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교육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협력 교육, 협력 학습에 대해 영감들을 줄 수 있는 내용의 스크랩)
협력 학습의 효과
… 협력 학습의 효과는 매우 긍정적이며, 또한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교육개혁을 하는 데 있어서도 함께 배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자존심 : 자존심의 문제는 …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경쟁과 자존심의 관계는 말하자면 설탕과 이의 관계와 같다. 더 많은 승리를 요구할수록 자존심은 점점 더 낮아진다. 협력 학습은 불필요한 경쟁을 억제하여 학생들의 자존심을 강화시켜 준다.
… 그러나 협력 학습이 자존심 부족에 대해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첫째, 아이들은 가정에서 학대를 받거나, 혹은 너무 빈곤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종종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교실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둘째, 자존심이라는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즉 연구에 의해 수치화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
자존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협력 학습이 기존의 방식보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룹으로 공부하는 것이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학습 능력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높이고, 실패를 극복하는 힘을 키우며, 자신의 운명이 외부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상호작용 : 긍정적 상호의존 구조(당신의 성공은 나의 성공)가 부정적 상호의존 구조(당신의 성공은 나의 실패)보다 타인을 호의적으로 보게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협력 학습을 도입하면 적대감을 줄이고, 인간관계를 좋게 하며, 배경과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고, 타인을 성공의 방해물이 아니라 잠재적 협력자로 여기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데이비드 존슨은 자신이 협력 학습에 대해 연구하는 이유는 학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아이들에게 타인을 좀 더 잘 받아들이며, 공감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력 학습에 대한 많은 연구들 역시 다음과 같은 점을 입증하고 있다. 서로를 더 호의적으로 생각하게 하며, 인종이 다른 아이들과 우정이 싹트도록 도와주고,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더 잘 받아들이게 하며,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력(즉 타인의 감정에 대한 추측능력)을 증진시킨다. 또한 “그룹 간의 경쟁이 없는 경우, 협력이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낸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자주 직원들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고, 능률적으로 협동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갖는데, 실제로 한 연구에 의하면 “[기업] 실패를 불러오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형편없는 인간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예를 놓고 보더라도 아이들에게 협력적이고,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인성을 키워줄 수 있는 협력 학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취 : 협력 학습의 가장 기쁘고도 놀라운 효과는 서로를 더 좋게 생각함으로써 더욱 능률적인 학업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협력이 자존심과 인간관계를 더 좋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취라는 면에서 보더라도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는 모든 연령대, 모든 과목, 모든 종류의 학교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실제 증거가 필요하다면 일정 기간 협력 학습으로 수업을 진행한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협력 학습이 아이들의 이해력, 문제 해결 능력, 독창성, 기억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뉴욕의 한 교사에 의하면 아이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수업하기 시작한 후부터 성적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교장까지도 그 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교장은 왜 아이들의 성적이 그렇게 갑자기 좋아졌는지 묻지 않고, 왜 그렇게 모든 학생들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었냐고 물었다고 한다. … 그들은 “아주 많은 연구에서 혼자 일하는 것보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는 것이 성과와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며, 이는 사회심리학과 조직심리학의 가장 큰 원리로 자리 잡았다.”라고 말했다.
협력의 효과는 가장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1992년에 570명의 하버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적 성과는 자신의 전공 학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수, 동료 학생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주로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연구그룹을 만들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어려운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학습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쟁이 협력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몇 가지 이유 … 여기에서는 그 설명들을 요약하고, 범위를 더 넓혀서 그 설명들을 보충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협력 학습의 효과를 좀 더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8개의 주제로 나누어 살펴볼 것인데, 1~4까지는 소극적인 이유에 해당한다. 즉 어떤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에서 소극적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협력 학습은 아이들의 경쟁을 막으며, 이로 인해 비생산적인 결과가 일어나지 않게 한다.
1. 불안감 : 경쟁은 작업수행력을 떨어뜨리는 불안감을 조장하며, 그 정도를 높인다.
2. 외적 보상 : 돈, 등수, 증명서, 특별한 음식, 상장이라는 외적 동기(과제 그 자체와는 상관없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동기와 마찬가지로 경쟁은 아이들로 하여금 어떤 과제를 가능하면 빨리 끝내도록 하는데, 이는 경쟁이 독창적인 문제 해결 등 학습을 위해 필요한 모험과 탐구정신을 회피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 동기에 의한 경쟁은 공부를 하는 데 있어 과정에 대한 관심을 없애고, 그 결과만을 중요시하게 만들어서 결국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
3. 책임 회피 : 경쟁에서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경쟁의 결과를 보통 운이나 각자에게 이미 정해진 능력의 탓으로 돌린다. 그 결과 학습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이 줄어든다.
4. 예측하기 : 만약 배움이라는 것을 경쟁에서의 승리라고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기 초에 이미 누가 1등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승리가 예상되는 학생들은 그 승리를 위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지며, 자신이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제부터 설명할 내용들은 적극적인 이유에 해당된다. 즉 협력 학습은 협력 그 자체의 이익 때문에 효과가 있다.
