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경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하여 교회의 역사 안에 오랫동안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예수 성심 공경을 몸소 자신의 삶으로 살아냈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St. Francis de Sales(1567~1622년)는 성 요안나 프란치스카 샹탈St. Jeanne-Françoise Frémyot de Chantal(1572~1641년)과 함께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의 설립(1610년) 등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교회 안에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제도화하려고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을 지니신 예수 성심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예수 성심 공경을 교회의 모든 이가 실천할 수 있는 덕행과 모범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예수 성심 공경은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의 수녀였던 성녀 마리아 알라코크St. Margaret Mary Alacoque(1647~1690년)에게 주어진 70여 회의 환시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급기야 예수 성심 공경은 1765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재위 1758~1769년)에 의해 공식적인 신심업과 축일로 선포되고 권장되었다. 이를 받아 비오 9세 교황(재위 1846~1878)은 1856년 예수 성심 축일을 전 세계 교회 축일로 확산시켰고, 나아가 ‘성심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년)은 1956년 예수 성심 축일이 보편교회 전체로 확대된 100주년을 기념하여 회칙 「물을 기르리라」를 반포했다. 이 회칙은 이전의 가르침과는 달리, 예수 성심 공경의 교리적 근거와 기원을 신학적으로 제시했다. 1969년 전례 개혁 이후에 예수 성심 축일은 대축일로 승격된다.
돈 보스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이름을 따서 살레시오회를 설립한 돈 보스코St. John Bosco(1815~1888년)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의 공경과 지극히 거룩한 성체의 신비가 하나인 것을 자신의 교육적이고도 사목적인 삶의 원리로 삼아 젊은이들이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이들이 되도록 끊임없이 부추겼다. 돈 보스코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 신심, 곧 예수 성심 공경을 널리 퍼트리십시오. 성체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생각으로 여러분의 정신을 모으십시오.”(1935년 판, 돈 보스코 전기-MB, 제16권, 195쪽, pdf판에서는 78쪽)라고 말한다. 돈 보스코는 예수 성심에서 남들이 흔히 보지 못한 것을 특별하게 보았던 사람 중 하나인 셈이니, 곧 예수 성심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영혼들을 거룩한 성찬의 식탁으로 인도하는 데에 손쉽고도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돈 보스코는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을 지녀 그 열매로서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자주 받아 모신다는 것이 지극히 아름다운 순간이며 영혼의 유익을 위해 대단히 유익하고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돈 보스코는 교회가 예수 성심 공경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알리기 훨씬 이전부터 ‘성체의 마음(Cuore Eucaristico)’에 관한 신심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고 있었다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돈 보스코의 일생 전반이 영혼들, 특별히 청소년의 영혼들을 오로지 성체의 마음으로 인도하고자 하였던 삶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준비된 청소년Giovane Provveduto>이라는 소책자에서 돈 보스코는 예수 성심에 관한 신심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예수님께서는 겸손하신 동정녀를 통해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부당하게 받아 모시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탁하셨다.”라는 언급을 한다. 이어서 돈 보스코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사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성체를 받아 모시려는 강한 열망을 발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예수 성심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힘과 온기(열), 하느님의 사랑,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영혼도 이에 참여하도록 우리가 전달해야 할 사랑을 받습니다.”라고 말하는 돈 보스코는 예수 성심에 관해 실로 크나큰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돈 보스코에게 예수 성심 공경은 잦은 미사 참여와 영성체, 고백성사 등을 통해서 예방교육을 실행하는 기둥의 뿌리가 되고, 교육이라는 건물을 짓기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돈 보스코는 아홉 살에 만나 자신의 삶을 동반해 주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도움이신 마리아와 자신의 교육적 삶의 뿌리였던 예수 성심을 기려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과 예수 성심 대성당을 지어 1868년과 1887년에 각각 봉헌하였다.
1870년 무렵 특별히 이탈리아와 프랑스 지역에서는 예수 성심에 관한 신심 운동이 불타오르며 많은 신자가 열렬히 참여하고 있었다. 이에 비오 9세 교황께서는 현재의 로마 중앙역이 있는 자리에 예수 성심께 봉헌된 새로운 성당을 짓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성당 건축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교회 내부적인 혼란이나 행정적인 어려움으로 기초 과정에서 이미 중단되고 말았다. 비오 9세의 뒤를 이은 교황 레오 13세께서는 1978년 2월에 교황님을 향한 무조건적인 돈 보스코의 순명을 잘 알고 계시던 터라 성당 건축 일체를 돈 보스코에게 일임하고자 하셨다. 급기야 1880년 4월 5일 레오 13세 교황께서는 건축기금이 없다는 내용과 함께 돈 보스코에게 성당 건축에 관한 전반적인 책임을 직접 맡기셨다. 이에 돈 보스코는 성당 옆쪽에 그 지역에 버려진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기숙사와 학교, 오라토리오를 추가한다는 조건만을 달아 이를 수락하였다. 이러한 성당 건축이 이미 노인이 되어가고 있던 돈 보스코에게는 극심한 희생을 치르도록 하였지만, 돈 보스코가 책임을 맡은 이후로는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었다. 여러 번에 걸쳐 자금이 고갈되었지만 돈 보스코는 절대 작업을 중단하지 말도록 명령했고, 파산과 부도가 눈앞에 들이닥치는데도 그때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공사를 계속할만한 기부금들이 제때 도착하곤 하였다.
