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아쿠티스(10월 12일)

1. 세상에 들어온 카를로

카를로 아쿠티스가 태어나던 1991년 5월 3일, 병원의 산부인과 담당 의사는 “참 사랑스럽고 예쁜 아드님의 출산을 축하드립니다.” 하면서 어머니 안토니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아빠인 안드레아는 곁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감사합니다. 애쓰셨습니다. 정말 특별한 아이입니다.” 하고 거들며 감사를 전했다. 여느 아기가 다 그러하겠지만, 아주 작고 귀여운, 평화롭게 아름다운 아기가 태어나던 기쁨의 순간이었다. 사업차 잠시 영국에서 머물던 부모들 덕에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출생한 카를로였지만, 몇 달 후 아기는 부모와 함께 부모들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카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아이를 보여주고 싶어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에 있던 다른 가족들을 비롯하여 친구들은 하루라도 빨리 카를로를 보고 싶어 애가 탈 지경이었다. 아들을 얻은 카를로의 아빠에게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첫아들이었고, 한참 동안 동생이 없이 지내야 했던 카를로였으므로 아빠나 가족들의 기쁨은 온통 카를로에게 집중되었다. “사실 저는 제 아들이 정말 다른 아이들처럼 성장해 갈 것인가에 관해서만 생각해도 그저 신비일 뿐이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작은 아기가 언젠가 저처럼 큰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믿어지지가 않았죠.”라고 아빠는 웃으며 당시를 회고한다. 아무도 이 아이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어린이 성인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성인 중 한 분이었던 도미니코 사비오나 알로이시오 곤자가와 같은 성인들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할 것이었다.

카를로의 부모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아기의 출생 당시에는 사실 그리 열심한 신자가 아니었다. 특별히 엄마는 주일 미사에도 거의 나가지 않는 상태였다. 아빠는 가끔 성당에 나갔지만, 일에 치여 그저 할 수 있는 만큼만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몇 년 안으로 이러한 상황은 카를로 덕에 놀랍게도 바뀌었다. 카를로는 출생 후 얼마 안 있어 생애 첫 번째 성사인 세례성사를 받았다. 주님의 생명이 아기의 영혼과 육신을 차지했고, 카를로는 하느님의 아기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 안에 일원이 된 바로 그 첫날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해 9월 카를로와 부모는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이주했고, 카를로는 거기서 자랐다. 카를로는 집 밖에서 노는 것을 참 좋아했고, 특별히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들에 유달리 많은 관심을 보였다. 벌과 나비들을 바라보고, 개미나 꽃들을 좋아했으며, 다람쥐나 주변의 온갖 것들에 온통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시편 19,2) 하듯이 하느님의 아기에게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지들이었다. 성경을 읽는 이들이건 그렇지 못하는 이들이건 사람들에게 피조물은 하느님을 알려주는 손가락들이다. 천천히 주변을 관찰하고 자연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느님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2. 동물을 매우 좋아한 아이

카를로가 성장해가던 어느 날 엄마 아빠가 함께 있던 자리에서 카를로가 엄마에게 “엄마, 혹시 강아지 한 마리만 함께 살면 안 되나요? 제가 잘 돌볼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물론 이미 부모들은 아이가 자연을 좋아하고 특별히 동물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를로는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의 이야기를 들었고, 성인께서 동물들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도 이미 들었던 터였다. 카를로의 질문에 아빠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그럼, 안 될 게 없지.”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우리와 함께 살 강아지를 잘 보살필 만큼 책임감이 있다고 믿는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카를로는 “그럼요, 아빠. 아씨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저도 동물들에게 잘 해줄 거에요.” 하고 대답했으며 이후 그 약속을 잘 지켰다.

마침내 어느 날 아빠는 아들을 데리고 애견 센터에 갔다. 그런데 분양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부자는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함께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에 카를로가 “정말 결정하기가 쉽지 않네요, 아빠! 혹시 지금 분양한다고 하는 쟤네들을 모두 다 데리고 집으로 가면 안 돼요?” 하고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아빠는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엄마는 오늘 한 마리만 데리고 오기를 바라실걸.”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카를로도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도 넘게 애견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부자는 마침내 매우 사랑스럽고 활발한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선택했다. 강아지는 거의 검은색이었고 얼굴과 발목 부분에 흰색이 있었다. “이 녀석으로 할래요.”라는 카를로의 말에 아빠는 “아들아,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선생님께 알리고 집으로 데려갈 준비를 해 주시라고 할께!”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집으로 아빠와 함께 돌아온 카를로는 강아지와 함께 뒹굴고, 강아지는 짖어대며 온 집

