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마리아 대축일과 살레시오회(12월 8일)

대림절이 시작된 다음 교회는 곧바로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을 거행한다. 이 축일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성모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해 마련하신 모델이자 표상이다. 인간 모두가 마리아를 닮고 마리아처럼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주보로 모신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이날은 온 가톨릭교회가 대축일로 지내며 신자들이 의무로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그림 출처-en.wikipedia.org, Giovanni Battista Tiepolo, 1767~1769년 作)

인간 구원의 역사, 곧 구세사는 정확히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바로 그 순간에 시작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영원으로부터 인간을 선택하신 바로 그 순간이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마리아를 선택하시고, 당신의 거룩하신 아드님을 위해 죄 없는 거룩한 자리를 마련하셨다. 구세주께서는 당신 피로 구원하시려는 인간의 그 피를 맨 처음 성모님으로부터 받으셨다. 이 모든 일이 성모님의 잉태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천사의 알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죄가 없는 상태로 내몰렸다기보다 죄로부터 보호되시어 구원 계획의 완성을 위해 죄에는 ‘No!’, 하느님의 계획에는 ‘Yes!’라고 응답하신다. 한번만이 아니라 평생 매 순간 “예!”라고 답해준 마리아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삶의 여러 굴곡에서 매번 “예!”라고 답해야 한다. 우리의 주님이시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에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큰 열정과 기쁨으로 거행해야 한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오래된 가톨릭교회의 삶 안에 자리 잡은 아름답고 거룩한 교의이다. 팔레스티나에서 수도원을 이루고 살던 수도승들은 7세기 말부터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축일이라는 것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 축일은 9세기에 이탈리아에서도 거행하기 시작했고, 11세기에는 영국, 12세기에는 프랑스에까지 점차 전파되었다. 교황 레오 6세(880~929년)께서는 이 축일을 거행하도록 권장하였으며, 교황 식스투스 4세(1414~1484년)께서는 이러한 거행을 교회의 공식적인 축일로 공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1854년 비오 9세(1792~1878년)께서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4년 뒤인 1858년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성녀 베르나데트St. Mary-Bernadette Soubirous(1844~1879년)에게 “원죄 없는 잉태의 성모”라고 당신을 소개하심으로써 이 믿을 교리를 승인하신 셈이 되었다.

1. 만일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를 선택할 수 있다면 마땅히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며 성스러우신 분을 선택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다. 2. 온전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단 한 순간이라도 악마와 죄의 권세하에 있던 이에게서 태어나실 수가 없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원죄의 영향에 물들지 않으신 채로 태어나셔야만 했다. 이를 두고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1265/66~1308년)는 Deus potuit(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었고=God could do so) decuit(그렇게 하실 길을 찾으셨으며=found it fitting to do so) fecit(그래서 그렇게 하셨다=and, hence, did so)라고 정리한다. 

마리아께서는 어떻게 원죄 없이 잉태되실 수가 있었을까? 신학자들은 이를 ‘선재적인 은총prevenient grace’, 곧 ‘먼저 온 은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는 구원 생명의 공로가 역사적인 실제 사건보다 먼저 복되신 동정녀께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하느님께는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지금’을 사신다. 그러므로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시기 위해 – 하느님 차원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볼 때 –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미리 입으신 것이다. 이는 마치 예방 약藥을 미리 복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성모님을 제외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원죄와 그 영향 안에 태어나고, 태어난 뒤에 ‘세례’라는 예방약을 복용해야만 한다. 이와 달리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를 위해 무엇인가 다른 것을 준비하셨다. 성모님께서는 원죄의 고통을 겪으시지 않아도 되었다. 2019년에 시성되신 존 헨리 뉴만John Henry Newman(1801~1890년) 추기경은 개신교 신자들도 성모님께서 원죄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이해 할 수 있게 하려고 성모님을 위해 ‘죄에 떨어지지 않은 하와의 딸the daughter of Eve un-fallen’이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부르려고 시도했다. 우리는 모두 죄에 떨어진 하와의 아들딸들이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었던 하와의 딸이신 것이다.

그런데, 원죄 없으신 잉태의 성모님은 살레시오회와도 인연이 깊다. 살레시오회의 창립자 돈 보스코는 26세의 젊은 나이인 1841년 12월 8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수호천사 제단에서 원죄 없으신 잉태 축일의 성모님 미사를 드리려고 제의방에서 준비하던 중,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게 된다. 제의방에는 차가운 날씨를 피해 숨어든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이를 알게 된 제의방지기가 그 소년을 야단치는 바람에 생긴 소동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돈 보스코는 제의방지기에게 그 소년이 자기의 친구라고 감싸면서 오히려 제의방지기를 만류했다. 그 소년의 이름이 바로 바르톨로메오 가렐리이다. 돈 보스코는 그 소년을 제의방 한쪽으로 데리고 가 몇 마디를 건네면서 그 소년이 고아라는 것을 알았고, 겁에 질린 아이에게 휘파람을 불 줄 아느냐는 질문을 건네면서 이내 소년의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그렇게 소년과 돈 보스코 간에 신뢰가 생겼고, 돈 보스코는 간식을 건넸으며 십자 성호를 가르쳐주었고, 다음 주 일요일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오라고 청한다. 살레시오회는 이것이 가난하고 어려움과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과 함께 살게 된 성 요한 보스코에게 영감을 주었고 훗날 살레시오회가 있게 한 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잉태 대축일은 살레시오회 온 가족의 생일이다. 성모님을 향한 돈 보스코의 사랑과 함께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살레시안들의 삶과 사명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다.