1883년 새로운 성당의 합창대석과 사제석이 축성되었고, 이듬해에 레오 13세 교황님은 성당 전면을 위한 국가적 모금 운동을 발표하셨다. 마침내 1887년 초에 건물이 완성되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을 즈음 돈 보스코는 이미 72세의 노인이 되었고 기력이 다해 가고 있었다. 1887년 4월 20일 돈 보스코는 토리노에서 로마로 향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때 돈 보스코는 레오 교황님을 다시 만났고, 성당의 마지막 마무리를 지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887년 5월 14일 로마 카스트로 프레토리오Castro Pretorio에 있는 예수 성심 대성당이 봉헌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887년 5월 16일 돈 보스코는 성당 내의 도움이신 마리아 제단에서 그로서는 그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그렇게 미사를 봉헌하면서 돈 보스코는 9살 때의 꿈으로 보았던 환상, 그리고 그 꿈과 함께 이 땅에서 자신이 걸어왔던 오랜 세월의 사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온전히 깨우치면서 울먹임과 흐느낌으로 15번이나 미사를 중단해야만 했었다.
돈 루아
돈 보스코의 첫 번째 후계자 돈 루아Bl. Michele Rua(1827~1910년)는 1899년 12월 31일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던 살레시오회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면서 예수 성심 공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특별히 살레시오회의 양성소들과 수련자들이 예수 성심 공경에 헌신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돈 루아는 돈 보스코께서 지으신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의 입구 첫 번째 경당을 예수 성심을 기리는 경당으로 봉헌하고 여기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께서 예수 성심을 기리는 성화를 모신다. 돈 루아는 <예수 성심 공경에 관한 가르침Istruzione sulla devozione al Sacro Cuore di Gesù >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이 땅에 살아있을 때 그분은 예수 성심 안에 살았으며, 그 어떤 막중한 일도 예수 성심 안의 안식을 깨트릴 수 없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마치 모세가 주님을 만나 하느님의 사랑에 젖어 사람을 위해 감미로운 존재가 된 것처럼 예수 성심의 두 가지 특성인 온유와 겸손이라는 덕성을 지닌 분이 되셨습니다. 이리하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예수 성심께 봉헌된 박사로 불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성인은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주님의 성심이 얼마나 사랑스러우신지! 우리는 주님의 성심이라는 거룩한 피난처 안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심장)이 항상 우리 마음 안에도 사시기를, 그분 마음의 피가 우리의 핏줄에도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기를 빕니다.’(편지 640) ‘저는 제 영혼의 쉼을 위해 사랑스러운 그분 가슴에 기대어…구세주의 사랑하올 마음에 (의탁하여) 일정 시간을 매일 지정할 것입니다.’(영적 속삭임) ‘어느 날 영성체 후에 내 마음(심장)이 빠져나오고 대신 그곳에 좋으신 예수님께서 들어가 자리를 잡으시면 제가 얼마나 행복 할는지요!’ ‘당신의 마음을 구세주의 찢어진 옆구리에 가두고, 마음의 왕이신 바로 그분과 하나가 되십시오. 그분께서 왕좌에 앉으시듯 그 자리에 앉아 다른 모든 마음의 순종과 영예를 받으실 수 있기를! 누구나 그분께 다가가 그분을 알현할 수 있도록 그분 옆구리는 닫히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과연 성인께서는 분명 온 세상에 가장 특별한 예배, 경배드려야 할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을 제안한 첫 사람으로서 모든 마음을 그 사랑으로 이끌고자 했었습니다.』
선종을 며칠 앞둔 돈 루아는 프란체스코 체루티 신부에게 성소자들을 청하기 위해 예수 성심께 바치는 기도문을 작성해 주도록 부탁한다. 이에 체루티 신부가 기도문을 작성했고, 이를 승인한 돈 루아는 이 기도문을 복사하여 자기 베게 밑에 두도록 하였다: 『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이여, 착한 살레시오회에 훌륭하고 합당한 일꾼들을 많이 보내주시어 그들이 살레시오회 안에서 충실하도록 청하오니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돈 루아로부터 계속 이어진 예수 성심 공경의 전통은 살레시오회 안에서 근본적인 정신의 뼈대가 되었으니, 오늘날 살레시오회의 회헌은 『살레시오 정신은 성부의 사도이신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서 그 모범과 원천을 찾는다. 우리는 복음을 읽을 때 주님의 몇몇 특징적인 모습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모든 이에게 거룩한 부르심의 선물을 주시는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 어린이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총애, 임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긴박성에 따라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영혼을 구하려는 열망, 온유함과 자기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착한 목자의 태도, 형제적 친교의 일치 안에 제자들을 모으려는 의지 등이 그것이다.(회헌 제11조)』라는 대목을 수록한다.
*이 글은 살레시오회 파스칼 차베스 前 총장, <돈 보스코의 예수 성심 사랑La devozione al Sacro Cuore, tanto cara a Don Bosco> https://www.sacrocuore-bologna.it/it/articoli.php?CAT=articoli&ID=86939 / 1944년 8월 살레시오 가족지 이탈리어판, <돈 보스코와 예수 성심 공경Don Bosco e la devozione al Sacro Cuore di Gesù> https://bollettinosalesiano.it/archivio/1944/194408.pdf / 김건중,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예수 성심聖心> http://benjikim.com/?p=4244 등과 여타 자료들을 참조하여 재구성한 글임을 밝힙니다.(*이미지 출처-뉴욕 마리안 쉬라인 소식지)
예수 성심 9일기도 영적 꽃다발 구성이 수도회 역사 안에서 나타난 예수 성심과 살레시오 영성과 관련하여 있던데 신부님의 자세한 내용으로 9일 기도를 풍성하게 바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