안을 뛰기 시작했다. 강아지도 비로소 자기 집이라는 곳에 왔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엄마는 함께 기뻐하면서 혹시 강아지의 이름을 지어주었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카를로는 “뚜또마또(*이탈리아어로는 직역하면 ‘완전히 미친놈’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역설적으로 ‘너무 사랑스러워 미칠 만큼 사랑스러운 녀석’이라는 뜻이다)라고 할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식구들 모두 그 이름이 당연하고 좋은 이름이라고 받아들였고, 이후 강아지는 그 이름으로 불렸다. 약속대로 카를로는 뚜또마또를 너무 사랑했고 그를 보살피겠다고 한 약속을 잘 지켰다. 매일매일 먹이를 제때 챙기고 산책하러 나가며 함께 놀아주는 시간을 지켰다. 강아지가 가끔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조차도 “정말 대단한데, 짜아식!” 하며 이를 받아들였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코께서도 뚜또마또를 사랑하는 나의 이러한 모습을 좋아하실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서 카를로는 더 많은 애완동물을 집에 들이고 싶어 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동물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또 그리고 우리는 우리 집의 수호성인으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모시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카를로의 생각이었다. 카를로는 특별히 개와 고양이들을 좋아했다. 부모는 카를로가 동물들을 사랑하고 함께 사는 동물들을 잘 보살피는 것을 보고, 거의 매년 새로운 식구들을 더하도록 해 주었는데, 집에는 나중에 4마리의 개들과 2마리의 고양이로 불어나 있었다.

3. 소년 카를로

카를로는 또래의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많은 호기심이 있었다. 예를 들면 스파이더맨의 옷을 입고 분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럴 때면 “헤이, 뚜또마또, 이리 와. 지금부터는 스파이더맨 놀이를 하는 거야. 내가 스파이더맨이야.” 뚜또마또가 항상 카를로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항상 카를로가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게임은 끝났다. 카를로의 동물 사랑은 유별났고, 카를로는 동물들과 놀기를 매우 좋아했다.

주변 가족들이나 사람들도 카를로를 참 좋아했다. 카를로는 아주 명랑하고 활기찬 소년이었다. 카를로와 친구들은 온갖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서 함께 어울리곤 했다. 그중에 축구는 특별히 카를로가 아주 좋아하던 놀이였다. 카를로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카를로는 유소년 축구팀을 번갈아 가면서 여러 팀과 어울렸다. 카를로가 친구들과 있을 때면 친구들도 그를 무척 좋아했다. 바닷가에 갈 때면 친구들과 깊지 않은 바다 밑바닥에서 서로 보물찾기를 하였고, 뚜또마또와 산책을 하러 나갈 때면 주변이나 공원에 널린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그렇게 카를로는 이 땅 위 어디에 있든 그 주변을 조금이라도 낫고 아름답게 하며 기쁘게 하는 재주를 지닌 아이였다.

모든 부모가 자기의 자녀가 특별하고 신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지만, 카를로의 부모 역시 카를로가 이미 서너 살 때부터 재주가 많고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부모는 아이가 영적인 것들에 유달리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에 놀라워했다. “저는 이런 성향이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요. 저는 사실 열심히 성당에 나가는 엄마도 아니었고, 가톨릭 신앙에 그리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아빠가 저보다는 조금 더 신앙에 열심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항상 너무 바쁜 사람이었고 성당은 고사하고 카를로와 함께 놀아줄 시간마저도 충분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카를로가 이처럼 영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제게 아주 놀라운 일이었어요. 아이가 그렇게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의 그런 성향이 저와 예수님 간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게 해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아이가 저의 신앙을 복원시켜 주었고 저를 다시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해주었습니다. 보통으로는 신심이 깊은 부모나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마련인데, 우리의 경우는 정반대인 셈입니다. 아이가 우리의 신앙을 되살려 주었고 우리를 교회로 이끌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는 참 신비에요.”라고 엄마는 술회한다.

“제 생각에 카를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특별히 입었던 것 같아요.”라고 엄마 안토니아는 말하곤 했다. 카를로는 성당 옆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도 친구들에게 “봐, 성당이잖아. 예수님께서 저기 저 안에 계셔. 애들아, 성당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안녕!’ 하고 말씀드리러 들어가자.” 하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친구들은 도대체 예수님이 그 안에 어떻게 계신다는 말인가 하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그냥 친구를 따라 성당에 들어가곤 했다. 성당에 들어가면 카를로는 맨 앞줄에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합장한 다음 감실을 가리키며 “바로 저기에 그분이 계셔.” 하곤 했다. 그렇게 짧은 기도를 마친 카를로는 언제였냐는 듯이 애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다시 놀았다. 누구에게 배웠는지도 모르지만, 카를로는 이처럼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있었고 키워가고 있었다.

