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님께서는 11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최되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 참석하실 예정이었다. 그러나 독감과 폐렴 증세로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부득이 여행을 취소하실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86세 고령에도 COP28을 찾아 꼭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이다.
대통령님, 유엔 사무총장님, 존경하는 각국 정부 정상과 수반 여러분,
안타깝게도 제가 그토록 원했던 모임에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미래가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환경 파괴가 하느님께 맞서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개인적인 죄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죄이기도 합니다. 구조적인 죄는 인류 전체를 위험에 크게 빠트립니다. 특별히 우리 중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세대 간의 갈등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기후 변화는 “전 세계적 사회문제이자 인간 존엄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사도적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라(Laudate Deum)」 3항)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지금 우리가 답을 해야만 하는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문화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생명의 문화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생명을 선택합시다! 미래를 선택합시다! 우리가 지구의 울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가난한 이들의 탄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젊은이들의 희망과 어린이들의 꿈에 예민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이 미래를 거부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현재 지구에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는 주로 인간 활동으로 인한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로 지구의 과열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해졌으며,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대로는 생태 시스템이 더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생산과 소유에 대한 욕망은 집요하게 과도한 탐욕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환경은 무분별한 착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친 듯한 날씨는 우리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멈추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성취의 삶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번 인식합시다.
이 길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분열입니다. “세계적 공동선보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나라들의 입장 때문에 협의는 중요한 진척을 이루지 못합니다.”(교황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 169항」)라고 말씀드린 대로 오늘날과 같이 완전하게 하나로 연결된 세상에서 세상을 통치하는 이들이 국제적인 협약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득과 사업상의 이득만을 계산하여 이를 보호하고자 고집스럽게 융통성 없는 입장을 견지하고, 때로는 과거에 행했던 일을 근거로 스스로 정당화하며, 주기적으로 남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려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어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일에 관한 것입니다. 내일은 좋든 싫든 모두의 것일 수도 있고, 그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빈곤층과 높은 출산율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단호하게 불식해야 할 거짓입니다. 이는 가난한 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절반에 가까운 가난한 이들이 배출하는 독성 물질은 10%에 불과하고,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일어나고 있는 일의 진정한 희생자들입니다. 원주민들이 당하는 곤경, 삼림 훼손, 비극적인 굶주림, 불안정한 식수와 식량, 강제 이주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자원입니다. 출산은 생명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비단 장갑을 낀 이들의 특정 이념과 실리적인 모델(ideological and utilitarian models)이 가족과 민족들을 진짜 식민지화로 밀어붙입니다. 이미 심각한 경제적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국가의 발전에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우리는 “생태적 빚(부채, ecological debt)”에 책임이 있는 몇몇 소수 국가의 발자취를 고려해야만 합니다.(참조. 앞의 책, 51-52항) 생태적 부채만이 아니라 여러 민족에게 부담을 주는 재정적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찾는 것이 온당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형제자매로서 살고 있는 공동의 집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질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요 며칠간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함께 하는 길(the way of togetherness), 다국간 공동 정책(multilateralism)의 길입니다. 실로 “우리 세상은 매우 다극화되고, 동시에 몹시 복잡해져서 효과적 협력을 위해서는 다른 틀이 필요합니다. 힘의 균형만을 생각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전 지구적이고 효과적인 규칙들을 수립하는 문제입니다.(「하느님을 찬미하라(Laudate Deum)」 42항)” 이런 점에서 지구는 뜨거워지면서도 다국간 공동 정책은 냉각되고, 국제 사회 공동체 안에 신뢰가 떨어지며, “한 가족이라는 공동 의식”(성 요한 바오로 2세, 유엔 설립 50주년 기념 연설 4항, 뉴욕, 1995년 10월 5일)을 잃어가는 것은 우려스럽습니다. 다국간 공동 정책의 토대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창조계에 대한 보살핌뿐만 아니라 평화에도 사실입니다. 이 모두는 시급한 문제이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현재 진행 중인 수많은 전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키우고만 있는 분쟁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요! 얼마나 많은 자원이 생명을 파괴하고, 우리 공동의 집을 황폐화하는 무기로 낭비되고 있는지요! 저는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 “무기와 군사 장비에 쓰이는 돈으로 세계 기금을 조성하여 기아를 종식할 수 있도록”(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262항;참조-교황 회칙, 성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51항) 하고, 더 가난한 나라들의 개발이 지속할 수 있게 하며, 기후 변화에 대처하도록 합시다.