5. 정서적 안정 : 협력 학습은 자존심과 인간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일의 성취에 도움을 준다. 직장에서의 경험을 생각해보자. 모든 조건이 동일할 경우, 자신과 동료들에 대해 더 좋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좋은 성과를 거둘 확률이 높다. 자존심, 인간관계, 성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정서적 안정감은 이러한 변수에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
6. 적극적인 참여 : 교사가 전체 학생에 대해 일방적인 강의를 하는 수업 방식의 경우, 교사의 설명에 매우 열의를 보이는 학생들은 보통 ‘선생의 애완동물’이란 뜻의 갖가지 불쾌한 별명을 얻기 쉽다. 그러나 협력 학습은 이와 반대되는 규범을 만들어낸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공부할 경우 적극적인 참여는 다른 학생들에게 존중된다.” 즉 협력 학습은 학생들로 하여금,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 그 자체를 중요시하도록 만들어준다.
7. 과제에 대한 관심 : 함께 공부하는 것은 타인과 맞서거나 혼자서 학습하는 것보다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과제에 더 열중할 수 있게 해준다(이는 협력 학습만이 가진 장점으로, 나는 아이들이 혼자 보는 쪽지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따지기보다는 함께 어울려 글자와 숫자, 각종 생각들을 나누며 즐기듯이 공부하기를 원한다. 존슨 형제는 22건의 연구를 예로 들면서 협력 학습이 “수업과 과제에 대해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존슨 형제는 협력 학습을 행하고 있는 어떤 교사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점심시간 전에는 협력 학습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의 학교에서는 각 학급별로 급식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 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그룹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때때로 너무 거기에 집중해서 그만두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제 식사를 해야 한다고 말해도 아이들은 “잠깐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거의 끝나가니까.”라고 외치면서 계속 과제에 열중한다고 한다.*
* 협력 학습을 하는 경우,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난 뒤에도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에 계속 집중하며 함께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교사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으로 한 연구자에 의하면 협력 학습은 때때로 공부 자체를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서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도 밖으로 나가는 대신 교실에 남아 계속 공부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실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한다. 수업이 끝나려면 몇 분이 남았다거나, 주말이 되려면 며칠이 남았다거나, 또는 방학까지 몇 주를 참아야 하는지 계산한다. 이것은 주말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행동을 보고 배운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실제로 학교를 재미 없는 과제들과 굴욕적인 평가만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 사실 우리는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학교를 다녔다면 당연히 알만한 기본적인 지식도 전혀없이 졸업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보면 우리는 보통 그 아이는 불만이 많고,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으며, 자신에게 유익한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간단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재미가 없더라도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고 여긴다.(이런 생각 속에는 학교란 학습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곳이 아니라 싫어하는 일에 적응하도록하는 곳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학교를 싫어하는 아이들 개인이 아니라, 학교와 그 제도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학생들 개인뿐만 아니라교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이야기 해준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교사에게는 우선 “그 공부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사실 넓은 안목으로 보자면 교사들에게 잘못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는 교육을 담당하는 관료들, 학교 이사, 부모, 정치인 등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존 굿라드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지시받는 것들에 대해 조사를 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교사의 설명을 수동적으로 들어야 했고(그의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교사는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한 말을 합친 것보다 3배 가까이 더 많은 말을 했다),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받으며, 따로따로 앉아서 묵묵히 교과서와 시험지를 풀어야 했다.
…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들이 지루하고, 싫증나는 이유는 학교라는 장소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읽고 쓰고, 풀어야 하는 각 과목들과 문제들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배움(그리고 과목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협력 학습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여 학습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 여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학생들이 학교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에 꼭 협력 학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협력 없는 교실에서도 수업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학생들이 있다. 둘째, 협력 학습이 지루한 학교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많은 학생들이 친구들과 만나는 것 외에, 학교란 그저 지겨운 과제만 잔뜩 내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협력 학습 하나로 모두 바꿀 수는 없다. 게다가 아이들의 머릿속에 억지로 단편적인 지식을 넣어주려는 목적으로 협력 학습을 이용한다든지, 경쟁과 똑같이 어떤 보상을 제공(개인에게 하던 것을 그룹으로 바꾼 것뿐인) 한다면 협력 학습의 효과는 사라지며,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방식에 협력 학습을 양념처럼 사용한다면 협력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도 부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8. 지적인 상호 작용 : 협력 학습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누구도 우리 전체보다는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 역할을 다하는 그룹은 개별적으로 하는 것보다. 특히 제한을 두지 않거나 도전적인 과제에 있어, 더 성공적일 수 있다. … 실제로 그룹 전체는 그 구성원의 개별적인 합계보다 더 생산적이다.
인지심리학자와 사회심리학자들은 집단으로 했을 때 작업의 성과가 올라가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능력과 기술, 자원을 공유하면 누구에게나 이익이 된다. 그러나 경쟁적인 교실에서는 이런 공유의 과정이 억제되거나 금지된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문제를 고찰한 다음, 그것을 서로 공유하면 각 개인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어떤 문제를 먼저 이해한 학생이 그것을 다른 아이에게 가르쳐준다면, 그 두 명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 먼저 이해한 학생은 단지 해답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그 풀이와 이해의 과정까지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 가르쳐야 하는 학생은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그 과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배우는 방법에 대한 배움’은 하나의 학습 과제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학습 환경에까지 파급될 수 있다. …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룹으로 일할 때에는 한 명의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유발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연쇄 반응을 통해 생기는 것이며, 혼자서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연구에선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에게 전지, 전구, 전선으로 불이 켜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전기회로를 만들라고 했는데, 그룹으로 작업한 학생들이 혼자서 작업한 아이보다 더 열중하며, 더 다양하고 특이한 회로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어떤 주제에 대한 공부 방법뿐만 아니라 그 주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인지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그룹을 이루어 작업하면 “더 질 높은 인지능력과 추론의 전략을 발견하고 개발하게 된다.”
