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교만의 은밀한 벗
「칠극」 제2권은 ‘평투(平妬)’다. 질투로 뒤흔들린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는 말이다. 질투는 남이 잘되는 것을 속상해하고 잘못됨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판토하는 질투가 교만의 은밀한 벗이어서 서로 착 붙어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권2는 네 개의 소절로 구성했다. 첫째 남의 악을 헤아려 따짐을 경계함, 둘째 헐뜯는 말을 경계함, 셋째 헐뜯는 말 듣기를 경계함. 넷째 남을 아끼고 사랑함이다. 질투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죄악을 갈래별로 제시해 경고한 뒤 사랑과 용서로 이를 극복하자는 의미를 전달했다.
한 임금이 질투 많고 인색하기로 소문난 두 사람을 불렀다. “너희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내가 들어주겠다. 먼저 청하는 사람에게 하나를 주고, 나중에 청하는 자에게는 두 배를 주마.” 두 사람은 두 배를 받으려 서로 차례를 극구 양보했다. 결정이 나지 않자 왕이 그중 하나에게 먼저 말할 것을 명했다. 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 “전하! 제 눈 하나를 뽑아 주십시오.” 좋은 것을 먼저 말하면 그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 두 배로 가는 것이 질투 나서 견딜 수 없었으므로, 스스로 외눈이 되어 상대방을 아예 두 눈 다 잃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질투의 마음이 이렇다.
판토하는 말한다. “질투하는 자에게는 두 개의 지옥이 있다. 살아서 하나, 죽어서 하나이니, 살아서는 질투가 나를 붙들어 형벌을 내리고, 죽어서는 마귀에게 붙잡혀 형벌을 당한다.” 또 말한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이 위에 있으면 그가 위에 있음을 시샘하고, 남이 자기와 같으면 같은 것을 시샘한다. 남이 자기만 못하더라도 또 그가 혹 자기와 같아질까 봐 시샘한다. 모든 사람을 원수로 대하므로 홀로 지내며 벗이 없다.” 이런 말도 했다. “시샘하는 사람은 남의 복을 보면 자신의 재앙으로 여기고, 남의 재앙을 보면 자신의 복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가졌는데 남도 또한 가졌으면 복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큰데 남 또한 크면 크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기가 가졌는데 남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큰데 남은 모두 작아야만 가졌다고 하고 크다고 여긴다.” 아! 이게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남이 부귀와 안락을 지녔어도 내가 빼앗지 못하고, 설령 그가 그것을 잃는다 해도 내게 오리란 보장이 없다. 나의 질투가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못하고 정작 나는 온통 손해만 보게 되니 질투는 무용한 물건이다.
남의 재주와 덕을 질투하는 것은 더 슬프다. 등불 하나를 밝혀 천 개 백 개로 빛을 나눠도 본디의 빛은 줄어드는 법이 없다. 재주와 덕은 내게 달렸으니 남에게서 취해 와도 아무도 막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질투로 인생을 허비하고, 마음속에 지옥을 담고 사는가?
질투는 깨진 거울, 본 모습을 가린다
착한 사람은 만인의 거울이다. 그 거울로 사람들이 자신의 악을 돌아본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선함에 자신을 비추려 들지 않고 작은 결점이나 하찮은 오점만 살핀다. 화약 불에 물을 끼얹으면 불길만 더 세지듯, 자신의 추함을 비추지 못하고 질투의 악함만 더하게 된다.
어진 사람은 남의 악함을 보고도 “겉모습만 그렇겠지. 어쩌다 그랬겠지.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을까?”라고 오히려 어진 마음을 움직인다. 마치 꽃이 쓰고 매워도 꿀벌이 이것으로 단꿀을 만드는 것과 같다. 반면에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선함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꾸밈일 거야. 어쩌다 그랬겠지. 그때만 그런 걸 거야.” 그는 결국 남의 선함을 보고도 나의 악만 보태고 만다. 뱀이 무엇을 먹든 독을 만들고 마는 것과 같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겸손을 비굴이라고 말하고 참는 것을 보고는 겁쟁이라고 비난한다. 수양에 힘쓰는 모습을 보고는 꾸민다며 입을 삐죽대고, 청렴한 행동을 보면 명예를 낚으려는 수작이라고 의심한다. 말을 아끼면 우둔하다고 하고, 정직하면 거만하다며 비웃는다. 남에게 베풀면 쓸데없이 낭비한다고 하다가, 아껴서 자신에게 쓰면 인색하다며 헐뜯는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본받을 만한 좋은 점을 보면 눈과 귀를 돌려 외면하고, 남의 드러나지 않은 허물과 작은 잘못을 보면 침을 흘리며 듣고 급히 물어 마구 퍼뜨린다. 그래서 그는 돼지와 같아진다. 발을 둘 곳에 입을 두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삐뚤어진 마음이어서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저에게 독이 되고 남에게 해악을 끼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말했다. “남의 더러운 행실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더러워진다. 남의 더러운 일을 말하면 그 입이 지저분해진다. 이는 마치 남의 더러운 물건을 훔쳐서 남에게 보여 주는 것과 같다.”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은 이렇다. “남을 헐뜯는 자는 독사보다 해롭다. 뱀이 한번 깨물면 한 사람을 다치게 한다. 헐뜯는 자의 한마디는 세 사람을 상하게 하니, 자기 자신이 하나고, 듣는 이가 하나며, 헐뜯음을 받은 자가 하나다.” 그레고리오 성인이 다시 말한다. “입으로 재를 부는 사람은 스스로 제 얼굴을 더럽히고 그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남을 헐뜯는 자는 스스로 그 마음을 더럽히고 그 영혼을 어둡게 한다.” 그러니 우리는 헐뜯기를 멈추고 비방을 그치고 마음에서 질투를 몰아내야 한다.
