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영웅적 증거 열매 맺어”
“그리스도는 영광에 들기 위하여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지 않았느냐?”(루가 24,2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들은 이 귀절은 예수께서 제자 중 두 사람하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길을 가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 뵙고 낯선 사람에게처럼 이 며칠 일어났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우리는 희망을 걸고 있었다.”(루가 24, 11)면서 자기들의 산산이 깨어진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이런 희망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묻혀버렸던 것입니다. 두 제자는 낙담했습니다. 돌아가신 뒤 사흘 만에 부인네들 하고 사도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서 못 찾았다는 말을 들었건만 살아 발현하셨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 순간 자기들이 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분과 같이 길을 걷고 있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도무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을 뜨고도 그를 못 알아보았던 것입니다(루가 24,26).
그러나 예수님은 성서를 비롯하여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수난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에 이르러야만 했다고 그들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런 말씀만 가지고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낯선 이의 말은 듣는 동안 그들 마음이 안에서 뜨거워졌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였습니다. 저녁상을 받고 앉아 빵을 드시고 축복하시어 쪼개 주시고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루카 24,31)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자 곧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뵌 그들은 영구히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모든 사도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의 증인들, 그의 복음과 부활의 증인이 된 남녀를 통해서 그분에 관한 진리는 먼저 ‘예루살렘’으로 다음에는 온 유대아로 마침내는 다른 나라와 겨레에 퍼져나갔습니다. 인류 역사에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리는 한국 땅에도 왔습니다. 그것은 중국에서 가져온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매우 신기하게도 하느님 은혜는 여러분의 선비 조상들을 당초에는 하느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지성적 탐구로 이끌었다가 그 다음에는 부활하신 구세주에 대한 산 믿음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에 더 깊이 들어가기를 갈망하던 여러분의 선조들은 1784년에 자기들 중 한 사람을 북경으로 보냈고 그는 거기서 영세하였습니다. 이 좋은 씨앗으로부터 한국에 첫 그리스도 공동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신도에 의해서만 세워졌다는 점으로 보아 교회 역사에서 유일한 공동체였습니다.
이 신생 교회는 아직 어리면서도 믿음에는 그토록 굳세어 몹시 사나운 군란을 거듭거듭 견디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세기도 채 못 되어 1만 명을 헤아리는 순교자를 자랑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1791년 신해, 1801년 신유, 1827년 정해, 1839년 기해, 1846년 병오, 1866년 병인의 햇수가 순교자들의 피로써 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그들 그리스도교인이 처음 반세기 동안은 중국 신부를 비롯하여 몇 분만의 도움을 한동안 받았을 따름이지만, 그런데도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와 형제애로 일치를 다지면서 반상의 계급차별을 없애고 사제성소도 키웠습니다. 그리고 북경에 있는 그들의 주교와 머나먼 ‘로마’에 있는 교종과도 갈수록 긴밀한 일치를 찾았습니다.
사제들을 보내 달라고 여러 해를 두고 간청한 끝에 여러분의 신앙 선조들은 1836년에야 처음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을 정식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그중 몇 분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쳐 오늘 이 역사적인 전례에서 시성된 치명자들 가운데 들어 계십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교회가 그처럼 훌륭히 꽃피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순교자들의 영웅적 증거의 열매입니다. 지금도 그분들의 불굴의 기백이 비극적으로 갈라진 이 땅 북녘의 침묵의 교회 안의 그리스도 신자들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한국 땅에서 맞는 교회의 2백 주년에 참여할 은혜가 오늘 ‘로마’의 주교 그리고 그 사도좌에 있는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내게 주어졌습니다. 이미 며칠을 순례자로서 여러분 가운데에서 지내면서 사랑하는 이 한국 땅의 아들딸들에게 주교로서 교종으로서의 봉사를 하였습니다.
이 사목봉사의 절정은 오늘의 전례가 이루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성식을 통하여 한국의 순교복자들은 이제 천주교회의 성인 반열에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여러분 나라의 참된 아들딸들입니다. 그분들은 혈통으로나 언어로나 문화로나 여러분의 조상입니다. 아울러 그분들은 피로써 증거한 신앙에 있어서도 여러분의 부모들이십니다. 열세 살 난 소년 유대철 베드로로부터 일흔둘의 노인 정의배 마르코에 이르기까지 남자·여자·사제·신도·부자·빈자·상민·양반 할 것 없이 많은 분의 경우에는 그전의 덜 알려진 치명자들의 후손으로서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죽어가셨습니다.