끝으로 협력 학습은 의견의 대립을 막지 않으며, 어떤 면에선 그것에 의존하면서 더 풍성한 배움의 터전을 마련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사람들은 이야기 속 인물의 행동과 그 동기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는 공룡이 멸종한 이유를 나와는 전혀 다르게 추측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들을 서로에게 들려주면, 하나의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며, 그 견해를 나의 것과 조화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강조해야 할 것은 그룹을 이루어 공부한다고 해서 아이들 개개인을 그 집단의 일부, 특징 없는 작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획일성을 낳은 것은 경쟁 구조이다. 협력은 참여자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며, 그렇기 때문에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협력 학습의 목적은 일치된 하나의 생각을 그룹에 속한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스스로 깨달으며, 그것을 통해 더욱 효과적이고 즐거운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있다. 자유로운 대화는 매우 중요한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사상을 탐구하고, 명확히 이해하며, 우리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 캐나다의 교육자 주디 클라크Judy Clarke는 이렇게 말했다. “[상호의존이라는 이상(理想)은] 개개인이 모두 가치 있는 존재라는 신념에 의거한다. 이는 사람들이 서로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다면, 서로를 배려하는 윤리적인 삶을 지향할 것이라는 신념을 의미한다. 이렇게 기본적인 도덕적 바탕이 없다면 교사들에게 협력 학습이란 단지 좀 더 유용하게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교수법의 하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서로 대항하거나 따로 공부하기보다는 함께 공부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현명한 방법이라는 점을 교사와 부모들에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다음과 같은 로버트 벨라의 말에 찬성한다.
「배움이란 고립된 개인이 경쟁을 통해 승리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아니다. … 우리 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약화된 공동체 의식에 있다. 교육의 목적은 결코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만 있지 않다. 교육은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쟁에서 승리했든, 패배했든 교육은 모두에게 실패한 것이 된다.」
우리의 교육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가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진짜 문제는 학생들이 지도에서 터키를 찾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공동체(학교)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며, 개개인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는 데 협력 학습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협력의 실천
협력 학습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교실에서 서로 쓴 글을 고쳐주는 것일 수도 있고, 단어를 외우거나 곱하기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일 수도 있다. 진화론에 관한 토의를 할 경우 미리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4명으로 구성된 그룹을 만들어 매일 시사 문제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협력 학습의 계획은 교사의 수첩에서 나올 수도 있고, 아이들이 서로 의논해서 정할 수도 있다. 학생들은 정치에 관해 부모가 하는 말을 듣고 서로 정치제도에 대해 논의할 수도있으며, 누군가의 집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면 고양이의 습성과 행동에 대한 과학적인 학습이 시작될 수도 있다.
이러한 예들은 모두 학습이 능동적이며 상호작용의 과정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협력 학습은 결코 침묵 속에서 행해질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사가 개별적으로 협력 학습을 실행하는 것은 어렵다. 학교 전체가 합력 학습을 하고 있지 않다면, 시끌벅적한 교실을 다른 교사나 교장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학생들의 목소리보다 교사의 목소리가 더 크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학생들을 압도함으로써 자율적인 수업 분위기가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협력 학습의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할 때 하나의 영감이 될 수 있다. 협력 학습의 실행에 대한 논의 중에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고, 보다 큰 교육 철학에 관한 것도 있다. 어떤 것은 이미 널리 퍼져있으며, 어떤 것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
그룹 나누기 : 협력 학습에서 그룹의 크기는 학생들의 나이, 숙련도, 그룹에서의 경험, 과제의 종류,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보다 많은 학생들을 한 그룹으로 묶는 것은 도전적인 일이 될 것이다. 6명까지도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적은 수 4명은 넘지 않는 에서공동의 성과를 더 잘 만들 수 있다. 많은 과제에서,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2명이 한 팀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한 팀을 몇 명으로 구성하는지에 대한 문제보다는 그룹을 어떤 방법으로 나눌 것인지가 좀 더 복잡한 일이 될 것이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법들에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학생들 스스로 그룹을 나누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며, 신뢰하는 것이 되지만, 아이들은 잘 모르는 아이와 협력을 배우기보다는 자신과 친한 친구와 함께 하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자기들끼리 팀을 짜는 과정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학생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운동 경기의 팀을 나눌 때와 같이, 아이들이 능력과 인기 있는 학생과 한 그룹이 되려고 경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특정 과제를 그룹별로 따로 내주고, 거기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끼리 그룹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 교사가 직접 그룹을 편성해주는 방법이 있다. 이때 교사는 한 그룹에 상이한 인종이나 성별의 학생들이 섞이도록 편성할 수 있다. 협력 학습의 이점은 이렇게 배경이 다른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협동할 수 있을 때 가장 극대화될 것이다.