질투로 말미암은 헐뜯음의 단서는 일곱 가지다. 첫째, 이유 없이 남의 감춰진 악을 드러낸다. 둘째, 남의 말 듣기를 좋아한다. 셋째, 말을 전하며 보탠다. 넷째, 증거를 속인다. 다섯째, 남몰래 한 선행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섯째, 분명한 선행도 덮어버린다. 일곱째, 선을 도리어 악으로 만든다. 결국은 때가 덕지덕지 않은 데다 깨져서 형상을 비추지 못하는 거울과 같아진다.
실천하는 행동 속에 참사랑이 숨 쉰다
어찌해야 질투와 분노의 늪에서 빠져 나올수 있을까? 킨드월 현자는 가난한 사람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 “부끄럽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사람처럼 세상을 가볍게 살 수 있을까?” 부자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부끄럽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재물을 지키듯 덕을 간수할 수 있을까?” 화려하게 꾸민 여인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부끄럽다. 내가 어찌해야 이 여인이 곱게 꾸며 세상 사람을 기쁘게 하듯 내 마음을 닦아 천주를 기쁘게 할까?”
착한 이는 세상을 비추는 촛불과 같아 어둠을 밝혀 준다. 때로 그을음이 앉더라도 심지를 자르면 촛불은 다시 밝아진다. 그러니 부지런히 자신을 살펴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점검해야 한다. 그 점검은 어찌하나?
판토하는 말한다. “대개 듣는 사람이 듣기 싫어하는데도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좋아하는 경우란 없다. 너희 듣는 자들이 듣기를 좋아하니까 저 비방하는 자들이 떠들어 대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비방을 만드는 자의 말은 삼가 듣지 말라. 네게 남의 허물을 말한다면, 남에게는 너의 허물을 말할 것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에 비유하자면, 다른 물건을 이 지방에서 팔고, 이 물건은 다른 지방에 가서 파는 것과 같다.”
우리는 허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판토하가 말한다. “헐뜯는 말은 큰 바람에 견줄 수 있다. 큰 바람이 불 때 작은 배는 이를 만나 엎어져도, 큰 배는 만나면 더욱 빠르게 가서 더욱 일찍 도착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했다. “먼저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자기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남을 자기처럼 망가뜨릴까 염려된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말했다. “벗의 허물은 반드시 깨뜨려 주어야 한다. 내가 이를 없애 주지 않는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 귀한 말씀의 향연 아닌 것이 없다.
다시 판토하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신체의 각 부위는 먼저 몸 전체의 공적인 이익을 돌아본 뒤에야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을 살핀다. 그래서 각 부분은 직접 해로움과 맞닥뜨리더라도 몸 전체의 해로움을 구한다. 작은 부위 또한 스스로 해로움을 당하더라도 큰 부분의 해로움을 면하려 든다. 예를 들어, 손과 팔뚝은 자기가 상처를 입더라도 머리가 다치는 것을 막는다. 이 부분이 저 부분을 위해 다치게 되더라도 성을 내거나 복수하지 않는다.”