4. 예수님을 모시려는 깊은 열망

카를로가 마침내 일곱 살이 될 때였다. 카를로는 성체를 모시고 싶은 열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첫영성체를 좀 빨리하면 안 되나요? 하루라도 빨리 예수님을 제 안에 모시고 싶어요.” 당시 통상 아홉 살이 되어야 첫영성체를 허락하는 교구의 지침이나 관례가 있었으므로 엄마 안토니아는 놀라면서, “카를로야, 어린이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첫영성체를 할 수 없어. 앞으로 2년 더 기다려야 해.”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카를로는 엄마에게 자기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주님을 하루라도 빨리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계속 졸라댔다.

어찌할 줄을 몰랐던 부모는 당황했고, 그런 일이 가능한지조차 몰랐다. 그래서 어느 날 마끼(Pasquale Macchi, 1923~2006년) 대주교님께 이를 여쭈어보기로 했다. 마끼 대주교님은 “아쿠티스 부인, 부인의 아들은 첫영성체를 하기에 아직 꼬박 2년이 더 남아있군요. 그렇지만, 정말 아드님이 영성체를 원한다면 이러한 특별한 허락이 과연 가능할지를 아드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좀 해야 할 것 같군요.”라고 대답을 주셨다. 그렇게 하여 대주교님과의 면담이 이루어졌고, 카를로를 만나신 대주교님은 “카를로는 아주 예외적인 아이입니다. 카를로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이신 예수님을 받아 모시기에 준비가 되어있다고 봅니다. 저의 축복을 함께 드립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대주교님의 답을 들은 카를로는 터질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 대주교님께서 나에게 영성체를 허락하신 것일까?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게 정말일까?” 하고 몇 번을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는 “맞아, 사랑하는 아들아! 이번 토요일에 가까운 수도원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하기로 했단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고 말씀해 주셨다. 이에 카를로는 “오, 이번 토요일! 엄마, 정말 감사해요.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죠? 엄마 최고야!” 하고 답했다. 카를로는 토요일까지 몇 밤을 설레임 속에 잠을 설쳐야만 했다. 토요일에 영성체하게 되면, 그날 만이 아니라 성당 매일 미사에 가서 영성체를 매일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카를로의 생각은 매일의 영성체와 성체조배로 이어졌다. 물론 가장 깨끗한 영혼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고백성사를 자주 보곤 하였다.

첫영성체를 하면서 카를로는 “예수님, 당신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십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저의 고속도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카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햇빛을 받으면 얼굴이 거무스름해지는 것처럼…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받아 모시게 되면 우리 모두 성인들이 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5. 성모 마리아

“엄마, 혹시 성모님께서 포르투칼에서 세 어린이에게 발현하셨다는 것을 알아요?” 이렇게 묻는 카를로에게 엄마는 “물론, 알고말고.”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카를로는 “성모님께서는 그때 당신을 ‘묵주의 성모’라고 부르라고 하셨대요.” 하며 말을 이었다. 카를로는 최근에 세상 여기저기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놀라워하며 이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별히 성모님께서 어린이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카를로는 성모님께서 모든 이가 묵주기도를 열심히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이를 매일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엄마, 성모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엄마는 안 그래요?” 하면서 되풀이해서 물어오는 카를로에게 엄마는 “엄마도 그래.” 하면서 웃으며 대답하곤 하였다. 그럴라치면 카를로는 “좋아요. 그럼 함께 묵주기도를 하면 안 돼요?” 하면서 엄마를 조르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카를로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에게 같이 기도하자고 말했다. 카를로는 성모님의 부탁대로 매일 묵주기도를 올렸다.

카를로는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벨라뎃따에게 발현하신 이야기도 좋아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몸소 말씀하신 내용을 모두 일상에서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카를로는 곧잘 친구들에게 “너네들, 성모님께서 이웃 나라 프랑스 루르드에서 한 어린 소녀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 이때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죄로부터 돌아서 하느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셨대.”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이 말씀을 자기가 실천해야 한다는 것처럼 자주 고백성사를 하러 가면서 친구들을 데려가곤 하였다. 이처럼 카를로는 언제나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친구 하나에게 카를로는 “너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는 것을 알아? 우리도 죄인들을 위해서 희생과 보속을 해야만 해.”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이럴 때마다 친구에게 성당에 같이 가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초대하곤 하였다. 카를로는 “성모님은 온갖 덕의 완전한 모델이시니, 신앙의 모범이요 완전한 애덕의 지지자이시며, 우리를 거룩함의 길로 나아가도록 부추기신다. 성모님의 발현 이야기 하나하나는 많은 사람이 신앙을 키워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우리가 어떻게 이를 모르는 척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기록하였다. 카를로는 성모님의 전구와 중재로 일어난 여러 기적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데도 열중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이런 계획이 온전히 다 이루어지기 전에 그는 죽게 되었다. 아마도 성모님을 뵙는 것이 그에게는 더 급했던 모양이다.