셋째, 능력이 서로 다른 학생들을 의도적으로 한 그룹에 배치함으로써 상호 간에 효과적인 도움을 주고받게 할 수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상이한 능력의 학생들을 섞어서 팀을 구성하는 것이 서로 같은 능력을 가진 학생들끼리 그룹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넷째, 특정 목적을 가진 부자연스러운 그룹 배치를 피하기 위해 무작위로 팀을 나누는 방법이 있다. 이럴 경우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할 수 있도록 팀을 자주 변경하면 좋을 것이다. 물론 한 한생이 꼭 하나의 그룹에만 속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므로, 어떤 팀은 한 학기 내내 함께하도록 하고, 또 다른 팀은 계속해서 바뀌는 구조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그룹이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진다든가, 어떤 학생이 그룹의 동료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팀을 바꾸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런 힘든 상황이야말로 배우는 기회, 즉 갈등의 해결 방법(물론 교사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을 알게 되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룹 내에서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학생 마음대로 그룹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성 교육 : 생각보다 학생들이 협력적으로 공부하지 못하면, 일부 교육자들은 아이들이 비협조적이라고 불평하거나, 협력 학습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한다. 그러나 그룹을 이루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좀 더 높은 수준의 인간관계 기술을 필요로 한다. 협력 학습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그 방법을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교사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존슨 형제는 “교사들이 협력 학습을 진지하게 실행하는 교실은 협력의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협력 학습은 단지 학습 능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협력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이란 뜻이다. 협력 학습을 도입하려다 실패한 초등학교 6학년의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의 ‘협력 행동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교실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협력 행동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라고 명령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도록 교육할 수는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책임감을 갖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나는 교사들이 이런 가르침을 시도하다가 잘되지 않으면 이내 포기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런 선생들도 “이 학생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말하면서 읽기 교육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자를 가르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의 얘기를 들어주고, 시선을 마주치며, 모욕적이지 않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는 바람직한 사회성 역시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수업은 학문적 목표(스페인어의 미래 시제를 배우는 것)와 사회적 목표(아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것)를 동시에 설정하여 실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성은 특정한 과목처럼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업과 학교생활 안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며, 협력 학습은 이 사회성 교육의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진행과정 : 어떻게 배우는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과목뿐만이 아니라 수업의 전후 시간에 모두 신경을 쓴다는 의미이다. 그룹별로 하나의 과제가 끝나면 일정 시간-학생의 나이나 협력 학습의 경험 정도에 따라 시간은 달라질 것이다-동안 함께 한 작업의 성과에 대해 토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룹의 전원이 과제에 골고루 참여했는지, 한 사람이 대부분의 작업을 도맡아 하지는 않았는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는지, 효율적으로 작업량이 배분되었는지에 대해 각자의 생각들을 나누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각자의 학생들은 다음의 공동 작업에서는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작업에 만족하는 그룹은 모두 다 같이 기쁨을 나눌 수도 있다.
개인의 책임 : 그룹으로 공부를 하면 어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어떤 아이는 모든 과제를 혼자 떠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협력 학습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그룹 내에서 한 사람이 보고서를 도맡아 쓰거나, 대부분의 문제를 푼다면 협력 학습의 장점과 이익은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개인의 책임을 확실히 하느냐에 달려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이해하였으며, 어떤 면에서 부족한가를 가장 잘, 또한 공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하는 보다 큰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대신 그룹을 이루어 공부할 때, 어떻게 하면 각각의 아이들이 모두 그 학습에 공평하게 참여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가장 쉬운 방법은 그 과제에 대해 전체 그룹의 아이들을 테스트하거나, 각 그룹에서 한 아이를 무작위로 뽑아서 자신의 그룹이 이룬 성과와 그 성과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자칫하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해야 한다. 즉 이런 측정 방식은 학습의 책임을 외적 권위에 대한 책임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많은 교육자들은 아이들이 학업에 열중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어떤 이들은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쁜 성적을 받거나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의 책임을 묻는다면 협력 학습의 의미는 퇴색할 것이다.
적극적인 상호의존 : 한 팀의 아이들이 서로 돕고, 의견을 나누고,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만들어주는 방법 중 하나는 그룹에 하나의 과제를 부여하여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각각의 아이들에게 개별적인 과제를 준 뒤, 그룹을 만들어 서로 도우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공동의 목표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은 협력 학습의 기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방법은 문제가 있다. 그 방법이란 그룹 내의 아이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따로 주는 것이다. 즉 한 명은 아이들의 의견을 기록하고, 한 명은 전원이 제대로 학습에 참여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또 한 명은 소외된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의 그룹 활동은 학생들 스스로의 참여를 제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의 주된 임무는 기록이라고 인식하면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상호작용에 소홀해질 수 있다. 협력 학습에서 모든 아이들의 주된 임무는 다른 학생들과 협력하여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훼손될 수도 있는 방식의 활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매우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협력 학습을 실시중인 33개 교실을 조사한 미주리 대학의 연구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경우, 그룹 내의 학생들을 팀장과 기록원, 자료 담당자 등으로 나누어 지정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학생들은 필요할 경우 역할을 서로 바꾸었으며, 교사들이 개입하지 않으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아예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이 이런 방식에서 교사들은 각각의 아이들에게 그들이 맡은 역할을 인지시키기 위해 수업 과제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만큼의 시간을 소비했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상호의존 관계를 유도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점수, 증명서, 상장 등의 외적 보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퀴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그룹에게 상을 주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협력 학습의 방법으로 외적 동기를 이용할지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을 살펴보자.