이 외에도 1847년 12월 8일은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라는 곳에 산 루이지 오라토리오를 개설한 날이며, 1859년 12월 8일은 수도회 설립에 관한 실질적 첫 모임이 있던 날이고, 1878년 12월 8일은 살레시오 수녀회의 규칙 인쇄본이 처음 발행되어 전달된 날이며, 1884년 12월 8일은 돈 보스코의 제자로서 사제가 되었던 죠반니 칼리에로가 주교품을 받은 날이고, 1885년 12월 8일은 역시 돈 보스코의 제자로서 사제가 된 돈 루아가 돈 보스코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부총장으로 임명된 날이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12월 8일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 축일은 살레시오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날이다. 돈 보스코 자신이 “우리는 모든 것에서 성모님께 빚쟁이입니다. 우리의 중대한 모든 일의 원칙과 성취는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날에 이루어졌습니다.(di tutto noi siamo debitori a Maria, tutte le nostre cose più grandi ebbero principio e compimento nel giorno dell’Immacolata)”라는 말로 이를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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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스코의 책상에는 항상 조그만 성모상이 있었고, 그 발치에는 「신자들의 원죄 없으신 도움」이라는 카드가 놓여있었다.

돈 보스코가 토리노에 도움이신 마리아의 대성당을 지었을 때 그 성당 중앙 꼭대기에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상을 모셨다. 그 성당에 교황 비오 9세(1846~1878년 재위)의 방문을 앞두고 모든 이를 위한 전대사를 청할 때 돈 보스코는 “저희는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라는 이름 아래 ‘원죄 없으신 동정녀’께 봉헌된 토리노의 대성당 방문에 앞서 모든 신자에게 전대사를 주시도록 청합니다.”라고 했다.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돈 보스코는 ‘원죄 없으신 잉태’라는 호칭을 포기하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러한 호칭이 자신의 교육 방법론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보스코는 ‘원죄 없으신 잉태Immaculate Conception’라는 호칭과 ‘신자들의 도움Help of Christians’이라는 두 개의 호칭을 합하여 ‘신자들의 원죄 없으신 도움The Immaculate Help of Christians’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참조. https://blog.naver.com/kbenjamin/222728319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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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없으신 동정녀께 드리는 기도

오, 원죄 없으신 어머니! 당신은 확실한 희망의 표지이시며 모든 이의 위로이시니, 저희가 당신의 원죄 없으신 순결에 이끌리도록 저희를 도우소서. 오늘 저희가 당신의 온전한 아름다움(Tota Pulchra)을 찬미하오니, 이는 사랑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저희의 믿음입니다. 분명코 그렇습니다. 은총은 죄보다 강하니 그 어떤 종살이에서도 저희가 구원되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마리아여! 저희가 선善에 더 큰 믿음을 두고, 은총, 섬김, 비폭력, 진리의 힘에 더욱 매달리도록 저희를 도우소서. 쉬운 회피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용기와 책임감으로 현실과 문제를 용감하게 직면하도록 저희가 깨어 있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젊은 여인이신 당신께서 하신 일이 아니더이까! 우리 젊은이들에게 사랑스러운 어머니가 되어주소서.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용감하게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sentinelle del mattino)’이 되게 하시고, 모든 신자에게도 이 덕을 베푸시어 이 쉽지 않은 역사의 시점에서 세상의 영혼이 되게 하소서.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여, 로마인들의 구원(Salus Populi Romani)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교황 베네딕토 16세, 스페인 광장, 2008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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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Madre Immacolata, che sei per tutti segno di sicura speranza e di consolazione, fa’ che ci lasciamo attrarre dal tuo candore immacolato. La tua Bellezza – Tota Pulchra, cantiamo quest’oggi – ci assicura che è possibile la vittoria dell’amore; anzi, che è certa; ci assicura che la grazia è più forte del peccato, e dunque è possibile il riscatto da qualunque schiavitù. Sì, o Maria, tu ci aiuti a credere con più fiducia nel bene, a scommettere sulla gratuità, sul servizio, sulla non violenza, sulla forza della verità; ci incoraggi a rimanere svegli, a non cedere alla tentazione di facili evasioni, ad affrontare la realtà, coi suoi problemi, con coraggio e responsabilità. Così hai fatto tu, giovane donna, chiamata a rischiare tutto sulla Parola del Signore. Sii madre amorevole per i nostri giovani, perché abbiano il coraggio di essere “sentinelle del mattino”, e dona questa virtù a tutti i cristiani, perché siano anima del mondo in questa non facile stagione della storia. Vergine Immacolata, Madre di Dio e Madre nostra, Salus Populi Romani, prega per noi!

2 thoughts on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마리아 대축일과 살레시오회(12월 8일)

  1. 성모님, 원죄없으신 동정녀 어머니께 언제나 함께 기도해주시어 나 혼자만의 기도가 아닌 성모님의 은총이 함께하는 기도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을수 있고 두려움 없이 행할수 있는 제가 되기를 오늘 하루를 마감하며 기도드립니다.

  2. “우리도 성모님처럼 삶의 여러 굴곡에서 매번 “예!”라고 답해야 한다.”
    “우리의 주님이시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에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큰 열정과 기쁨으로 거행해야 한다.”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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