초기 치명자의 한 분인 권 데레사의 최후 진술을 들어 보십시오. “천주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데 어떻게 그분을 배반하고 그러십니까. 이 세상에서는 누구든지 부모를 배반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신 분을 더구나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한 세대 뒤에 베드로의 부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을 안 뒤에 그분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꿋꿋이 말했습니다. 조윤호 베드로는 더 나아가 “설령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 해도 그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데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어찌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일곱의 동정녀 이 아가타가 부모들이 배교했다고 꾸며 하는 말을 어린 남동생과 같이 듣고는 무어라고 했습니까. “저희 부모가 배교하고 안 하고는 그분들의 일입니다. 저희들은 저희들이 늘 섬겨온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감격한 여섯 사람의 어른 교우들이 관헌에 자수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아가타와 그 부모, 그리고 이 여섯 분 모두가 오늘 시성됩니다. 이분들 말고도 안 알려진 겸손한 순교자가 허다하니 그들도 누구 못지않게 충실하고 용감하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한국 순교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스스로 몸에 지님으로써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몸에서도 드러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언제나 예수를 위해서 죽음에 부쳐져 있으니,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10∼11)라고 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은 바로 그들의 입에서 나왔음직도 한 것입니다.
치명자들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닮은 것은 그들의 죽음도 새 생명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생명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당한 그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증인들의 산 공동체로서의 교회 안에 누룩이 된 것입니다. “치명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격언이 우리 눈앞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한국 땅의 교회는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께 구원의 은혜에 대해 장엄한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이 은혜의 성사를 두고 베드로 성인은 “여러분은 은이나 금 따위의 없어질 물건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구속된 것”(I 베드로 1,18∼19)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이 높은 값에 교회는 한국순교자들의 증거를 바탕으로 신·망·애의 영속적 증거를 보태고자 합니다.
이 증거로써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길과 진리와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 땅에서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참 천주이신 그리스도, 살아계신 천주의 아들,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 더욱 알려지기를 빕니다.
일찍이 엠마오의 두 제자는 “빵을 쪼개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를 알아 뵈었습니다. 한국 땅에서도 새로운 제자들이 두고두고 그를 성찬에서 알아 뵙기를 바랍니다. 그의 몸과 피를 밀떡과 포도주의 현상으로 받으십시오.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께서 성령의 힘으로 여러분을 당신 몸과의 일치로 받아들이시기를 빕니다.
이 자리에서 또 ‘파리’ 외방전교회의 프랑스인 선교사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탄과 감사의 뜻을 어찌 표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이역만리 길을 와서 복음적 영성으로 새로 태어난 교회의 믿음을 심화해 주고 주교직과 사제직의 특은으로써 신앙공동체에 교회적 구조를 갖추어 줌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범 교회 안에서 제자리를 찾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분들 가운데 이 땅에서는 주교로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신 범 주교, 교우들에게 교리와 신심을 돕는 책을 펴내는 데에 힘쓰신 장 주교 두 분은 적어도 일컫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밖에도 열 분이나 되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열성과 순교를 경탄하는 바입니다. 이분들과 함께 두 분 주교는 박해 하에 믿음을 굳건히 해주고 사제 성소를 키우는 데까지도 힘쓰면서 밤낮없이 복음전파에 몸을 바쳤던 것입니다.
복음의 용맹한 전파자였던 이분들의 동포들 · 후손들 · 선교회 그리고 교구들을 대표하여 여기 오신 프랑스 주교 및 순례자 여러분에게 인사드립니다. ‘리지외’에서도 기원한 바 있듯이 그분들 나라에 성령께서 새로이 전교열을 불러일으켜 주시기를 빕니다. 선교의 열성이 교회에게는 항상 필요한 것입니다.
이 장엄한 날이 대대손손으로 생명과 거룩함의 기약이 되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로부터 부활하시어 당신 교회 안에 오늘 살아 계십니다. 정말입니다. 주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알렐루야.(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 *사진-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