첫째, 로버트 슬라빈이 개발한 ‘팀에 의한 학습’은 명백히 외적 동기를 이용한다. 그에 따르면 ‘공동의 목표’ 자체가 ‘상이나 증명서 등으로 인정을 받거나, 휴식 시간을 더 갖거나, 보너스 점수를 받기 위한 일’을 의미한다.
둘째, 어떤 이들은 외적 보상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한편으로는 상호의존 관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보상의 이용을 인정하면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존슨 형제는 효과적인 협력 학습을 위해 성적을 이용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외적 동기는 “그룹에 내재하는 내적 동기가 발생하는 즉시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입장은 외적 보상이 조작적이고, 유해하다는 이유로 그 이용을 반대한다. …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어떤 보상을 위해 일을 하면 장기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 떨어지며(특히 창조성이 요구되는 작업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더불어 그 일에 대한 관심까지도 줄어든다. 이는 사회심리학에서의 많은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다. 경쟁이 비생산적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외적 보상 때문이라고 이미 이야기했다. 그것을 협력 학습의 유인으로 사용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다. 적극적인 상호의존과 학습의 증진을 위해 보상이 필요하다는 믿음(물론 매우 의심스런 가정에 입각하고 있지만)은 협력 학습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협력 학습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많은 의견 대립이 생기는 것도 보상에 관한 것이다. 협력 학습은 교육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 즉 다음 세대들이 서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외적 보상에 관한 여러 주장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또 한편에서는 협력 학습이란 학생 개개인에게 적용되던 교육 방법이 그룹 차원으로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협력이란 강화(reinforcement, 보상을 통해 행동을 제어한다는 심리학 용어-옮긴이)를 통해 가르쳐지는 개별적 행동을 그룹으로 묶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협력 학습이란 그저 정해진 교과과정을 좀 더 잘 가르치기 위한 여러 학습전략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이란 그렇게 하도록 외적 동기와 보상들이 주어졌을 때에만 학습하고, 상호 의존을 하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긴다. 나는 이러한 주장들을 편의상 행동주의 입장(심리학에서의 행동주의가 모두 이러한 틀에 묶여있는 것은 아니다)이라고 부를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협력 학습을 교육의 광범위한 변화를 위한 하나의 운동으로 본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아이들은 지식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며,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노력은 보통 타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룹 토론은 단순히 ‘자유로운 대화’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학습이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각을 키우고, 지적 능력과 인간관계의 발달을 돕는 것이다. 그 목표는 학생들이 타인과의 협동을 배우며, 학습과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떤 문제를 결정하고, 학습하는 데 있어 개별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더 많은 책임을 갖는다. 이러한 입장을 구성주의라고 부른다. …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학습이란 것을 좋은 성적을 얻거나, 상을 받거나, 파티에 초대되거나, 경쟁에서 이기거나* 부모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외적 보상이 없을 경우 학습을 계속할 의미는 사라질 것이다. 결국 보상을 줘야만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학습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이것은 또한 아이들이 학습에 관심이 없으므로 보상을 줘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한다. 말하자면 악순환이 시작되는데, 이는 마치 목이 마른 아이에게 소금물을 주는 것과 같다.
* 유감스럽게도 어떤 협력 학습 모델은 그룹 간의 경쟁을 필요로 하는데,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이런 구조는 아이들에게 결국 협력은 다른 그룹을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즉 공동의 적에게 승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데, 이런 모순된 메시지는 협력 학습을 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모두 없애버린다.
협력을 위한 세 가지 C
… 협력 학습(다른 학습 방법에도 적용할 수 있다)의 효과적인 실행을 위한 세 가지 주제를 살펴볼 것이다. 이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협력을 위한 세 가지 C란 [스스로의] 관리(Control), 교과과정(Curriculum), 공동체(Community)이다.
관리 : 그 일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일일이 지시받는 성인들은, 말하자면 다 타버린 양초처럼 완전히 연소되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기 쉽다. 누군가는 이것에 분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월급을 위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명령에 따른다. 어릴 때부터 지시와 복종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어른들처럼 마치 못해 공부를 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일을 스스로가 관리한다고 느끼는 학생(또는 어른들은 그 일에 흥미를 가질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다른 어떤 외적 보상보다 효과적이다. 외적 보상이 어떤 일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을 없애버리는 이유는 자신이 그 일을 관리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단지 외적 보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학생들이 자신의 공부와 인간관계에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자기 스스로 선택한 교재로 과제를 해 온 학생들은 똑같은 교재를 교사에게 받아서 해 온 학생들보다 더 창의적이었다고 한다. 교실에서 무엇을 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은 인위적인 보상을 덜 필요로 할 것이며, 학업에 더 열중할 수 있다.
스스로의 관리를 중시하는 협력 학습 모델이 앞서 말했던 시로모 샤란의 ‘그룹조사’ 방법이다. … 이 모델의 창시자인 샤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협력 학습은 학생들에게 학습 활동의 내용과 진도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협력 학습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아이들을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협력 학습은 아이들을 듣는 존재에서 이야기하는 존재로 바꾸며, 무력한 방관자에서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미치는 참여하는 시민으로 바꾼다.」
이 말은 협력 학습이 만들 수 있는, 또한 꼭 만들어야 하는 학습 환경에 관한 것이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교과과정 : 교육 문제에 관한 많은 저서들이 교과과정의 개선에 관한 각종 주장들로 채워져 있으므로, 나는 여기서 세 가지만을 지적하도록 하겠다.