질투는 미움을 부르고 분노를 일으킨다. 그것은 불길 같고 파도 같다. 한번 휩싸이면 제어할 수 없다. 감당이 안 된다. 최창(崔昌)은 권2 서문에서 “판토하의 ‘평투’ 편은 사람의 정리에 꼭 맞아서 폐부에 깊이 들어온다. 질투하는 자가 이를 읽으면 진땀이 줄줄 흐르면서 질투하는 병이 낫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 이 글에 인용된 교부 문헌의 출처 표기는 판토하 원전의 생략을 따랐습니다.(정민, 경향잡지, 2023년 4월호, 제115권, 통권 1861호 *이미지-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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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낼 투妬
2.1 너저분한 부덕 중 하나는 어떤 날 파도처럼 밀려와 종일 소용돌이치는 번잡과 소란이라는 이름을 띤 교만의 ‘은밀한 벗’(傲之密侶) 질투(嫉妬)요 시기(猜忌)다. 교양이 있는 척해야 하는 이들은 이를 내놓고 드러낼 수 없어 내면의 시새움이 깊다. 내면의 부러움을 칭찬이나 축하로 남겨두지 않고 어깃장과 비아냥으로 꼬고, 기어이 다른 이들 앞에서 전혀 다른 얘기인 것처럼 고상한 말로 은근하게 돌려 내뱉기가 일쑤이며, 남 좋은 일은 굳이 다 말하지 않고 절반 이하로만 말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넘기기도 하다가 어쩔 수 없을 때는 이내 외면하고 마음 밑바닥에 던져 놓으면서 언제이냐 싶게 태연한 척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다시 또 언젠가 바람이 불 때마다 고삐 풀린 말이 되고 키 없는 배가 되어 흔들리기를 반복한다.
2.6 위로 싸우고(上鬪) 밖으로 싸우며(外鬪) 안으로 싸우느라(內鬪) 하늘(天)도 모르고 사람(人)도 모르며 자기(己)도 몰라 늘 외롭다(獨居無朋).
2.12 깨진 거울(破鏡)이요 더러운 거울(昏鏡)이다.
2.18 시샘은 눈초리에서 시작하고, 무엇보다 발을 둘 곳(置足焉)에 입을 두는(置口矣) 돼지(豕)처럼 입으로 시행한다. 그 입은 사나워서 나(己)를 죽이고 대상(受毁者)도 죽이며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聞者)마저 죽이면서 셋을 죽인다(傷三人). 화살 맞은 개(犬傷於矢)가 낑낑대듯이 낑낑대는 입으로 재(灰)를 훅하고 불어 제 얼굴과 주둥이, 그리고 눈이 재를 뒤집어쓰는 줄을 모른다.
2.25 입으로 남을 헐뜯는 데는 일곱 단서가 있다. ① 까닭 없이 남의 감춰진 악을 드러내기(無故而露人陰惡) ② 말 듣기 좋아하기(喜聞) ③ 까닭 없이 전하고, 전하면서 보태기(無故而傳, 傳而增益) ④ 증거 속이기(誑証) ⑤ 감춰서 한 선행 인정 않기(不許陰善) ⑥ 분명한 선행 없애기(消明善) ⑦ 선으로 악 만들기(以善僞惡)
2.13 질투하는 자는…남의 악을 보면 비웃고, 아주 작은 허물을 보고도 무거운 죄로 여긴다. 남의 선함을 보면 꼭 의심한다. ‘겉모습만 그렇지, 진짜가 아니다’라고 하거나, ‘어쩌다 그런 것이지, 변함없는 것은 아닐 거야’라고 말한다. 아니면 ‘형세가 그랬던 것이지, 늘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이 같은 사람은 남의 선함을 보고도 또한 나의 악함을 보태고 마니, 어찌 악을 논하겠는가?…질투하는 마음은 끝이 없어 반드시 잘못된 곳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한결같이 선한 체하는 악이라 하며 이를 더럽힌다. (妬者…見人惡, 嗤之, 見微過, 以爲重罪, 見人善, 必疑之, 或曰: “貌然非眞.” 或曰: “偶然非堅.” 或曰: “勢然非常.” 是者見人善, 亦增我惡, 何論惡?…妬心不已, 必黽勉尋求曲處, 一肖善之惡以汚之.)
겸손한 것을 비굴하다고 하고, 참는 것은 겁쟁이라고 한다. 수양에 힘쓰면 덕이 있는 것처럼 꾸민다고 하고, 남의 것을 취하는데 청렴하면 이름을 낚으려 한다고 말한다. 말수가 적은 것을 우둔하다고 하고, 판단이 분명한 것은 가볍고 허탄하다고 이야기한다. 정직한 사람을 거만하고 뻗댄다고 하고, 착하고 따뜻한 사람은 물러터졌다고 말한다. 묵직하고 공경스러운 사람은 그럴싸하게 꾸민다고 말하고, 온화하고 맑은 사람은 덩달아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베풀기를 좋아해서 남을 구하는 데 쓰면 쓸데없이 낭비한다고 했다가, 적게 베풀어 아껴서 자신에게 쓰면 이번에는 또 인색하다고 말한다. (謙謂卑下, 忍謂怯懦. 勤于修謂飾德, 廉于取謂釣名, 簡嘿者謂愚純, 明辨者 謂浮誕. 正直者謂亢厲, 慈凱者謂柔靡. 莊敬者謂矯餙, 和霽者謂委隨. 好施救人, 既謂妄費, 少施節用以自給, 又日客畓.
