喿라는 글자는 ‘소’나 ‘조’로 소리가 난다. ‘울 소(조)’, 또는 ‘떠들썩할 소(조)’이다. 나무 목(木) 위에 입 구(口)가 세 개나 올라앉아있다. 나무 위에 올라앉아 지저귀고 떠들어대는 입, 곧 주둥이들이 여러 개 있으니 나뭇가지 위에 앉아 떠드는 새들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 手 = 손)을 붙이면 ‘잡을 조操’가 된다. 떠드는 입들을 움켜잡고 장악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잡을 조’라는 글자는 잡다, (손에)쥐다, 부리다, 다루다, 조종하다(操縱), 장악하다(掌握), 다가서다, 닥쳐오다, 단련하다(鍛鍊), 지조(志操), 절조(節操), 절개(節槪ㆍ節介)의 뜻과 같은 다양함을 표시한다. 여기에 우리가 잘 아는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 하나를 붙여 흔히 쓰는 ‘조심操心’이라는 단어가 된다.
그런데 ‘조심’이라는 이 단어는 그렇게 단순한 말이 아니다. 이 ‘마음’을 다잡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요 근본이며 궁극이라고 성현들이 일컬어왔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잡지 못하고 놓아버려 잃어버리는 것이 ‘방심放心(놓을 방)’이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주어져 원래부터 우리 안에 심겨져있는 것으로 모두가 방심하지 않고 잘 간추려야하며 키워내야 하고, 설령 잃었다가도 애써 다시 찾아야하는 ‘선善’의 씨앗은 ‘양심良心’이고 ‘본심本心’이다. 그렇게 마음 하나를 평생토록 흐트러짐이 없이 잘 구하여 얻었으면 이쪽저쪽이 없는 ‘안심安心’이다.
모든 시작은 역시 ‘잡을 조操’, 입단속으로부터 이다.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누가 말을 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복종하게 만들면, 그 온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를 보십시오. 배가 아무리 크고 또 거센 바람에 떠밀려도, 키잡이의 의도에 따라 아주 작은 키로 조종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혀도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지만 큰일을 한다고 자랑합니다. 아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수풀을 태워 버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혀도 불입니다.”(야고 3,2-6) “혀”를 다스릴 은총을 청해야 한다.(20170817*이미지 출처-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