첫째, 아이들의 타고난 호기심을 자극하며, 부담을 줄 정도로 어렵지 않고, 싫증을 낼 정도로 쉽지는 않은 교과과정이 존재한다면 아마 아이들의 학습을 위한 외적 보상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빈칸 채우기 문제를 풀도록 하거나, 역대 왕조와 그 왕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외우게 하려면 외적 보상을 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좋은 교과과정은 어떠한 외적 보상 없이도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협력 학습의 장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스텐포드 대학의 엘리자베스 코헨 Elizabeth Kohen에 따르면 “과제가 도전적이고 흥미로우며, 아이들이 그룹 활동에 충분한 경험이 있다면, 학생들은 협력 학습 자체에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협력 학습을 교과과정과 연관하여 다루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협력 학습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협력 학습이 불가능한 교과과정도 문제가 되지만, 교과과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협력 학습이 가능하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이는 무엇을 가르치든 협력 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으므로(즉 그룹으로 배우면 어쨌든 다 이득이 되므로), 교육자들은 교재가 흥미로우며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마라 사폰-세빈은 이러한 모델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햄버거나 만들면 딱 좋을 사람들”이라고 비웃듯이 말했다.
학교가 이른바 ‘싸구려 지식 구멍가게’가 되는 것을 피하려면, 또한 협력 학습이 그런 교육을 그럴듯하게 꾸며주는 장식품이 되지 않으려면, 교사나 학생들 모두의 사고 능력을 높여주며, 아이들이 흥미와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 적합한 교재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외적 보상이 주어지는 협력 학습 모델을 선호하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교과과정과 교재가 제일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뒤에 비로소 교과과정에 맞는 협력 학습을 어떻게 실행할지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교재들을 단지 능률적으로 끝마치기 위해 협력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실제 학교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협력 학습이라는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협력 학습을 오로지 표준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이용한다든가, 단지 그것 때문에 권장하는 것이라면, 협력 학습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교육이나 아이들의 동기 유발에 별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이러한 표준 시험을 숭배한다. 심지어 그들은 모든 학교에 똑같은 시험지를 나누어 주고, 누가 정답에 검은 칠을 잘하는지 경쟁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풍부하고 창조적인 교육, 또는 아이들의 창의력과 학습 의욕을 없애버리고 싶다면 표준 시험에 더욱더 의존하도록 하면 된다.
공동체 : 아이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경우, 혹은 외적 보상이 주어질 경우에만 협동할 것이라는 추정, 즉 어떤 교실도 자연적으로 아이들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추정은 ‘인간 본성’에 대한 매우 냉소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봤을 때조차 이는 올바른 추정이 아니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는 남을 돌보는 것이 자신을 돌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는 교실에서는 적극적 상호의존이 자연스럽게 정착되며, 협력 학습은 다른 외적 보상이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계획된 프로그램이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어린이 계발 프로젝트(Children Development Project)’이다. 이것은 타인에게 호의적이며,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갖도록 해주는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초등학교 프로그램인데, 여러 학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 그 핵심은 서로 돕고, 공유하게끔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외적 보상을 주는대신,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우리가 원하는 교실은 과연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주제를 탐구해보면 협력 학습을 넘어서 협력 교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전에는 이런 차원의 교육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어떤 교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했다. “그녀는 ‘서로 돕지 말고 혼자서 공부해! 그런 협력은 부정행위가 될 수도 있어!’라고 아이들에게 외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협력이 어떤 특정한 수업에만 적용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지향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학습방법 뿐만이 아니라 교실 분위기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린이계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초등학교 2학년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들에게 하루에 30분씩 별도의 과목처럼 협력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 동안엔 개별적으로 경쟁하는 분위기의 교육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등교해서 하교하기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 동안 아이들은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돕고 협력하는 동일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해야 한다.」
이는 한정된 시간에만 협력 학습을 실시하고, 그 효과가 다른 수업 시간에도 나타나 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교사들은 시야를 넓혀 학습 전체를 다시 생각하고, 협력 학습의 경험을 모든 학교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교육은 대부분 교사들이 지식을 나열하고, 학생들이 그 지식을 다시 말하도록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교사가 말한 지식을 아이들이 똑같이 반복하여 문제를 맞히면 성공한 학습으로 간주한다. 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여(유럽은 무엇일까요? 네, 맞아요. 그것은 대륙이죠. 잘했어요), 교수의 강의 노트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답안지에 써야 하는 대학교까지 이어진다.* 협력 학습을 지지하는 연구와 가치관은 이러한 교육에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다. 물론 협력 학습이 기본적인 지식의 습득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협력 학습은 지식과 정보의 질을 구분하는 법과 깊이 있는 사고를 지향한다.