6. 믿음을 행동으로

가까스로 열한 살이 될 무렵, 앞서 읽었던 대로 카를로는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교사가 되어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카를로는 지침이 없었다. 더 나아가고 싶었다. 카를로는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이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이신 예수님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를로는 6학년이 되어갈 무렵 어느 날 엄마에게 “엄마, 내가 교리 교사나 종교 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동안의 카를로에 따르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질문인 것이 분명했지만, 엄마로서는 그렇게 어린 나이인 카를로에게 감히 그것을 허락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몰랐다. 그래서 엄마는 “하지만, 카를로야, 넌 이제 겨우 열한 살이야.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라도 기다리는 것이 어때?” 하고 제안했다. 이에 카를로는 “그런데, 엄마. 저는 정말이지 다른 아이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얼마나 많은 애들이 예수님이나 가톨릭 신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지 몰라요. 그리고 엄마, 무엇보다도 제게는 시간이 많이 없어요.” 하면서 알 듯 모를 듯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카를로에게 이 지상에서의 삶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알려주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카를로는 다소 조급하듯이 무엇인가를 더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교리 교사가 되고 싶다는 카를로의 말을 두고 엄마는 본당 신부님과 몇 번을 두고 상의하였고, 마침내 본당 신부님은 이를 허락했다. 이미 카를로의 심성이나 열망을 잘 알고 있던 본당 신부님도 카를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카를로를 통해서 그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 하실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본당 신부님의 허락을 얻은 카를로는 날 듯이 기뻐하면서 또래 아이들을 모아 교리 수업, 특별히 예수님과 성체성사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 주변 사람들 아무도 그가 열한 살 어린이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의 일이었다.

카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봉사하는 일에 무엇인가를 더욱더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특별히 좋아했던 카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카를로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동물들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성체성사의 신심에 열성이었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도와주는 일을 위해 일생을 살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급기야 카를로는 가난한 이들이 무료 급식을 위해 자선 카페에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허락하에 카를로는 매주 토요일에 그 카페에 나가 배고파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급식 봉사를 거들었다. 물론 카를로는 자기 용돈을 절약하여 그 돈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음식을 더 사드리고 싶어 했다. 비교적 큰 어려움과 부족함이 없이 풍요롭게 살던 카를로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배고픔을 안타까워했다. 카를로는 이밖에도 기쁘지 않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또래들이나 다소 손 위의 형들까지도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카를로는 약한 애들을 보호하려고 했으며 특별히 왕따를 당하는 애들에게 힘이 되어주려 노력했다. 카를로는 간간이 부모님들이 이혼으로 갈라서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게 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지내는 일도 했다.

카를로의 학급 친구들은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려고 카를로를 찾기도 했으며, 카를로는 온갖 복잡한 배경이나 문화 안에서도 애들이 쉽고도 바른 길을 찾아가도록 지혜를 가진 듯이 보였다. 이웃들은 누구나 카를로를 좋아했다. 살고 있는 단지를 관리하시는 아저씨들을 비롯하여 가끔 집을 정리하러 찾아오는 분들까지, 많은 경우 이런 분들은 무슬림이나 힌두교를 문화적이나 종교적 배경으로 삼는 분들이었는데도 그 누구 하나 카를로를 싫어하는 일이 없었다. 카를로는 누구에게나 자기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의 이야기를 기쁘게 들어주려고 했다. 그런 분 중 라제쉬Rajesh라는 힌두교 배경의 한 분이 계시는데, 카를로는 그분과 우정어린 특별한 관계를 맺었고, 결국 그 라제쉬는 카를로 때문에 개종하여 가톨릭 신자가 될 정도였다.

7.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 관해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어요.”

