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을 만난 사람의 역사는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한다. 특별히 여인 하와의 죄로부터 불행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던 인간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 혹은 여인들의 이야기로 구원된 인간이 된다.낙원의 역사가 무덤의 역사로 완성되고, 굳이 얘기하자면 여인에게서 시작해서 여인으로 끝나는 역사로 마감하면서 그렇게 구세사가 이루어진다. 부활하신 주님에 관한 이야기로 복음을 끝맺는 복음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여인들이 사도들보다 먼저 주님의 무덤을 찾았고 천사를 만난다는 사실을 전한다는 점에서는 공관복음뿐 아니라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복음이 일치한다.
그렇지만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수는 마르코복음에서 셋(마르 16,1), 마태오복음에서 둘(마태 28,1), 루카복음에서 복수의 여자들(루카 23,55;24,1)이며, 요한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하나(요한 24,1)로 구별된다. 한편 천사들의 수 역시 마르코복음에서 하나(마르 16,5), 마태오복음에서도 하나(마태 28,2), 루카복음에서 둘(루카 24,4), 요한복음에서 둘(요한 20,12)로 각각 나타난다. 무덤을 찾았다가 천사를 만난 여인, 혹은 여인들의 반응 면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 밖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는(요한 20,11) 기록을 제쳐놓고 공관복음이 전하는 바에 따라서만 볼 때, 사뭇 다르다. 이를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각 복음서의 기록 연대와 배경, 그리고 복음사가들이 속한 공동체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렇지만 공관복음이 전하는 여인들의 반응을 수평적으로 놓고 심리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참 흥미롭다.
마르코가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마르 16,8) 하는 것을 마태오는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 28,8) 하며, 루카는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다. 그리고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루카 24,8-9) 한다. 마르코가 여인들의 상태를 ‘겁에 질려’, ‘두려워’, ‘달아났다’, ‘말을 하지 않아’라고 하는 것을 마태오는 ‘두려워’, ‘크게 기뻐하며’, ‘전하러 달려갔다’라고 하며, 루카는 “말씀을 기억”, “돌아와”, “모든 이에게 다 알렸다”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마르코는 여인들이 겁에 질려 말도 못 할 정도로 그저 혼비백산하였다는 것이고, 마태오는 두렵고 놀랐으나 너무 기쁜 나머지 어서 빨리 그 소식을 다른 이에게 전하려 했다는 것이며, 루카는 차분하게 과거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까지 상기하면서 상황파악이 끝나 부활에 관한 일체를 모든 이에게 알렸다 한다. 여인들의 반응은 우리 신앙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혼비백산할 때가 있고, 내가 무엇인가 알게 된 기쁨을 주체할 길 없어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이를 알려주고 싶어 내달릴 때가 있으며, 기억과 기록으로 소상하게 정리하여 후세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다 알리고자 할 때가 있다.(20210403)
‘여인들의 반응은 우리 신앙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