민족들과 젊은이, 어린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다국간 공동 정책 협의의 틀을 마련하는 것은 이 세대의 몫입니다. 바로 우리 공동의 집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기후 변화는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들입니다. 이기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편협함에서 벗어납시다. 이런 것들은 과거에 속하는 접근방식입니다. 대안이 될 비전을 수용하는 데에 동참합시다. 이러한 비전은 “문화의 변화 없이는 지속적인 변화가 없다”(「하느님을 찬미하라」 70항)라는 말대로 생태적 회심을 가져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교육 사업에 깊이 관여하면서 모든 이에게 책임이 있고 각자의 헌신이 기본이므로 모든 이의 참여와 건전한 생활양식을 독려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헌신과 지원을 여러분에게 확신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싸움은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하였고, 2015년 파리 협정은 “새로운 시작”(앞의 책 47항)을 대표합니다. 이제 새롭게 세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COP가 전환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효과적이며, 의무적이고, 쉽게 검증할 수 있는(efficient, obligatory and readily monitored)”(같은 책, 59항) 생태적 전환을 결정적으로 가속화 할 수 있도록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정치적 의지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너지 효율, 재생 자원, 화석 연료 제외, 화석 연료에 덜 의존하도록 하는 교육(energy efficiency; renewable sources; the elimination of fossil fuels; and education in lifestyles that are less dependent on the latter)”이라는 네 가지 부문에서 성취해야 합니다.
제발 뒤로 가지 말고 앞으로 갑시다. 여러 다양한 협약과 약속이 “감시, 정기 검사, 위반 행위 제재를 위한 적절한 장치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찬미 받으소서」 167항)에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은 더는 미룰 때가 아니며 여러분의 자녀와 시민들, 나라와 우리 세상의 복지에 대해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보장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들은 구체적이고도 일관된 대응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 역할의 고귀함과 여러분들이 수행하고 있는 봉사의 존엄성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결국 권력의 목적은 봉사입니다. “시급하고 반드시 실행할 필요가 있는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 정치인으로 기억될 뿐일”(앞의 책, 57항) 권위에 매달려봤자 소용없습니다. 역사가 당신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사회들은 슬프게도 파멸의 예언자와 무관심한 방관자,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들, 기후 변화 거부자들…이런 “팬들”로 쪼개져 있습니다. 그런 싸움에 편들어보았자 쓸모없습니다. 평화의 경우에서처럼 상황을 치유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정책들이 치유입니다. 위에 계신 분들로부터 구체적이고도 응집력을 가져오는 좋은 모범이 나온다면 이미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이 우리 공동의 집을 보살피느라고 헌신하고 있는 기반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24년에 이런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1224년에 일어난 사건에서 좋은 징조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해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창조계의 노래(Canticle of the Creatures)’를 썼습니다. 그때 프란치스코는 완전히 앞이 보이지 않은 채, 신체적인 고통의 밤을 보낸 후 신비스러운 체험으로 영혼이 고양되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을 찬미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모든 피조물이 같은 아버지에게서 나왔으며 남성과 여성으로 나뉜 형제요 자매임을 알았습니다. 형제애에 대한 영감으로 그는 고통을 찬미로 바꾸었으며 고단함을 새로운 헌신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프란치스코는 용서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을 찬양하는 단락을 추가했는데, 이는 권력을 두고 시민과 지역 주교 사이에 벌어진 부적절한 갈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저 역시 기도의 간절함을 담아 여러분께 이 메시지를 남기고자 합니다. 분열을 뒤로 하고 힘을 합칩시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전쟁과 환경 파괴의 어두운 밤을 새롭고 빛나는 날의 여명으로 바꾸어 우리 공동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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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we working for a culture of life or a culture of death? To all of you I make this heartfelt appeal: Let us choose life! Let us choose the future!“
* Cardinal Pietro Parolin, the Pope’s Secretary of State, read the address the Holy Father had prepared for the COP28. The Pope cancelled his trip, upon the advice of his doctors, as he continues to battle a bronchial inf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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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President,
Mr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Distinguished Heads of State and Government,
Ladies and Gentlemen,
Sadly, I am unable to be present with you, as I had greatly desired. Even so, I am with you, because time is short. I am with you because now more than ever, the future of us all depends on the present that we now choose. I am with you because the destruction of the environment is an offence against God, a sin that is not only personal but also structural, one that greatly endangers all human beings, especially the most vulnerable in our midst and threatens to unleash a conflict between generations. I am with you because climate change is “a global social issue and one intimately related to the dignity of human life” (Apostolic Exhortation Laudate Deum, 3). I am with you to raise the question which we must answer now: Are we working for a culture of life or a culture of death? To all of you I make this heartfelt appeal: Let us choose life! Let us choose the future! May we be attentive to the cry of the earth, may we hear the plea of the poor, may we be sensitive to the hopes of the young and the dreams of children! We have a grave responsibility: to ensure that they not be denied their future.