2002년 아직 열한 살이었던 카를로는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친구 신부님께서 성체성사에 관해서, 특별히 성체성사의 기적에 관해 말씀하시는 자리에 갔었다.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당신께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다는 말씀을 들은 카를로는 너무나도 감동했고, 급기야 “엄마,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 참으로 계시면서 사람들을 당신께로 불러들이시고자 이렇게 많은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람들이 이 이야기들을 알기만 하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자기들의 제일 좋은 친구를 알아야만 해요.”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래, 카를로야. 네가 옳아. 이러한 기적들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좋으련만!” 하고 대답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카를로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카를로는 주님께서 자기를 통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알리도록 원하신다고 생각했다. 카를로에게 열한 살이라는 나이가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유럽에서 성체성사의 기적을 다룬 사이트들이 있는지 살펴보아야겠어. 그래서 사람들이 세계 여행을 하듯이 그런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전시회를 개최해야겠어.”라고 생각하는 카를로의 생각을 들은 부모는 카를로의 의도나 생각을 이미 잘 알고 있던 터라 이러한 카를로의 생각에 선뜻 동의했다. 그래서 카를로는 무려 130여 개에 달하는 성체기적에 관련한 사이트들을 2년 반 동안 열심히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각각의 사이트를 방문하면서 카를로는 성체성사의 기적들이 발생한 배경이나 과정에 관해 사진들과 세부 사항들을 정성스럽게 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자료를 가지고 전람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소식들이 주변에도 조금씩 알려지고 이 나라 저 나라의 주교님들까지도 나서서 이러한 전람회를 자기 고장에서도 개최해달라는 요청을 해 오셨다. 불과 열세 살짜리 어린이가 개최하는 전시회라는 것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믿기 힘들 정도였다. 전시회는 수많은 본당과 다른 나라에까지 건너가 개최되었다.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카를로에게 이는 사람들에게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에 불과했다. 어쩌면 카를로 역시 평생을 두고 해야만 하는 소명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를로는 거기까지가 자기 소명의 끝이라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카를로는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있던 자리에서 “엄마, 아빠! 저는 사람들이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일에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하고 말했다. 부모는 그저 말 없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부모 역시 카를로가 다음에 어떤 단계로 나아갈지, 무엇이 그를 가로막아서게 될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카를로는 어느 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생각에 꽂혔다. 그는 “인터넷이야, 인터넷!” 하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지금 이러한 전시회의 내용을 인터넷 웹사이트에 게재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카를로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었다. 카를로는 즉시 웹페이지 작성하는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는 카를로에게 명석하고도 창의적인 생각들을 하게 해 주셨다. 얼마 안 가서 카를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모두 한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

8. “예수님의 집으로 곧 갈 거야.”

카를로는 교황님께 지대한 사랑을 보였다. “결국, 이 땅에서는 교황님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시고 있는 것이야.” 하고 생각하게 된 카를로에게 다른 말이 더 필요 없었다. 그래서 카를로는 매일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드리고 싶어 했다. 카를로가 아직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의 교황님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었다. 당시 교황님께서도 이러한 카를로의 생각과 그가 바치는 기도를 무척 좋아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당시 곧 성인이 되실 교황님을 두고 장차 성인이 될 소년이 기도하고 있던 순간들이었다.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거룩한 소년에게 어린 나이에 성덕을 이루었던 성인들에 관한 의미들을 발견하게 하셨다. 이에 따라 카를로는 짧은 생의 나이에 성덕을 이루었던 성인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라든가. 성 타르치시오,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와 같은 성인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었다. 카를로는 그와 같은 성인들이 어떻게 예수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 그들의 모범을 따라 배우려고 애썼다. 카를로는 심지어 그렇게 어린 성인들의 웹페이지를 제작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성덕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중, 카를로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카를로는 정기 건강 검진에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감기 증세려니 했다. 그러나 뭔가가 잘못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여러 검사와 진찰을 통해 병원의 의사들은 마침내 카를로가 희귀한 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 말은 암처럼 빨리 전이가 되면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이기도 했다.

카를로는 즉시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고통이 지속하는 중에 카를로는 그 고통을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봉헌하고 싶어 했다. 어느 날 많이 불편하거나 아프냐고 묻는 의사들의 질문에 카를로는 “저보다 더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요.” 하는 대답을 하곤 했다. 어린 카를로는 항상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려는 소년이었다.

카를로는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에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원죄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허락하셔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교회의 성사들이 우리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견디게 하는 하느님 자비의 수단임을 믿었다. 그가 죽기 전 카를로는 “엄마, 저는 병원을 떠나고 싶어요. 그러나 살아서는 못 나가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죽더라도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표시들을 보여 드릴 수는 있을 거예요.” 하고 말했다. 엄마는 찢어지는 가슴을 쥐어짜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 거룩한 아들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곤 했다. 카를로는 이렇게 항상 자기 생애 동안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이셨던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온전히 신뢰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곧 부르실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카를로는 “저는 행복하게 죽습니다. 저는 제 생애 동안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 말고 다른 짓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축내지는 않았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그는 하느님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온 일생을 살았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매일매일을 살았다. 그는 죄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구세주이신 분을 기분 나쁘게 할 것을 알았으므로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카를로는 언제나 웃음을 짓고 싶어 했으며 고통스러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불평하려 하지 않았다.

9. 이 세상 마지막 시간들

마지막 순간에 카를로는 너무 약해져서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카를로는 자기가 너무 무거워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자기를 운반하는 데 힘이 들까 봐 걱정했다. 백혈병이라는 병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병인데도 주님께서는 카를로에게 죽는 순간의 몸무게를 가르쳐 주셨던가 보다. 카를로는 죽기 아직 몇 달 전에 부모님들에게 “제가 죽을 때 아마 70킬로 정도 될 거에요.”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들은 이 말을 듣고 카를로가 실제로는 몸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상태였으므로 죽기 전에 약간 더 쇠약해져서 몸무게가 빠지려나 하고 짐작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세상을 뜨기 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카를로는 몸무게가 빠지면서 정확히 70킬로 정도의 몸무게로 죽었다.

