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의 부르심(9월 21일)

공관복음은 하나같이 열두 사도(참조. 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6) 중 하나였던 세리 마태오의 소명을 전한다.(참조. 마태 9,9-13 마르 2,13-17 루카 5,27-32) 마태오의 부르심 장면을 생각하면 곧잘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삼았던 카라바지오의 마태오 관련 3부작(마태오의 소명, 마태오의 영감, 마태오의 순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그림들은 로마에 있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San Luigi Dei Francesi(나보나 광장 근처)라는 성당에 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3~1610년)는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멀지

환대

람페두사라는 섬이 있다. 2023년 9월 17일의 한국일보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 ‘초비상’이 걸렸다.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입국하는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다. 이달 11~13일 유입된 난민만 약 8,500명으로, 섬 인구(약 6,000명)보다 많다. 람페두사섬은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14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아프리카발 난민에게 ‘유럽행 관문’으로 여겨져 왔지만, 올해 난민이 폭증했다.」라는 기사를 올렸다.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는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즉위하신 뒤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년)

탄생과 성장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21년 3월, 충청남도 청양의 다락골에 있는 새터 교우촌에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이성례 마리아 복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던 부친을 따라다니다가 경기도 부평을 거쳐 안양에 있는 수리산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 수리산 마을은 그 뒤 신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비밀 신앙 공동체로 변모하였다. 이에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만나 좋아하신다는, 그래서 교황님의 집무실에 복사본이 걸려 있다는 사실로 비교적 최근에 널리 알려지게 된 그림이다. 인간 삶의 여정에서 얽히고 설킨 매듭들과 죄의 매듭들을 풀어주시는 성모님을 공경하기 위한 성화이다. 다양한 메달이나 상본, 9일 기도를 포함한 여러 기도문이 있다. 원래 이 그림은 『하와의 불순종으로 생겨난 인간 죄의 매듭이 성모님의 순명으로 풀렸다.(리옹의 성 이레네오, 반이단론Adversus haerses, 3,22)』와 같은 교부들의 묵상에서 출발한다. 원본

믿음 호칭기도

1월 하순 어느 토요일이었다. 친한 친구가 우리 집 거실 마룻바닥 까는 것을 도와주었다. 점심을 함께 먹느라 잠시 쉬었다가, 잡담으로 수다를 떨다가, 그렇게 친구는 돌아갔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 말도 안 되는 문자와 함께 전화들을 받았다. 친구가 쓰러졌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친구가 매우 희귀하면서도 대단히 빨리 진행되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친구는 치료에 성실하게 임했고, 결국 완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처음에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의 첨탑 동상에 관하여

살레시오회의 자랑인 토리노의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꼭대기에 모신 성모님은 성당의 이름이 된 도움이신 성모님일까, 아니면 돈 보스코께서 지극한 신심을 보였던 원죄 없으신 성모님일까? 사실 많은 이들이 원죄 없으신 성모님 상이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꼭대기에 올라가 계신다고 믿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성모님일까? 우선 원죄 없으신 성모님이라고 믿는 이들이 접했을 법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9월 8일)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 신심이 계속되면서 동방 교회에서 먼저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7세기 무렵부터 이 축일을 지내왔는데, 이 축일로부터 9개월 전인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잉태 대축일’과 연결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의 봉헌일(9월 8일)과도 관련이 있다. 성모님의 부모님으로 알려지는

무지개 홍虹

인터넷도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서 사는 수녀님께서 무지개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무지개를 ‘성모님의 허리띠’라 한다고 알려 주셨다. ‘벌레 충/훼虫’이라는 글자와 ‘장인 공工’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무지개 홍虹’이라는 글자는 『형성문자로서 ‘벌레 충/훼虫’이 의미부고 ‘장인 공工’이 소리부인데, 갑골문에서는 두 마리의 용(虫)이 물을 내뿜어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을 그렸고, 이후 지금처럼 형성구조로 바뀌었다.(하영삼, 한자어원사전, 935쪽)』 먼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용이 기교한 재주를 부려 무지개를 만든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순수

“무자비한 짐승男인 줄 알았는데” 쫙 빼입은 신사 등장, 모두 놀랐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편집자 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 주교 학자 기념일(8월 28일)

성인은 19세이던 373년부터 28세인 382년까지 방황의 시기를 지내다가 30세가 되던 384년에 성 암브로시오(340?년~397년)를 만나면서 회심의 길로 들어서고, 32세가 되던 386년에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자신을 두고 말씀하시는 로마 13,13-14를 읽는다. 33세가 된 387년에 세례를 받았고, 비로소 지성의 회심에서 의지의 회심으로 나아가는 시기를 산다. 다음은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의 몇 대목이다. 괄호로 삽입되어 있는 내용은 성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