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9월 18일 피정을 마치면서 돈 보스코는 ‘인내와 희망, 그리고 순명’이라는 주제로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영적 강화를 남긴다. 여기서 그는 당신을 따르는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왔던 삶의 요약처럼 인내와 희망을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하나의 비유를 설파한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에게 인내, 대단한 인내를 당부합니다.…인내와는 나뉠 수 없는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교사나 아씨스텐테(도우미, 동반자)가 이쪽 뺨을 때리고 저쪽을 발로 차며 모든 상황을 마비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덕을 사랑하게 할 수도 없고 결코 그 누구의 마음에도 덕이 스며들게 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좋게 대해야 합니다. 늘 침착하게 온유와 인내로 대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은 쉽지요. 뭔가를 보고 있자니…화를 내지 않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어렵다고요? 저도 어렵다는 사실을 압니다. 인내라는 말이 어디서 파생되었는지 아십니까? 그 의미는 고통스럽고, 관대해야 하며, 괴로워하고, 우리 자신을 억눌러야 한다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힘들지 않으면 인내가 아닙니다. 대단히 힘든 것이 인내이기에 제가 이렇게 많이 당부하는 것입니다. 힘들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저로서) 제가 사람들의 말을 듣기 위해 오전 내내 묶여 있는 것, 저녁이면 편지 등의 일 처리를 위해 책상에 묶여 있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 정말이지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게 이런 것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인내’를 해야만 합니다. 제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일이 추진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행할 선이 많이 멈추어있게 되고, 여러 중요한 협상이 좌초하게 되므로 인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참 잘하신다고 누가 외칠 수도 있습니다. ‘돈 보스코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인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맡기고 나서(가령 중요한 일, 미묘한 문제, 급한 일을 맡겼는데), 제시간에 되어 있지 않거나, 잘못되어 있을 때 제가 평온하기 위하여 자제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 줄 압니까? 때로는 저도 피가 끓어오르고, 흥분이 제 모든 감각을 압도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화를 내야 하겠습니까? 화를 낸다고 해서 되지 않은 일이 될 일이 없고, 격노해서 수하 사람들을 고칠 수 없습니다. 침착하게 타일러주고 적절한 규범을 일러주고, 큰소리를 내야 할 때는 내도 좋지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실까 하고 잠시라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인내로 여러분의 영혼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받게 될 것임을 저는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여러분, 저기 있는 정원지기가 식물 한 포기를 기르기 위해 얼마나 큰 정성을 쏟고 있습니까? 쓸데없이 고생한다고들 하겠지만 정원지기는 어떤 식물을 심을 때 그 식물이 시간과 더불어 그에게 많은 결실을 낼 것을 알고 있기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토양을 준비하기 위하여 작업하고 땀을 흘리고 그래서 여기는 파고 저기는 괭이질을 하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나무를 심거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파종한 곳은 밟지 않도록 조심하고 새들과 닭들이 씨앗을 먹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입니까? 마침내 싹이 트면 흡족하게 바라봅니다.…‘이제 싹이 트고 잎이 두 개, 세 개가 달렸구나.’ 하고 감탄합니다. 그리고는 접붙이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자기 정원에서 가장 좋은 나무를 물색하고 그 가지를 자르고 감고 덮어 추위나 습기가 접붙인 것을 죽이지 않도록 엄청난 정성을 쏟는 것입니다. 나무가 자라기 시작할 때 혹시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즉시 바르게 세우려고 지지대를 놓습니다. 나무의 줄기가 연약하게 보이고 바람이나 폭풍우가 쓰러트릴 염려가 있으면 든든한 기둥을 세워 묶어주거나 감아주어서 걱정하는 위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그 정원지기 아저씨에게 ‘겨우 나무 한 그루를 위해 왜 그렇게 많은 정성을 쏟으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제가 그렇게 돌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고 열매가 잘 열리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합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렇게 큰 정성을 쏟음에도 불구하고, 접붙인 나무가 자주 죽고, 나무를 잃게도 됩니다. 그래도 살려보려고 그 많은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정원지기보다 더한 정원사, 곧 하느님의 포도밭을 가꾸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활동이 결실을 보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가꿔야 할 어린나무들에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많은 노고와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접붙인 것이 말라버리고 나무도 망치게 되지만 진정한 정성을 쏟는다면 그래도 대부분은 그 어린나무들이 잘 살아남습니다. 그래도 안 될 때는 포도밭 주인이 매우 선하시므로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격노와 순간적인 흥분은 아무 소용이 없고, 지속적인 인내, 즉 끈기와 항구함, 고생이 필요하다는 것을!(MB, 제12권 456-457쪽 ; 영어본 제12권 328-333쪽)』
신부님, 정원지기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거룩한 인내.
정원지기처럼 지속 가능한 사랑과
보살핌.
오늘.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