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천상적 섭리는 사람들에게 매우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마련하여 주었다
그런데, 테오티모여, 나는 하느님의 의지에다 순서를 붙여, 한 가지를 생각하시고, 원하시고, 그다음 또 한 가지를 생각하시고 원하신 것처럼 말했는데, 이것은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즉, 모든 것이 지극히 유일하고 단순한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더구나, 하느님의 이 유일하시고 단일하신 행동의 순서와 질서와 구별과 상호관계 등을 존중하기 때문에 마치 하느님의 지성과 의지가 다양한 행동을 하시는 듯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건전한 의지는 같이 현존하는 많은 사물에 동의하려고 결의하는 데 있어서, 으레 그중 보다 더 사랑함직한 것을 우선적으로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至上의 섭리도 당신이 만들어 내실 모든 것에 대한 설계와 계획에 있어 가장 출중나고 탁월한 것을 선택하여 보다 사랑함직한 대상을 찾게 마련이니, 이는 곧 우리 구세주시며, 다음에는 순서를 따른 다른 피조물 들인데 구세주께 봉사와 영예와 영광을 더 끼치는 정도에 따라 순서를 지어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다 신인神人을 위하여 이루어졌으며, 그래서 그분을, “모든 피조물의 맏아들”(콜로 1,15)이라 부르고,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잠언 8,23-26) 한 그대로 그가 무엇을 행하기 이전에, 자기 일을 시작함에 있어 하느님의 엄위에 의해서 소유되고, 세대가 있기 전에 태초에 창조되었고, 그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으며(집회 18,1), 그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보전되며, 그는 “당신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분은 만사에 있어 시작”(콜로 1,18)이시다. 포도 넝쿨을 심는 주요 이유는 그 열매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잎과 꽃순이 먼저 나오기는 할지라도 그 열매가 첫째로 요망되는 것이요,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구세주께서는 하느님의 의향에 있어 첫째의 자리를 차지하시며, 하느님의 섭리가 피조물을 내기 위한 그 영원한 계획에 있어서도 역시 첫째이시니, 이 열매를 바라고 우주라는 포도나무가 심어진 것이며, 많은 세대의 계승과 연속이 확정된 것은 마치 잎과 꽃이 나는 것과 같고 또 앞서 달리는 선구자들과도 같이 포도의 생산을 위한 준비물들과 같으니, 이 포도는 저 거룩한 정배가 아가에서 그처럼 많이 기리고 노래하는 것(“몰약 주머니”-아가 1,13)이며, 그 포도의 즙은 하느님과 사람이 모두 즐기는 것이다.(참조. 판관 9,13)
그러나 이제 나의 테오티모여, 누가 감히 구원의 방법이 지닌 풍요성에 대하여 의심하랴?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듯이 위대한 구세주를 모시고 있으며, 이분을 관찰해보면 우리가 그 안에서 창조되었고, 그분의 공덕에 의하여 우리가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죽은 자들이었기에 그는 모든 이를 위해서 죽으셨으며(2코린 5,14-15), 그분의 자비는 인류에게 있어 아담의 죄가 끼친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끼치셨으니 아담이 망쳐 놓은 그 이상으로 구세주께서는 모든 인종人種을 되찾으신 것이다.
참으로 아담의 죄는, 하느님의 자비를 억눌러 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자극하여 도발시켰다. 그리하여 가장 부드럽고 사랑에 찬 반작용과 투쟁으로써 강화되었다. 그리고 그 힘을 승리를 위해 집중시키듯, “죄가 많은 곳에 더욱 은총을 풍성케 하셨던 것이다.”(로마 5,20)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는 부활 전날 감격에 넘쳐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오! 참으로 필요했던 아담의 죄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깨끗이 지워졌도다! 오! 복된 잘못이여(다행한 탓O felix culpa이란 본래 성주간 끝의 예절문에 나오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으로서, 인류의 잘못·죄로 구세주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 것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이렇듯이 위대한 구세주를 모시게 되었도다!” 테오티모여, 정말 우리는 저 옛사람과 같이 말할 수 있으니, “우리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망하였으리라!”(Temistocle Plutarco Vita di Tem 29, 우리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구주께서 아니 오셨을 것이니, 우리는 망함으로 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멸망이 유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구세주로 말미암아 아담의 무구함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은총을 받았으니, 아담이 그 첫 은총의 상태에 계속 항구했다 할지라도 구세주를 통해서 받는 은총에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는 당신 자비의 은총을 인간에게 베풀어 주심과 함께 엄위로운 표적도 남겨 주셨으니, 예를 들면, 죽어야만 할 의무, 병고, 노동, 육체적 감각의 반항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미치는 하느님의 총우寵遇(남달리 귀여워하고 사랑하여 특별히 대우함)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해서는 그러한 불행을 아주 큰 이익으로 변케 해주신다. 노동으로써 인내를 닦게 하시고 필연적인 죽음으로써 세속을 가볍게 여기고 정욕의 무수한 원수와 싸워 승리를 거두게 하는 것 등이다. 마치 아스팔라토스(Ασπάλαθος, 영어-aspalathus는 가시 돋친 금작화의 일종이다)라는 가시나무에 무지개가 서면 백합보다 훨씬 향기로운 향기를 풍겨 주듯이, 우리 구세주의 구속 능력이 우리의 비참에 닿으면, 원조들의 무죄한 상태가 지닐 수 있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은혜롭고도 사랑겨운 가치가 있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구세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들어 두시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7)라고 하셨다. 그리고 구속된 상태는 무죄함의 상태보다 백배나 더 낫다. 참으로 십자가의 히솝(hyssop, 우슬초는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사하거나 마귀를 쫓는 의미로 피나 물을 적셔 뿌리는 풀이름이다-참조. 요한 19,29 시편 51,9)으로써 이루어진, 우리 구세주의 피로써 우리는 무죄함으로 눈같이 흰 것보다. 훨씬 더 비길 데 없는 순백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나아만Naaman처럼 우리는 구원의 시냇물에서 씻고 나옴으로써, 일찍이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순결할 수가 있으며(2열왕 5,14), 이는 하느님의 엄위가, 우리를 위해서도 배정하셨듯이, “악에게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한 그대로 악을 이겨내며, 당신의 그 자비하심은 축성된 기름처럼,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3) 한 그대로 심판에서 자신을 이기며, 또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네.”(시편 145,9) 한 그대로 그분의 부드러운 인자는 그의 모든 업적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