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재는 두물머리에 위치한 정약용의 본가이고, 양근은 이벽의 후학이자 초기 교회의 선조인 권일신의 거주지이다. 이곳에서는 소위 ‘을사추조 적발사건’으로 신앙 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던 김범우, 교리지식을 가장 탁월하게 전했던 이벽 등이 모두 세상을 뜨고, 당시 한국교회를 이끌던 여러 신앙 선조들이 회유와 억압을 받으면서 표면적으로는 교회를 멀리해야 했던 상황, 신앙공동체의 모임인 명례방 집회가 막을 내린 뒤, “그(권일신)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고자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성화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 알았다”라는 샤를르 달레 신부의 증언대로 권일신과 조동섬이 용문산 자락에서 8일 간의 한국 교회사 사상 최초 피정을 한 곳의 인근이다.(이를 기억하기 위한 ‘양근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천진암天眞菴은 「1779년 당시 이벽 성조 25세, 정약용 17세, 정약종 19세, 정약전 21세, 이승훈 22세, 이총억 14세, 권철신 44세, 등 주로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 모여서 그 당시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천주교 책을 읽고 토론하는 내용을 일반 유교 서당에서나 정상적인 사찰에서, 또는 일반 가정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우므로, 다블뤼 주교의 기록대로, 폐허가 된 천진암에서는 여럿이 모여 함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pour s’y livrer ensemble a des études profondes), 천주교 진리를 탐구하고 실천할 수 있었으니, 천진암은 바로 한민족의 유교 선비들이 불교 암자에서 천주교를 연구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유·불·천이 사람과 장소와 사상을 합류한 곳이고, 조선천주교회가 태동된 한국천주교 발상지이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