친밀한 벗이 되기 위해(爲密友者)
2.52 가려야 할 것 두 가지와 없어야 할 것 두 가지 – 마땅히 있어야 할 두 가지는 지혜(智)와 덕(德)이다. 벗이란 처음에는 서로 비슷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비슷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벗은 지혜로워질 것이고, 어리석은 자의 벗은 어리석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벗이 덕이 없으면 벗을 사귐에 뿌리가 없으므로 금세 무너지고 말아 오래 간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53 우정의 덕 가운데 마땅히 갖춰야 할 아홉 가지 – ① 마음이 서로 화합(상화相和) – 옳고 그름이 한결같고, 사랑하고 미워함도 변함없어야 한다. ② 마음이 서로 통함(상통相通) – 참 벗은 그 마음이 벗에게 온통 기울어 있어 남기는 것이 없다. 벗이 된 사람은 마음에 이미 사사로움이 없어 서로에게 품은 생각을 모두 말로 고하고, 일은 모두 함께 의논해야 한다. ③ 은혜를 베풂(행혜行惠) – 벗의 은혜를 갚을 때는 저울질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비옥한 밭이 하나를 받고 백으로 돌려주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다만 너의 능력과 벗의 힘을 넘어서면 안 된다. ④ 권면하고 나무람(권책勸責) – 권면하되 아첨해서는 안 되고, 나무라더라도 모욕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⑤ 의롭지 않은 일을 요구하지 않음(불구비의不求非義) – 벗을 위해 의롭지 않은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먼저고 벗에 대한 사랑은 나중이기 때문이다. 벗을 위해 남을 해쳐서는 안 되고, 벗을 위해 남에게 복수해서도 안 된다. ⑥ 환난을 당했을 때 잊거나 버리지 않음(환난불망기患難不忘棄) – “친구란 언제나 사랑해 주는 사람이고 형제란 어려울 때 도우려고 태어난 사람이다.”(잠언 17,17) “이웃이 궁핍할 때 그의 신임을 얻어라. 그가 잘될 때 함께 배부르게 되리라. 시련을 당하는 이웃 곁에 머물러 있어라. 그가 유산을 상속받을 때 너도 한몫을 얻으리라. 사실 겉만 보고 경멸해서도 안 되고 지각없는 부자를 보고 경탄해서도 안 된다.”(집회 22,23) ⑦ 벗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음(불로우비不露友秘) – “비밀을 폭로하는 자는 신의를 깨뜨려 목숨 같은 친구를 결코 얻지 못하리라.”(집회 27,16) ⑧ 벗의 나쁜 점을 감춰줌(은우악隱友惡) – “원수로 변하는 친구도 있으니 그는 너의 수치스러운 말다툼을 폭로하리라.…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집회 6,9.14-15) ⑨ 벗이 찾는 것을 바로 줌(우소구즉여友所求即予) –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잠언 3,27-28)
증오에 맞서는 한 가지 덕–남을 아끼고 사랑함仁愛人
2.36 이 계명이 좋은 점 네 가지 : ① 모두 알 수 있어 지극히 명백하다(至明) ② 한 마디로 다 할 수 있으니 지극히 간략하다(至約) ③ 누구나 행할 수 있어 지극히 쉽다(至易) ④ 지극히 유익하다(至有益)
2.39 세 가지 방식 : ① 습애(習愛)-서로 익숙해져 생기는 사랑, 쉽게 모였다가 쉽게 흩어지는 사랑 ② 이애(理愛)-이치로 따져서 하는 사랑, 마땅히 스스로 아는 사랑 ③ 인애(仁愛)-어진 사랑,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그 하느님의 사랑을 옮겨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2.48 마땅히 실행할 네 가지 사랑 : ① 천주(天主)-만물의 큰 부모, 잠시도 떠날 수 없는 분 ② 나 자신(我)-육신이 아닌 정신의 덕을 소중히 여김 ③ 남(人)-자기를 바로잡아 자기를 아끼듯 남을 사랑 ④ 자기 자신의 신체(本身)-영혼의 신령함을 받들어 섬겨(欲其供事靈神) 선해지도록 도우려고(而輔之爲善)
2.46 입만 크고 손은 작은(舌大手小) 괴이(怪異)한 사랑, 빈 말뿐인(虛言而已) 사랑
2.47 고운 것만 기뻐하는(喜其善) 사랑, 어짊의 덕이 아닌(非仁德) 어린아이의 잠깐의 정(孩童之暫情)일 뿐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