It has now become clear that the climate change presently taking place stems from the overheating of the planet, caused chiefly by the increase of greenhouse gases in the atmosphere due to human activity, which in recent decades has proved unsustainable for the ecosystem. The drive to produce and possess has become an obsession, resulting in an inordinate greed that has made the environment the object of unbridled exploitation. The climate, run amok, is crying out to us to halt this illusion of omnipotence. Let us once more recognize our limits, with humility and courage, as the sole path to a life of authentic fulfilment.
What stands in the way of this? The divisions that presently exist among us. Yet a world completely connected, like ours today, should not be un-connected by those who govern it, with international negotiations that “cannot make significant progress due to positions taken by countries which place their national interests above the global common good” (Encyclical Letter Laudato Si’, 169). We find ourselves facing firm and even inflexible positions calculated to protect income and business interests, at times justifying this on the basis of what was done in the past, and periodically shifting the responsibility to others. Yet the task to which we are called today is not about yesterday, but about tomorrow: a tomorrow that, whether we like it or not, will belong to everyone or else to no one.
Particularly striking in this regard are the attempts made to shift the blame onto the poor and high birth rates. These are falsities that must be firmly dispelled. It is not the fault of the poor …
Particularly striking in this regard are the attempts made to shift the blame onto the poor and high birth rates. These are falsities that must be firmly dispelled. It is not the fault of the poor, since the almost half of our world that is more needy is responsible for scarcely 10% of toxic emissions, while the gap between the opulent few and the masses of the poor has never been so abysmal. The poor are the real victims of what is happening: we need think only of the plight of indigenous peoples, deforestation, the tragedies of hunger, water and food insecurity, and forced migration. Births are not a problem, but a resource: they are not opposed to life, but for life, whereas certain ideological and utilitarian models now being imposed with a velvet glove on families and peoples constitute real forms of colonization. The development of many countries, already burdened by grave economic debt, should not be penalized; instead, we should consider the footprint of a few nations responsible for a deeply troubling “ecological debt” towards many others (cf. ibid., 51-52). It would only be fair to find suitable means of remitting the financial debts that burden different peoples, not least in light of the ecological debt that they are owed.
Ladies and Gentlemen, allow me to speak to you, as brothers and sisters, in the name of the common home in which we live, and to ask this question: What is the way out of this? It is the one that you are pursuing in these days: the way of togetherness, multilateralism. Indeed, “our world has become so multipolar and at the same time so complex that a different framework for effective cooperation is required. It is not enough to think only of balances of power… It is a matter of establishing global and effective rules (Laudate Deum, 42). In this regard, it is disturbing that global warming has been accompanied by a general cooling of multilateralism, a growing lack of trust with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a loss of the “shared awareness of being… a family of nations” (SAINT JOHN PAUL II, Address to the United Nations Organization for the Fiftieth Anniversary of its Establishment, New York, 5 October 1995, 14). It is essential to rebuild trust, which is the foundation of multilateralism.
This is true in the case of care for creation, but also that of peace. These are the most urgent issues and they are closely linked. How much energy is humanity wasting on the numerous wars presently in course, such as those in Israel and Palestine, in Ukraine and in many parts of the world: conflicts that will not solve problems but only increase them! How many resources are being squandered on weaponry that destroys lives and devastates our common home! Once more I present this proposal: “With the money spent on weapons and other military expenditures, let us establish a global fund that can finally put an end to hunger” (Encyclical Letter Fratelli Tutti, 262; cf. SAINT PAUL VI, Encyclical Letter Populorum Progressio, 51) and carry out works for the sustainable development of the poorer countries and for combating climate change.
