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7. (로마인들의 웅변, 연설은 진실을 설명하는 ‘진술체stilus tenuis’는 명료함perspicuitas을, 청중의 마음을 울리는 ‘완만체mediocris’는 유쾌함suavitas을, 청중을 설득하는 ‘장엄체gravis’는 장중함sublimitas을 관건으로 하였다.)
3478. 가톨릭이 패자로 보이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승자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3479. 저를 이미 죽은 몸으로, 그러면서도 되살려주어야 할 사람으로 당신께 울고불고하던 중이었고, 생각의 널빤지에 실어서 당신께 저를 이고 가던 중(참조. 루카 7,11-17)이었습니다.(6-1.1)
3480. 암브로시우스가 책을 읽을 때도 제 눈은 책갈피를 더듬어 나가고 마음은 터득한 바를 되씹고 있었지만 목소리와 혀는 쉬고 있었습니다.(6-3.3)
3481. 제가 묻고 배워야 마땅할 것을 무작정 헐뜯으며 떠들어댔으니…(6-3.4)
3482. 한때 저에게 확실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불확실하다는 그 한 가지만은 확실했습니다.
3483. 믿지 않으면 나을 도리가 없는데도 저는 거짓을 믿지 않겠다는 핑계로 치료받기를 마다하며 당신 손길에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손수 믿음의 치료약을 조제하시고, 온 세상의 질병에다 그 약을 뿌리시며, 그 치료법에 크나큰 권위를 부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6-4.6)
3484. 당신이 누구신지를 제가 비록 모르더라도 당신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또 인간사의 주관이 당신께 속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3485. (영혼의 치료는…권위와 이성으로 나타난다. 권위는 신앙을 요구하고 인간을 이성의 사용으로 준비시킨다. 이성은 이해와 인식으로 유도한다. 이성이 비록 권위를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으며, 더군다나 믿어야 할 대상을 두고는 이미 인식되고 자명한 진리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
3486. 죽음의 저 차진 끈끈이에서 당신께서 꺼내주신 저의 영혼이 이제는 당신께 매달리게 해 주십시오. 얼마나 가련한 영혼이었습니까?(6-8.9)
3487. 당신을 두고 자신감을 품었어야 마땅했는데 자기를 두고 자신만만했으니 그럴수록 그만큼 더 취약한 법입니다.
3488. (지혜의 깨달음은 당신께 청할 것이고 당신 안에서 찾을 것이고 당신께 문 두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대로 얻어지고 그대로 찾아지고 그대로 열릴 것입니다.)
3489. 행복한 삶을 사랑하면서도 정작 행복한 삶이 있는 그 자리에서의 삶은 두려워하고 있었고, 행복한 삶에서 달아나면서 행복한 삶을 찾고 있었습니다.(6-11.20)
3490. (당신께서는 저의 다디단 쾌락에다 얼마나 쓰디쓴 쓸개를 뿌려주셨는지요. 저는 사랑을 받았고, 향락의 사슬에 얽히었고 비참한 갈고리에 걸리면서도 신나기만 했습니다.(3-1.1)
3491. (진리에 정진하는 공동생활의 이상을 ‘전부에서 하나요ex cunctis unum’ ‘전체가 각자의 것이며universum singulorum’ ‘모두가 모두의 것이 된다.omnia omnium’)로 설정하였다.)
3492. (‘악이 고통 없는 악이면 더 나쁘다. 부패를 두고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사악을 두고 기쁨을 누리는 것은 더 나쁘다.’)
3493. 저는 저희가 ‘만일 불사불멸하고 또 육체의 영구한 쾌락 속에 살게 된다면, 그것도 이 쾌락을 상실하리라는 두려움이 조금도 없다면, 왜 행복하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도 깊이 가라앉고 눈이 멀어서 청명의 빛, 무상으로 얼싸안아야 할 아름다움의 빛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크나큰 불행에 해당함을 모른 채로, 그 이상 다른 무엇을 찾아 나설 것인가 하는 물음을 내놓고 있었습니다.…아, 구불구불한 길이여! 당신을 떠나면 뭔가 더 나은 것을 손에 넣으리라고 바랐던 오만한 영혼은 불쌍하여라! 등으로 옆구리로 배로 아무리 뒤치락거려 봐도 모든 게 배기기만 할 뿐이었고 당신 홀로 안식이십니다!(방해받지 않는 안식의 자리가 그곳-하느님의 말씀-에 있고 거기서는 사랑이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사랑이 버림받는 일 없다.) 그런데 보십시오! 당신께서 그 자리에 계시고, 가련한 방황에서 구해내시고, 저희를 당신 길에 세워주시고, 위로를 하시고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달려가거라! 내가 안고 오리라. 내가 데려오리라. 거기서 내가 안고 오리라!(이사 46,4를 이용하여 하느님의 구원을 간추렸다. –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낸다.”(6-16.26)
3494. ‘제게도 저 자신이 확연치 못했습니다.nec mihimet ipsi vel ipse conspicuus’(이 문구는 인간이라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교부의 깊은 통찰로 평가받는다. – 인간에게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가 있다. 그 심연이 자리 잡은 본인조차도 알지 못하는 깊이다.)(7-1.2)
3495. 기만당하고 기만하는 자들(진리를 갖지 못했으니 속은 자요, 그것을 타인들에게 가르치는 만큼 속이는 자라는 표현은 교부가 마니교도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다), 말 많은 벙어리(7-2.3)
3496. (악의 원인을 탐구하다가 ‘인간 자체가 악하다’는 결론을 유출하면 악한 실체가 존재한다는 선악 이원론으로 돌아가고 만다.)
3497. (아우구스티누스가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은, 악이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에 불과하며, 선한 신이 만든 선한 피조물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악의 작용인作用因causa efficiens은 존재하지 않고 결함인缺陷因causa deficiens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498.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서는 기본 되는 질료materia informis를 하느님이 만드셨고fecit, 그 질료를 형상화하고formavit, 배열하셨다ordinavit는 삼중의 창조행위가 논의되고 그 행위에 따라서 사물의 형이상학적 범주 셋 – modus, forma, ordo 이 열거된다.)
※ 총 13권 278장으로 이루어진 <고백록>을 권위 있게 맨 먼저 우리말로 소개해주신 분은 최민순 신부님으로서 1965년에 바오로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을 따랐다. 각 문단의 앞머리 번호는 원문에 없는 개인의 분류 번호이니 독자들은 괘념치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