 아벨, 야곱과 에사우, 야곱의 아들들인 요셉의 열두 형제, 모세와 아론……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비유 안에 등장시킨 큰아들과 작은아들,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 세 남매, 열두 제자 중의 형제들……그렇게 성경에는 서로를 질투하고 해치는 형제들, 친형제가 아니면서도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형제처럼 살아간 형제들이 많다. 형제자매들, 심지어 남매들까지도 각기 그 개인적

연중 제2주일 ‘다’해(요한 2,1-11)

우리가 종종 그리스도인들의 혼배미사에서 낭독하기도 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 관해 요한이 기록한 말씀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우선 이 혼인이 어떤 혼인이었으며 신랑은 누구이고 신부는 누구였는지 의문이 앞선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펼쳐진 공생활의 첫 번째 표징이다. 물이라고 하는 필수적이고도 일상적인 소재가 메시아 시대의 선물인 포도주로 탈바꿈한다. ‘다’해의 복음은 대체로 루카복음에서 선정하는데, 오늘 복음 말씀은

흠숭, 섬김, 걸어가다

(*세례자 요한과 복음사가 요한의 큰 형제 몰타 기사단과의 만남에서 행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연설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화해와 희망의 시기 희년을 거행하고 있는 새해의 시작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는 엊그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기념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요한 14,6)이신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분, ‘호데게트리아(Ὁδηγήτρια, Hodegetria, 영어=She who shows the Way, 길을 보여주시는 분)’라는 이름 그대로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