* 고등교육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교육 방법으로 인해 대학에서의 협력 학습은 더욱 어려워진다. 샌디에이고 대학의 스티븐 겔브Steven Gelb에 따르면 “지식과 생각하는 방법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전문가인 대학교수의 전통적 역할 자체가 협력 학습의 환경을 만드는 데 장애가 된다.” 그는 또한 학생들이 협력보다는 권위에 순종하며, 교수들 역시 매우 경쟁적인 환경에서 일하므로 협력을 성공에 대한 방해로 생각하며, 이를 협력 학습의 장애라고 말했다.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학습을 관리하고, 알맞은 교과과정을 제시하며, 교실에서 공동체 의식을 조성한다면, 외적 보상이 없이도 협력 학습은 성공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자면, 적어도 3개의 협력 학습 모델은 외적 동기 없이 학업 성과를 증진시켰다. 첫째는 앞서 말한 ‘그룹조사’ 모델이다. 둘째는 ‘어린이 계발 프로젝트’인데, 이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 교실의 학생들은 매우 높은 이해력을 필요로 하는 논술에서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으며, 표준 시험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세 번째 모델은 구성주의의 원리와 그룹 활동에 입각하여 수업하는 초등학교 2학년 수학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칭찬을 포함하여 어떠한 외적 보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학생들은 단지 교과서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시된 어떤 상황에 대해 서로 토의하는 방식으로 수학을 배웠다. 이 아이들은 전통적인 학습법에 의해 배운 학생들보다 더 복잡하고 수준 높은 추리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기본적인 계산능력 역시 뒤처지지 않았다.
이제껏 살펴본 스스로의 관리, 교과과정, 공동체 문제는 우리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만약 이 세 가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협력 학습뿐만 아니라 교육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협력에 대한 전망
아이들에게 협력 학습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 … 협력 학습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효과를 과장할지 모르며, 반대의 사람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다. 현재 미국의 많은 교사들은 협력 학습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수만 명의 사람이 협력 학습과 관련된 교육을 받았으며, 전문 잡지가 발행되고 있다. 또한 이 주제에 대한 많은 논문과 도서들이 출간되었고, 한 교육 단체는 “협력 학습은 다른 교육 개혁 프로그램과는 달리 일시적인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아직도 교육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교육 관련 단체들 역시 협력 학습이 학습의 질을 높이는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
예를 들어 ‘전미과학진흥협회(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과학과 기술 연구에는 협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협동심은 교실에서의 활동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국수학교사협의회(The NationalCouncil of Teachers of Mathenatics, NCTM)에서도 소규모 그룹을 통한 수업 방식의 가치를 인정했다.(몇몇 대학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협력 학습법을 도입하고 있다). 전국영어교사협의회(The NationalCouncil of Teachers of English, NCTE) 역시 협력 학습에 관한 논문집을 발간하면서 “학생들에게 공동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줘야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장학사들이 협력 학습에 대한 효과(동기 유발에 좋고, 책임감을 키우며, 창의력이 발전된다)를 인정하고, 그러한 방식의 수업을 적극 권장한다.
그러나 협력 학습을 지지하는 어떤 이들은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즉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걱정하는 교장이나 주임 교사가 평교사들에게 단기간(비용이 적게 드는)의 연수를 받게 하고, 따라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학습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협력 학습은 단지 수업 방식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학습의 내용, 학교에서의 인간관계까지도 새롭게 하는 하나의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협력 학습은 각 학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많은 문제점과 의문점을 만들어낸다. 교사들 역시 단기간의 연수가 아니라, 협력 학습을 얼마간 시도해 보고 나서야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사실 협력 학습과 같은 변화는 동료들의 관심과 지지, 관찰과 충고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 과정은 교사들의 관심과 경험을 존중하면서 실시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원치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시킬 수는 없으며, 시켜서도 안 된다).
* 좋은 학교를 만드는 데 있어 동료들 간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학생들에게 협력을 통해 높은 자존심, 적극적인 인간관계, 좋은 성과를 만들어주고 싶다면, 교사 역시 동료 교사들과 협력해야 한다. “만약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공부만 해라. 옆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수업 시간 내내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가치를 옹호한다면, 그 가치관은 동료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맡고 있는 반의 문제를 동료 교사와 상의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경쟁에서 불리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서로 협력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 역시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이는 지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협력 학습의 연수 참가자 중 계속이 방법으로 교육할 사람이 5~10%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연수를 받지 못했거나,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지원이 없다면 많은 교사들은 협력 학습을 실행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포기해 버릴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때의 유행 정도로 협력 학습이 사용되는 것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한편으로는 협력 학습이 실시되고 있는 현황을 볼 때, 사실 유행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통적인 관행으로 가르치는 학교에 비해 협력 학습을 조금이라도 도입한 학교는 그야말로 소수이다. 지금 당장 어느 학교의 어떤 교실이든지 들어간다면, 여전히 교사의 칭찬과 좋은 등수를 얻기 위한 경쟁, 구조적으로 강요된 인간관계의 황폐화, 앞 학생의 뒷머리를 바라보고 줄줄이 앉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교육 개혁에 관한 수많은 토론에도 한 학생의 학습을 다른 학생의 학습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협력 학습을 실현하는 길은 너무나 멀다. 연수를 받은 교사들 중에도 협력 학습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았던 어떤 이는 “협력 학습의 학문적 가치와 그것을 보급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이 한 학년 동안, 혹은 그 이상 꾸준히 사용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93 여기엔 협력 학습의 실천을 위한 훈련이나 의지의 부족, 협력 학습에 대한 여러 오해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뿌리 깊은 문제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많은 교육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네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는 협력 학습이 우리 문화가 지지하는 경쟁에 도전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우리 문화의 가장 큰 가치인 개인주의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앞서 언급했다.