It is up to this generation to heed the cry of peoples, the young and children, and to lay the foundations of a new multilateralism. Why not begin precisely from our common home? Climate change signals the need for political change. Let us emerge from the narrowness of self-interest and nationalism; these are approaches belonging to the past. Let us join in embracing an alternative vision: this will help to bring about an ecological conversion, for “there are no lasting changes without cultural changes” (Laudate Deum, 70). In this regard, I would assure you of the commitment and support of the Catholic Church, which is deeply engaged in the work of education and of encouraging participation by all, as well as in promoting sound lifestyles, since all are responsible and the contribution of each is fundamental.
Brothers and sisters, it is essential that there be a breakthrough that is not a partial change of course, but rather a new way of making progress together. The fight against climate change began in Rio de Janeiro in 1992, and the 2015 Paris Agreement represented “a new beginning” (ibid., 47). Now there is a need to set out anew. May this COP prove to be a turning point, demonstrating a clear and tangible political will that can lead to a decisive acceleration of ecological transition through means that meet three requirements: they must be “efficient, obligatory and readily monitored” (ibid., 59). And achieved in four sectors: energy efficiency; renewable sources; the elimination of fossil fuels; and education in lifestyles that are less dependent on the latter.
Please, let us move forward and not turn back. It is well-known that various agreements and commitments “have been poorly implemented, due to the lack of suitable mechanisms for oversight, periodic review and penalties in cases of non-compliance” (Laudato i’, 167). Now is the time no longer to postpone, but to ensure, and not merely to talk about the welfare of your children, your citizens, your countries and our world. You are responsible for crafting policies that can provide concrete and cohesive responses, and in this way demonstrate the nobility of your role and the dignity of the service that you carry out. In the end, the purpose of power is to serve. It is useless to cling to an authority that will one day be remembered for its inability to take action when it was urgent and necessary to do so (cf. ibid., 57). History will be grateful to you. As will the societies in which you live, which are sadly divided into “fan bases”, between prophets of doom and indifferent bystanders, radical environmentalists and climate change deniers… It is useless to join the fray; in this case, as in the case of peace, it does not help to remedy the situation. The remedy is good politics: if an example of concreteness and cohesiveness comes from the top, this will benefit the base, where many people, especially the young, are already dedicated to caring for our common home.
May the year 2024 mark this breakthrough. I like to think that a good omen can be found in an event that took place in 1224. In that year, Francis of Assisi composed his “Canticle of the Creatures”. By then Francis was completely blind, and after a night of physical suffering, his spirits were elevated by a mystical experience. He then turned to praise the Most High for all those creatures that he could no longer see, but knew that they were his brothers and sisters, since they came forth from the same Father and were shared with other men and women. An inspired sense of fraternity thus led him to turn his pain into praise and his weariness into renewed commitment. Shortly thereafter, Francis added a stanza in which he praised God for those who forgive; he did this in order to settle – successfully – an unbecoming conflict between the civil authorities and the local bishop. I too, who bear the name Francis, with the heartfelt urgency of a prayer, want to leave you with this message: Let us leave behind our divisions and unite our forces! And with God’s help, let us emerge from the dark night of wars and environmental devastation in order to turn our common future into the dawn of a new and radiant day. Thank you.
I am with you.
이 말씀이 왜 이리 절실히 느껴지는지요?
기후 자연환경에 대한 심각한 교황님의
절규는 자연의 절규
지구의 절규라고
생각합니다.
나 하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실천하겠습니다.
소식 감사합니다. 밑의 영어 내용도
꾬꼼하게 살피겠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교황님의 마음이 합쳐져서
뭉클한 연설문 이었습니다. COP28에 참가한 영향력있는 모든 이들이 적극적으로 환경파괴와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들을 바로잡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교황님의 간절한 호소에 우리모두 마음을 기울이고 회개합시다. 그래서 지구를 살립시다.
우리 생명도 살립시다!!
교황님의 연설문 감동이네요~
“기후 변화는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들입니다.” 공감합니다~
부디 교황님의 바램과 저희 모두의 바램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