부모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는 카를로가 믿기지 않아서 그가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에서 카를로는 부모님들에게 “골고타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아무도 십자가를 피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칼바리라고도 불리는 골고타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자리를 말한다. 주님께서는 카를로에게 그가 언제 죽을지를 알려주셨다. 한 가지 더 신기한 일은 카를로가 자기의 죽음에 관한 직접 사인死因을 벌써 한참 전에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카를로는 언젠가 부모님들에게 “어느 날, 너무 멀지 않은 날에 제 머릿속의 혈관이 파열되게 될 것인데, 그것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저를 이 세상에서 당신 나라로 데려가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부모들은 애가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를로의 죽음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부모는 그제야 주님께서 카를로에게 이미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카를로가 이 세상을 떠나 천상의 집으로 옮겨가게 되던 순간 의사들은 백혈병이 원인이 되어서 뇌 속의 혈관이 파열되었고, 이것이 카를로가 숨을 거두게 된 직접 사인이라고 부모에게 통보하였다.

사랑스러운 아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카를로의 어머니는 “누군가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두려움은 예수님을 모르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에서도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리라 믿어요.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해요. 그것이 우리가 거룩해지는 하나의 길이랍니다. 우리 인생에는 고통을 받아들일 많은 기회가 있어요. 인간적인 눈으로, 그리고 세속적인 시선에서만 본다면 저는 그 어떤 위로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카를로는 저에게 고통을 어떻게 하면 믿음의 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어요.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또 귀한 아들이었어요. 불평 한마디 없는 웃음, 이것이 그가 주님의 뜻을 받아들인 방식이에요. 카를로는 ‘나 말고 하느님!’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카를로는 진정 예수님 중심으로 살았으며,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면서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그의 비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카를로가 죽은 것은 그가 성인이 되는 길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카를로는 육신으로는 죽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으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다. 우리도 그가 기도로 우리를 도와주도록 바란다.

10. 하늘의 왕관

카를로는 동물들을 무척 사랑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온 가족이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장인 아씨시에 묻혔다. 그의 장례식 날에는 많은 친구와 카를로를 좋아했던 수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카를로의 어머니는 “저는 생애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라고 회상한다. 그날 수많은 사람이 카를로의 어머니에게 그때까지 들어보지도 못했던 카를로가 행했던 좋은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많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은 카를로가 도와주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다. 카를로는 말로만 좋은 일을 떠벌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이를 조용히 실천에 옮기면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알고 있었던 아이였다. 주님께서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마태 6,4)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카를로의 장례식 후에 그의 고향 밀라노에서는 <카를로 아쿠티스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친구 카를로의 거룩한 생애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랬다. 물론 carloacutis.com라는 웹사이트도 제작되었다.

카를로는 죽어서도 여전히 천국에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가 죽기 전, 하늘 나라로 떠나기 전 그의 어머니에게 자기 죽음의 표시들에 관해서 얘기한 것을 기억하는가요? 카를로의 부모들은 더 많은 자녀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실제로는 카를로가 죽을 때까지 건강상의 이유로 그럴 수가 없었다. 카를로가 태어난 지 거의 20년이 될 무렵 어머니는 마흔네 살의 늦은 나이로 쌍둥이를 얻었다. 어머니 안토니아는 노산老産이므로 과연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다. 담당 의사는 걱정하지 말라며 “출산 예정일이 10월 12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카를로가 세상을 떠나던 날이었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2020년 10월 10일에 복자로 선포되었다. 교회가 어떤 사람을 복자로 선포한다는 것은 그가 하늘 나라에 있으며 아직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동시에 성인으로 선포되기 전 마지막 단계임을 알리는 것이다. 성인으로 선포되면 온 세계 어디서나 그분을 기념하는 날에 그분의 이름으로 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을 말한다. 성인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복자이신 분의 이름으로 중재를 청하여 기도하고, 그 기도로 이루어진 기적을 교회가 확인하는 절차가 남는다.

카를로의 어머니 안토니아는 카를로의 거룩한 생애와 그 비밀에 관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기를 바란다. “저의 아들에게 이미 죽음이 임박했던 무렵 어느 날 저녁, 꿈속에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분께서는 카를로가 교회의 높은 지위에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셨어요.”라고 어머니는 말한다. 카를로가 정말 성인이 될지 어떨지 아직은 모르지만, 어머니 안토니아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이 아마도 어린 카를로가 성인품에 오를 것이라는 말씀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카를로는 전무후무한 현대 청소년의 모범이다. 카를로는 도미니코 사비오나 마리아 고레티, 성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처럼, 또 다른 많은 어린 성인들처럼 자기가 걸어갔던 성화의 길에 모든 어린이나 청소년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넘어 어른들까지도 복자 카를로의 성덕을 배워 익혀가야 한다.