세 번째는 어떤 태도에 관한 것인데, 아이들은 때때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교우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서투르며, 다른 학생에게 하기 싫은 것을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고, 반대로 다른 학생의 강요에 희생되는 학생도 있다는 것을 교사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교사들은 자신의 책임은 수업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야 어떻든 우리 학교에 대해 존 굿라드는 “존경, 신뢰, 협력, 배려 등에 입각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생산적이고, 만족할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에 교실에서의 학습은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학업의 성취나 등수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협력 학습은 아이들의 사회성을 키워야 하며, 이를 위해 서로를 돕는 공동체 교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표준 시험의 답안지를 잘 작성하는 훌륭한 학생으로 만드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훌륭한 인격체가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협력 학습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학자 이스라엘 리치Yisrael Rich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협력 학습이 아이들의 성적 향상이 아니라 인간성과 사회성을 키워주는 방법이라고 인식한다면, 이런 학습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협력 학습에 대한 제대로 된 연수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많은 교사들은 교육 현장에서 이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부득이하게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충실히 이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협력 학습의 보급이 어려운 네 번째 이유는 그룹 학습이 교실에서 교사의 통제권을 약화시키고, 앞으로 발생하게 될 일들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한다는 데 있다.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기존의 수업 방식을 교사가 미리 연습한 곡을 혼자서 연주(학생들은 청중의 역할을 한다)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협력 학습은 교실의 모든 학생들에게 악기를 주고, 게다가 즉흥연주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협력 학습의 두 가지 특징은 잘 포착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서로를 도우며 동등하게 참여하고(이럴 경우 교실의 유일한 정보 제공자는 교사가 아닐 수 있다), 이미 정해진 진도에 따라 예측 가능한 수업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교사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이 도입되는 수업 방식을 원치 않을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을 거느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왕의 역할은 재미있다. 학교교육이란 학생들로 하여금 지시에 복종하고, 제공되는 지식만을 흡수하며, 등수를 매기기 위한 표준 시험을 위해 그 지식을 외우고, 어떤 규칙이든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사라는 직업은 독재자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관대함을 가지고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많은 교사들을 만나왔다. 그러나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서로 돕는 방식으로 수업하는 것을 꺼리는 교사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협력 교육은 교사를 포함하여 교실에 있는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일부 교육자들에게 흥미롭고 고무적이지만, 증인과 미리 말을 맞춰야지만 질문하는 변호사들처럼,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 외에 다른 것은 절대 묻지 않는 교사들에겐 당혹스러운 학습법이다. 이에 대한 해결법으로 현재의 학습 방법과 그다지 차이가 없을 정도만 협력 학습을 도입하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즉 종래의 교실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지시했다면, 협력 학습에서는 그룹에 대해 지시하면 된다는 발상이다. 이렇게 되면 그룹을 만들어 공부를 하면서도, 교사의 예측대로, 계획대로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사들의 편의를 위해 협력 학습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다. 시로모 샤란은 협력 학습의 잠재력을 감소시키는 이러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협력 학습을 여전히 교실에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아이들이 싫증내는 교재와 학습을 조금 덜 싫증 내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미리 정해진 계획에 의해 운영하려고 한다면…협력 학습은 교육 시장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또 다른 많은 교육 방법들처럼 또 다른 기만적 모델로 취급되어 버림받을 것이다.」
사실 협력 학습에 있어 예측 불가능성은 필요악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협력 학습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에 있어 너무 편안한 것은 문제가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귀족들이 좀 더 편안한 생활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며, 그것을 자랑하는 소리를 듣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도처에 어려움을 만드는 일”을 자청했다. 교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상황을 제시하여 협의와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101 ‘어린이 계발 프로젝트’의 총감독자인 에릭 샤프스Eric Schaps는 “보다 깊은 학습을 위해서는 내가 평소에 보던 협력 학습 교실보다 ‘좀 더 복잡한’ 수업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협력 학습이 넓게 보급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공동으로 공부하는 것을 원하느냐에 어느 정도 달려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주 훌륭한 교사,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 호감 어린 인간관계, 어떤 개념을 이해했을 때의 기쁨 등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를 관찰하면서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 기록한 것처럼, 이러한 아름다운 추억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고립과 창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 경쟁, 무의미한 숙제, 지루함 등등. 이런 말들이 가슴에 와 닿는 사람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냉정한 마음으로, ‘그래, 나도 견뎠는데, 다 그런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세대들도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 겪어야 했던 불합리한 일들을 없애려는 노력은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될 것이다.
협력 학습은 우리 사회의 가치에서 벗어나는 일인가? 우리와 같이 경쟁적인 문화에서도 협력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므로 꼭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 협력 학습은 사람들을 대립시키는 관행과 믿음에 도전하는 일이다. 우리의 교과과정에는 명백히 경쟁을 강조하며, 이러한 도전을 방해하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103 그러나 함께 작업하면서 배우는 협력 학습은 분명 아이들에게 다른 경험, 그리고 경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따라서 협력 학습을 우리 사회의 가치를 잘 유지시키느냐 아니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나 구조가 협력 학습의 가치에 맞는 것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알피 콘Alfie Kohn, 경쟁에 반대한다-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하는가?No Contest : The case against Competition, 이영노 옮김, 산눈, 2009년, 259-290쪽에서 부분 발췌 참조. 이미지 출처-알피 콘의 공식 홈페이지 https://www.alfiekohn.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