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

1990년대 중반쯤 필자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함 안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대개 3가지 열쇳말(키워드)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청소년들과 살아가는 살레시오회라면 이러한 화두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한 적이 있다. 세 가지 열쇳말은 남북, 인터넷 그리고 교육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 말은 아직 유효하다. 이는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분단 국가로서 우리만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고, 세계 어디를 가도 인터넷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발달한 우리의 정보 통신 산업과 그 구조 때문이며,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가운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낮은 문맹률과 고학력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교육”이라는 주제를 두고, 특별히 살레시오 회원으로서 돈 보스코의 교육을 중심으로 글을 쓰거나 생각해보려 하면 즉시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과 생각의 꼬투리들이 말 그대로 ‘몰려든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된다는데, 과연 그런 것일까?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의 논리와 개념 그리고 원리를 몸에 익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일까?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교육의 주체는 누구이고 대상은 또 누구일까? 과연 그런 구분이 정당하기나 한 것일까?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고 “오직 영혼만을” 생각한다는 돈 보스코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교육 현장에서도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아니 어떻게 해야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열심히 살아가는 살레시오 가족들의 덕분으로 날로 ‘명문’이 되어가는 우리의 학교 교육은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 안에서 ‘더욱 가난하고 버림받고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을 찾는 우리의 이념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학생들을 나이별로 분류해서 모아 놓고 단계별로 줄 세워 컨베이어 벨트식 프로그램으로 집단 교육을 한다는 것이 과연 교육일까? 소수의 우수한 아이들을 배출하기 위해 들러리를 서는 것처럼 느낄 다수의 아이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표준화 교육이니 평준화 교육을 얘기할 때 과연 그런 기준은 어떤 가치 위에서 누가 설정한 것일까?

학교 교육과 더불어 가정과 사회를 포함하는 학교 밖 교육은 어떻게 서로를 보충 · 보완할 수 있을까?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묻는 단 한 번의 소위 ‘수학 능력 시험장(수능)’에 가지도 않았던 아이들, 여러 사연으로 시험에 지원조차 할 수 없었고 대책 없이 매년 사회에 누적되고 있는 수십만 명의 학교 밖 아이들, 응시하였어도 첫 시간 시험이 끝나면서 튕겨 나간 5만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교육은 무엇이고, 나라가 작은 탓에 그 시험 시간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시간까지 조정해야 하는 나라에서 교육은 과연 무엇일까? 48만 명의 수능 응시생(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들이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대학교에 간다고 한들 정말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거기까지가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교육일까? 수능 없는 ‘수시 입학’은 또 다른 편법과 기득권을 위한 통로가 되지 않았을까?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의 열네 개 사목터 중 열두 개는 아이들을 위해서 소위 ‘정규학교’가 아닌 다른 대안 교육인 셈인데, 이는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어떤 의미를 담는 것일까? … 끝없는 질문들이 솟구친다.

살레시안에게 ‘교육’은 근본적으로 청소년의 아버지요, 친구이며 형제요, 교육자로서 살고 싶은 사람의 정체성을 묻는 물음이며 방법론이자 삶의 양식이다. 또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이들과 동고동락했던 돈 보스코의 삶 자체이고, 살레시안과 만나는 아이들이며 그들의 미래이다. 살레시안은 ‘기억과 경험의 지혜를 가지고 있고 (…) 청소년들은 우리가 희망을 새롭게 일깨우고 키우도록 촉구한다.’[1]

마음의 일

1883년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에 돈 보스코는 ‘살레시오 집에서 체벌을 가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긴 편지글을 썼다. 그 편지글 끝에서 돈 보스코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교육은 마음의 일이고 그 마음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 마음에 다가가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그 열쇠를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엄하거나 심하게 대하면 굳게 닫혀 버릴 수도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리고 하느님께 겸손하게 온전히 의탁함으로써 얻어 내도록 합시다. 젊은이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하고,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지니도록 노력한다면, 놀랍게도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림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길이 되시고, 모든 면, 특히 청소년 교육에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하느님을 함께 찬미하고 축복받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안에서 항상 저를 믿으십시오.”[2]

교육은 마음의 일(l’educazione ѐ cosa di cuore)”이라는 살레시오회의 교육에 관한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정의定義와 살레시오 회원들이 종신서원을 할 때, 살레시오회로부터 수여 받는 십자가에 새겨진 “젊은이들이 당신을 사랑하도록 힘쓰십시오(Studia di farti amare).”라는 명문장이 탄생한 대목이다. 인간의 마음자리는 하느님의 자리이고, 그 자리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니 교육은 그 마음에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이루어져야 한다는 돈 보스코의 통찰과 믿음,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지녀야 하고 살아야 할 원리이다.