11. 천상 카를로의 기적

어린 청소년에 불과했던 카를로 아쿠티스를 복자품에 올려놓은 기적에 관해 브라질 성 세바스티안 본당의 마르첼로 테노리오Marcelo Tenorio 신부는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 “대략 10여 년쯤 전에 저는 저의 대자 로드리고를 통해서 카를로 아쿠티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스토리를 알게 된 저는 즉시 카를로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카를로 아쿠티스, 청소년의 천사>라는 단체를 만들었죠. 카를로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고 이곳 브라질에서는 많은 이로부터 무척 사랑받는 분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그분의 가족들과도 연락하면서 매년 카를로 아쿠티스 무덤을 찾아 그의 무덤에서 그의 중재를 기도하기 위해 아씨시를 순례하는 여행을 기획하기도 했죠. 그로부터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기적이 카를로 아쿠티스의 이름과 중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테노리오 신부는 어느 날 자신이 기획했던 이탈리아 성지 순례 기간에 카를로의 아버지에게 브라질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지는 ‘아파레시다의 우리 어머니’라는 성모님 상본을 하나 건네게 되었는데, 그런 인연으로 그 상본이 밀라노에 있는 카를로의 침실에 놓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저는 우리 성모님께 카를로의 복자품에 필요한 기적이 이곳 브라질에서 일어나게 해 주시라고 기도했어요. 저는 그런 저의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데에 카를로의 방에 있게 된 그 상본이 이러한 저의 기도를 보증해주셨다고 믿습니다. 정말이지 이는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그 기적이 바로 이곳 브라질, 그것도 제가 사목하고 있는 이곳 세바스티안 본당에서 일어났으니 말입니다.”라면서 테오리노 신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대한 응답을 우리가 있는 이 현재에 특별한 방법으로 주신 것이다.

테오리노 신부는 그 기적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2010년 10월 12일, 저는 우리 아파레시다의 성모님을 기념하는 성당에서 카를로의 유해를 모시고 사람들을 축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분이 자기 손주를 데리고 앞으로 나오셨습니다. 그 손주는 오랫동안 복통을 호소했으며 모든 것을 토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마시지도, 또 그렇다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의사들이 손 쓸 길이 없다고 하면서 손주는 점점 야위어갔고 얼마 안 있어 죽을 것이라고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축복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상태에서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축복을 청해야 해요?’ 이에 할아버지는 ‘네가 토하지 않도록 청해라.’ 하였습니다. 그 손자의 차례가 되자 손자가 카를로의 유해를 붙들고 큰 소리로 ‘제가 토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손자는 토하는 것을 멈추었고 다시는 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2월, 의사들은 손자가 완전히 다 나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어린 손자의 끔찍한 질병이 말끔히 나았다. 사진에서 보는 그 손자의 활짝 웃는 얼굴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카를로도 먹기를 참 좋아했었다. 아마도 그래서 카를로가 그 어린 친구를 위해 기도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 참된 양식, 우리가 매일 구해야 하는 음식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이시지만 말이다.

12. 카를로가 남긴 명언들

“성덕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그것을 마음을 다해 구해야만 합니다. 그런 마음이 당신의 마음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주님께 계속해서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유한한 이 세상이 아니라 무한한 천국입니다. 천국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는 계속 천국을 그리워합니다.”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를 하십시오. 매일 묵주기도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경을 읽으십시오. 감실 앞에서 잠시라도 성체 안에 진정으로 현존하시는 주님께 성체조배를 하십시오. 그러면 놀랍게도 여러분의 성덕이 증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저의 평생소원이고 라이프 플랜입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 육화의 신비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은 생명이 됩니다. 도망갈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의 영원한 생명, 뭔가 특별한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주 영성체하게 되면, 우리가 더욱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땅에서 천상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

“묵주기도는 천국에 오르는 가장 짧은 계단입니다.”

“여러분의 수호천사에게 계속해서 도움을 청하십시오. 여러분의 수호천사가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됩니다.”

“모든 것을 넘어서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도달한다면, 인생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교회를 비방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보물을 나누어주는 분입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뜨거운 공기가 든 풍선과 같습니다. 혹시라도 우연히 죄를 짓게 되면 영혼은 터져 땅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고백성사는 우리의 영혼이 다시 부풀어 오르게 해 줍니다. … 고백성사에 자주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육체와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신경을 쓰면서 내면과 영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려 하지 않는 것입니까?”

“행복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일, 슬픔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일.”

