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갈등과 폭력이 들끓는 세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요한복음 8장 2-11절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전해진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소란이 일었다. 한 무리가 분노에 들끓어 한 여인을 끌고 왔다. 그녀는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었다. 그들은 그녀를 예수님 앞에 내던지며 외쳤다. “모세는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미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한 인간이

새로운 희망의 지도를 그리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집은 총 5개의 장(개막 메시지, 헌장, 교령, 선언, 폐막 메시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선언’에는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교육의 중대성」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우리 시대」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인간 존엄성」 3편이 있는데, 이중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교육의 중대성」 반포 60주년을 맞이하여 교황 레오 14세께서 사도(사목) 서한을 발표하였다. *** 교황 레오 14세의 사도

신애론(2-1)

제2권 인간세대의 역사와 하느님 사랑의 천상적인 탄생 제1장 하느님의 완전성은 유일하고 무한히 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해가 뜰 때, 아침 노을이 붉게 물들다가 조금 후 즉시 어둡게 움푹 파인 듯 보이거나 해질 때, 어둠침침하고 흐려 날이 꾸물거리면 비가 올 징조라고들 흔히 말한다. 테오티모여, 태양은 붉지도 검지도 않고 회색도 아니며 푸르지도 않다. 저 거대한 광모(光母)와도 같은

돈 보스코의 편지(4)

4. 토리노 시 법원 치안 담당 판사님께 E II,812 오라토리오의 어떤 젊은이가 신학생 쥬셉페 마자렐로에 대해 제기한 고소 건과 관련하여, 돈 보스코가 자신의 견해를 밝힘 *** 토리노, 1865년 4월 18일 토리노 시 법원 치안 담당 판사님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의 제본소에서 조력자로 일하고 있는 마자렐로 신학생에 대해 고지된 출두 명령, 그리고 파로디 페데리코, 카스텔리 조반니,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

*번역글: 엔조 비앙키, <성인들의 통공을 기리는 기쁨의 축일(La gioiosa festa della comunione dei santi)> 하늘과 땅의 성인들 잔치 친구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을 기리는 기쁜 축일을 지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성인들뿐만 아니라, 아직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성인들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통공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마태 5,1-12ㄴ, 첫째 미사)

교회는 오늘 전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산상설교’(마태 5,1-7,27) 중 첫 부분 ‘참행복’에 관한 묵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 복음은 연중 제4주일 ‘가’해나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에서도 같은 대목을 취한다. ※참조. 엔조 비앙키,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 http://benjikim.com/?p=15885  / 교황 프란치스코,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http://benjikim.com/?p=6731 *오늘 강해의 뒷부분에 이완희 신부의 <위령의 날>에 관한 유래와 해설이 있음 1. “산으로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루카복음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루카 18,9-14)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본질을 가르치신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기도 같지만 ‘기도가 아닌 기도’, 그리고 ‘참다운 기도’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된다. ① 말이 많은 기도: 입술만 바쁘다. 이는 하느님을 설득하려는 시도일 수 있으며, 많은 경우 자기 확신을 되뇌는 독백이 되어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주님께서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하셨다.

이상한 주인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6.37)」 복음은 준비하는 종들, 기다리는 종들, 깨어 있는 종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복음에는 뜻밖의 반전이 있다. 집에 돌아온 주인이 오히려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종들을 시중드는 놀라운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가 모시는 주인은 밖에서 돌아와 문을

연중 제30주일 ‘다’해(루카 18,9-14)

지난주 ‘재판관의 비유’에 이어지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인 오늘 복음은 루카만이 전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 제18장에 이렇게 두 개의 비유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관한 내용을 담는다. 전자가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에서 ‘끊임없이 항구한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라면, 후자는 ‘겸손한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두 비유가 맞닿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니 겸손한 기도는 항구한 기도일 수밖에 없고, 항구한

앎·지식

“앎·지식”은 교육, 학습, 경험 등을 통해 얻은 무엇인가에 관한 앎이다. 그런데 지식에는 실제로 알지 못하면서도 알고 있는 듯 착각하거나 ‘~척’하는 건너편의 지식, 남에게 팔아 돈을 벌기 위한 지식, 누군가를 조종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무기가 되는 지식 등이 있다.(*참고. 김건중, 지식답지 않은 지식, 경향신문, 2006년 9월 15일) 이들은 성경의 언어로 “사이비 지식의 속된 망언과 반론들”(1티모 6,20; ψευδωνύμο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