사람들은 온갖 부질없는 것들을 위해 아이디를 설정하고 패스워드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위한 또 다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설정하고는 그것을 잊어버려 끙끙대며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인간을 “끝까지”(요한 13,1)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한처음에”(요한 1,1) 사람을 두고 ‘당신의 모상’이라는 아이디를 설정하시고, 당신의 자리인 ‘마음자리’라는 패스워드를 설정하시어 변함없는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신다. 사람이 사람에게, 더욱이 청소년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그 주인에게 알려 주시길 청하여 그것을 얻어 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참사랑에 빠질 수 있다. “교육은 마음의 일”, “젊은이들이 우리를 좋아하게”라는 말에는 명쾌하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은 성인聖人 돈 보스코의 직관과 삶이 담겼다.

예방교육 체계

돈 보스코께서 돌아가시기 10년 전쯤인 1877년에 돈 보스코는 아이들과 함께 사는 당신의 마음과 삶을 ‘예방교육 체계(The Preventive System)’라는 용어로 처음 사용하면서 이후 자주 이를 되풀이한다. 말년에 그의 저술에 나오는 ‘예방교육 체계’는 ‘우리의 예방교육 체계’가 되고 나아가 ‘살레시오 정신’이 된다.[3] 원천적으로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 체계’는 교육학적인 이론의 정립이거나 저술의 산물이라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돈 보스코의 마음이었고 경험이었으며 인격이었고 성덕聖德이자 교육적 열정을 묘사하는 말이다.

결국, 살레시안의 삶이란 ‘돈 보스코 ‧ 청소년 ‧ 교육 ‧ 마음 ‧ 예방교육 체계’ 등과 같은 어휘들을 중심으로 하는 풀이와 정리 그리고 방법론과 사례이다.

살레시안의 마음[4]

교육 현장에서 살레시안의 마음을 지닌 교육자는 청소년들과 만나면서,아래와 같은 내용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 옆을 무심히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먼저 말을 건넬 줄 압니다. / 이름을 부를 줄 압니다. /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합니다. / 한 명 한 명에 대해 하느님께 말씀드릴 시간을 갖습니다. / 만날 때 미리 기다렸다가 맞이합니다. / 만나는 모든 순간을 교육적 순간이 되게 합니다. / 함께 머무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 친절한 사랑으로 마음을 먼저 얻어냅니다. / 그들 안에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돌볼 줄 압니다. / 인격적으로 대하며 존중합니다. /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 자연이라는 책을 읽을 줄 압니다. / 매일 교육자로서 자신의 삶을 성찰합니다. / 함께 살면서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지닙니다. / 돕는 자, 동반자로서 희생을 감수합니다. / 화가 났을 때 벌을 주지 않고, 인내롭게 이성에 호소하며 설득합니다. /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줄 압니다. 가난한 청소년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있습니다. / 귓속말로 애정이 어린 충고를, 따뜻한 칭찬을 해줄 줄 압니다. / 작은 것에 감동하고 감동을 줄 줄 압니다. / 자신의 사고와 관계 방식을 관찰할 줄 압니다. / 하느님께서 그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꿈꾸고 계신 바를 궁금해합니다. / 인기나 자기만족이 아니라 한 영혼을 구하고 싶은 사목적 사랑으로 일합니다. / 그들의 배신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도 신뢰를 거두어들이지 않습니다. /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하느님께 맡겨 드릴 줄 압니다. / 동반하는 데 도움이신 마리아께서 스승이심을 믿습니다. /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의적 질문, 영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 온화한 미소, 부드러운 말씨, 명랑함이 넘칩니다. / 하느님과 친하게 지냅니다. / 그들 가운데 현존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2020년 3월, <살레시오가족>)

***

[1] 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108항. [2] Eugenio Ceria, Memorie Biografiche di San Giovanni Bosco, vol.16, p.447-supplement, Torino, 1935. [3] 피에트로 브라이도,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 – 억압이 아닌 예방으로』, 돈보스코미디어, 2017 [4] 정리. 살레시오회 김은경 수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