“나 말고 하느님!”

“모두가 원본(오리지널)으로 태어나지만 많은 이가 복사본으로 죽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절대 끝나지 않는 무한입니다.”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수천 번을 이긴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화의 길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입니다. 나를 조금 더 빼고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유일한 기도는 거룩하게 되려는 바람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것은 내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는 그분을 본받으려 합니다.”

“하느님의 뜻만을 행하는 사람은 진정 자유롭습니다.”

“성모님은 저의 생애에 유일한 여성입니다.”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저는 행복하게 죽습니다. 이는 제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 말고는 제 생애 동안 결코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성인이 되기 위한 8가지 카를로 아쿠티스 키트>

1. 성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해야 한다.아직 그런 마음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계속 주님께 성인이 되게 해주시라고 청해야 한다.

2. 되도록 매일 미사에 참석하고 영성체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3. 매일 묵주기도 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한다.

4. 매일 성경, 특히 신약성경을 조금이라도 읽는다.

5. 매일 성당에 들러 잠시라도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실 앞에서 기도하면, 자기도 모르게 성덕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6. 작은 죄라도 꼼꼼히 살피며 할 수 있는 대로 2주에 한 번씩 고백성사를 드리도록 한다.

7. 예수님과 성모님께 할 수 있는 대로 나의 작은 희생을 통해 애덕의 꽃송이를 바친다.

8. 수호천사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나를 보호해 주라고 자주 요청한다.

***

복자 카를로의 전구를 비는 기도문

복되신 카를로여, 나의 위대한 친구요 안내자, 제가 매일 성화로 성장하게 하소서. 저도 당신처럼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를 자주 함으로써 제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첫 자리에 모실 수 있게 하소서. 제가 고백성사를 자주 봄으로써 제 영혼이 항상 깨끗하게 하소서. 제가 특별히 묵주기도를 자주 드림으로써 저의 천상 어머님이신 성모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깨끗하게 하소서. 제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쁘게 봉사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처럼 저의 수호천사에게 자주 도움을 청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처럼 다른 이들을 예수님과 당신의 어머님, 그리고 당신의 교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도록 하소서.

저의 사랑하는 친구 카를로여, 저의 특별한 간구( )를 위하여 당신의 이름으로 전구를 청하며 기도하나이다. 저의 위대한 친구 카를로여, 저에게 예수님의 길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리나이다. 아멘!

***

간략한 연보

1991년 : 5월 3일 런던 포트랜드Portland 병원 출생

5월 18일 고통의 성모님 성당에서 할머니 아드리아나와 부모님 함께 세례성사

9월 8일 부모님의 사업으로 거주하던 런던을 떠나 이탈리아 밀라노로 귀향

1995년 : 밀라노 파르코 파가니라는 공립 유치원 입학

1997년 : 산 카를로 초등학교 입학, 3개월 뒤 성 마르첼리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토마스 초 등학교로 전학하여 중학교 졸업까지 계속함

2004년 : 5월 24일 도움이신 마리아 대축일에 성녀 마리아 세그레타 본당에서 견진성사

2005년 : 9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레오 13세 고등학교 입학

2006년 : 10월 2일 간단한 감기 증상으로 입원. 10월 8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됨에 따라 밀라 노 데 마르키 병원으로 이송하여 급성 백혈병 확진. 10월 9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예견하여 병자성사를 요청하여 성사 받음. 10월 11일 수요일 혼수상태에 빠 짐. 오후 5시 의사들의 뇌사로 사망 선고. 부모들은 카를로의 백혈병으로 다른 이들 에게 장기를 기증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장기 기증을 할 수 없었음. 10월 12일 오 전 6시 45분 카를로의 심장이 정지함에 따라 공식적인 사망 선고, 10월 14일 토요 일 성녀 마리아 세그레타 본당에서 장례미사. 성당에는 모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인파로 미사 중 성당 문밖까지 많은 이가 몰려왔음. 이탈리아의 주요 일간지가 이 소식을 전함.

2007년 : 카를로의 생전 요청에 따라 테렝고 묘지에서 아씨시에 있는 피에몬테 묘지로 이장

2012년 : 10월 12일 카를로 아쿠티스를 ‘주님의 종’으로 규정하며 시성·시복 조사위원회 공식 출범

2013년 : 5월 13일 시성·시복 조사의 합당성에 관하여 교황님 인준

2016년 : 11월 24일 밀라노 대교구청에서 교구 차원으로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이 배석한 가 운데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성·시복 조사 심의

2018년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카를로 아쿠티스 가경자 선포

2019년 : 1월 23일 카를로 아쿠티스의 유해 발굴. 4월 6일 아씨시 레눈시오 성지로 유해 이 전

2020년 : 10월 10일 아씨시에서 시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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