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은 하나같이 열두 사도(참조. 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6) 중 하나였던 세리 마태오의 소명을 전한다.(참조. 마태 9,9-13 마르 2,13-17 루카 5,27-32) 마태오의 부르심 장면을 생각하면 곧잘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삼았던 카라바지오의 마태오 관련 3부작(마태오의 소명, 마태오의 영감, 마태오의 순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그림들은 로마에 있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San Luigi Dei Francesi(나보나 광장 근처)라는 성당에 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3~1610년)는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멀지 않은 도시 베르가모 근교 카라바지오Caravaggio 출신 화가이다. 흔히 미켈란젤로 카라바지오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본인의 이름보다도 그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인 카라바지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카라바지오는 1599년에 ‘마태오의 소명’을 완성하고, 이어서 1602년까지 마태오 3부작 모두를 완성하였다. 카라바지오는 대단히 현실적인 장면으로 작품을 구성하려고 했다. 마태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그리면서는 옆에 있던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까지 버려두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장면을 그리려고 했다. 이는 비틀즈를 칭송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비틀즈 노래를 듣다 까무러치는 이를 묘사하는 것처럼 주변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는 기법과도 같다. 마태오의 부르심 장면은 적나라하게 그럴듯한 속俗된 때와 장소를 보여주면서 그 장면을 통해 성聖스러운 장면을 그리려 한다. 그런 의도에서 그는 빛과 어둠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빛의 신비와 은총을 그림에 새긴다.
4명의 친구와 함께 하루의 수입을 계산하듯 동전이 놓인 탁자에 앉아 있던 마태오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어디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쏟아지는 빛을 놀라 바라본다. 돈에 열중한 왼쪽의 둘은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식탁에 앉은 자들의 영양 좋은 튼튼한 다리들이 돋보인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를 가리키며 “나를 따라라”(마태 9,9) 하신다. 마태오와 친구들은 세속적이고 예수님과 베드로는 진지하다. 베드로는 고개 돌린 이들에게 놀라지 말라는 듯이 손짓한다. 장식이 많이 달린 옷을 입은 이들과 허술한 옷차림과 맨발로 들어오시는 예수님과 베드로가 대비된다. 예수님과 베드로,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 사이는 어두운 공백으로 분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테이블 중앙에 자리한 수염 난 남성을 마태오로 본다. 이는 3부작인 다른 두 작품에서 마태오가 수염이 난 남성임에 근거한다. 예수님은 맨 오른쪽에 위치해 계시며 손을 뻗어 마태오를 부르신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드시고, 창문과 함께 다른 곳에서 빛이 들어오며, 그 빛이 탁자에 앉은 이들에게로 비친다. 르네상스 작품들이 원근법을 사용하는 특징을 보였다고 한다면, 카라바지오를 위시한 바로크 작품은 이처럼 빛의 대비와 분배라는 특징을 보인다. 13세기 이래 이탈리아 화가들이 화면에 입체감을 주려고 ‘명明·암暗’(키아로스쿠로-이탈리아 말의 직역으로 ‘밝고 어두운’) 기법을 사용하는 데 비해 카라바지오 같은 이는 어둠 안에 다른 어두움을 대비(테네브리즘-이탈리아 말의 직역으로 ‘어둠주의’)시킨다.
마태오는 놀란 듯 자신을 가리키며 “저요? 저 말이에요?” 한다. 혹자는 그리스도의 손가락이 고개를 수그리고 돈을 세고 있는 이를 가리킨다고 하면서 그를 마태오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염 난 이의 손가락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청년을 가리키며 “얘더러 하시는 말씀입니까?” 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될 때 수염 난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설마 자기를 가리킬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돈 세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셈이다. 비스듬히 등을 돌리고 칼을 찬 채 이쪽저쪽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한 화면 정 중앙의 인물은 아마도 카라바지오 자신일 것이다. 예수님의 손 모양은 아담과 하느님의 손가락이 맞닿고 있는 미켈란젤로(1475~1564년)의 유명한 작품 ‘천지창조’에서 아담의 손을 반대 방향으로 따왔다고 본다. 예수님의 손을 하느님의 손이 아닌 아담의 손으로 그리고 싶었던 카라바지오는 그렇게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불러 하느님의 계획으로 인도하시고자 한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을까? 다른 제자들을 버려두고 베드로만을 화면에 삽입시킨 카라바지오의 의도는 당시 시대적 배경 안에서 교회의 맏이인 베드로를 강조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기 부르심의 시작이 열일곱 살 때인 1953년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에 했던 고백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느끼면서였다고 말한다. 그는 훗날 교황이 되었을 때 교황 문장紋章에 사목 표어라고 할 수 있는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라는 라틴어 문구를 삽입한다. 이는 마태오의 부르심 장면을 두고 베다(673~735년) 성인께서 『Vidit ergo Iesus publicanum et quia miserando atque eligendo vidit, ait illi Sequere me(예수님께서 세리를 보셨는데,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고 그를 선택하시어 나를 따라라 말씀하셨다)』라고 설명하신 데서 기인한다. : 『마태오를 부르신 것도 자비의 맥락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관 앞을 지나시다가 마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께서는 죄인이며 세리인 그를 뽑아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삼으셨습니다. 베다 성인은 이 복음 구절을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고 그를 선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아 저는 이를 제 문장에 넣었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얼굴-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8항, 2015년 4월 11일)』
사도가 된 마태오가 마태오복음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전제 아래, 가당치도 않은 자신의 부르심을 평생 느끼며 살았던 마태오로서 그는 복음 안에 열두 사도의 이름을 기록할 때, 유독 자신의 이름 앞에만 “세리 마태오”(마태 10,3)라고 부끄러운 칭호였던 “세리”를 공공연하게 덧붙인다. 예수님께서는 ‘돈과 셈’에 관한 한 전문가였을 세리 마태오를 두고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공동체 경리를 맡기신다.(20220306 *그림-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