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론(2-13)

13

한 영혼이 신앙을 가지기 전에, 하느님의 매력이 그 영혼에게 끼쳐 주는 사랑의 여러 가지 첫 감정에 대하여

바람이 아포데스 새들 뜨도록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불어서 건드리는 것은 새 날개의 깃털이니, 그것은 이 깃털이 바람의 선동을 받기에 가장 가볍고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며, 이 선동에 의해서 날개는 최초의 움직임을 받게 된다. 그리고 깃털을 펼치면서 날개를 늘리게 되고, 따라서 바람을 일게 하며 마침내 새를 공중으로 뜨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중에 뜨게 된 새는 그 깃털과 날개로 계속하여 같은 작용을 하면, 바람은 새를 더욱 뜨게 하여 자꾸 공중으로 오르게 한다. 그리고 일단 떠서 날기 시작한 후에는 처음보다 행동이 쉬어진다.

이와같이 테오티모여, 거룩한 바람과도 같은 영감이 우리를 거룩한 사랑의 공기 속으로 불어 올릴 때, 제일 먼저 건드리게 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다. 그리고 천상적 환락의 감정으로 의지를 움직이며, 의지가 선을 위하여 지니고 있는 자연 본성의 경향을 확장시키고 펼쳐 놓게 함으로써 이 본성적 경향이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는 거룩한 경향이 되게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이미 내가 말한 바 있듯이, 비록 우리 안에서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힘이나 노력 없이 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하느님의 호의는 이러한 형식으로 우리에게 먼저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의지가 이처럼 거룩한 건드림을 받고 경향성의 날개가 움직임을 느껴서 깃을 놀리게 되고 흔들게 되면, 이 천상적 바람과 영향에 의하여 거기에는 적어도 약간의 동의가 있게 된다.

아, 테오티모여!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우리를 사로잡은 이 고마운 영감은 제 작용을 우리의 동의와 합치시키고, 우리의 연약한 동작에 제 힘찬 운동으로 생기를 넣어주며, 제 작용의 능력으로 우리의 미약한 협력을 살게 하며, 우리의 의지 행위의 협조와 품행까지 효기를 띠게 하며, 사랑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며, 우리가 개과천선하는데 절실히 요구되는 가장 거룩한 신앙의 행위에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게 된다.

참되신 하느님! 오, 테오티모여,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당신의 광명과 생활한 뜨거움의 빛살과 열감熱感을 쏟아부어 주시는 이 은밀한 방법을 숙고해 보는 것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이냐? 오, 예수여, 천상적인 이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기쁨이옵니까! 이 사랑은 만덕의 태양이오며, 작은 것으로서 작은 것에 의한 진전이오니, 이러한 진전은 비감각적으로 감각하게 되며, 또 이러한 사랑의 빛은 영혼을 비추며, 제 존재의 광채로써 휩쌀 때까지는 멈추는 일이 없고, 마침내 사랑의 한낮이 지닌 완전한 아름다움을 준다.

오! 이 얼마나 상쾌하고 아름답고 감미롭고 마음에 드는 새벽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벽이란 아직 대낮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구태여 낮이나, 혹은 날이라 부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시작하는 낮이며, 낮의 떠오름이며, 낮이라기보다는 낮의 여명, 즉 낮의 유아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성화를 위해 요구되는 신앙 행위를 선행하는 사랑의 이러한 충동은 의심 없이, 본연의 의미로 본 사랑은 아니며, 나만 시작하는 가운데 있는 불완전한 사랑일 따름이다. 이것은 천상적 태양의 따사로운 열에 파란 새싹을 싹트게 하는 신비로운 나무인 영혼의 고동이며, 봄철에 내놓는 싹이고, 또 달리 말해서 나무의 열매라기보다는 열매의 전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 파코미오St. Pachomius는 젊은 병사로서 하느님을 모르고 있을 때, 콘스탄씨우스Constantine의 군대에 들어가서 폭군 막센시우Maxentius를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대가 티베Thebes 지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작은 읍내에 주둔하게 되었을 때, 그와 더불어 온 부대가 다 식량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성실히 믿는 그 지방의 주민들은 군인들의 곤궁한 사정을 알게 되자 근면과 예모와 사랑을 다하여 성의껏 식량을 갖다주었으므로, 파코미오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도대체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나 착할 수가 있는가 싶어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나이신 하느님을 공경하고, 누구에게나 선을 베풀면 후에 하느님께로부터 갚음을 받게 됨을 확신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테오티모여, 유감스럽게도 이 불쌍한 파코미오는 비록 훌륭한 성품과 기질을 갖고도, 아직도 불신앙 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라, 하느님은 그의 마음의 문 앞에 얼마나 갑자기 나타나셨으며, 더욱이 저 성실한 신자들의 착한 모범을 통하여, 아주 감미로운 목소리로 그를 부르시고, 깨우시고, 당신의 사랑이 지닌 활기찬 뜨거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하신 것을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우리 구세주의 사랑스러운 율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새로운 광명과 내적 위로로 아주 충만하여서 고요한 곳으로 물러가 얼마 동안 사색한 끝에 두 손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깊은 탄식으로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 하느님이시여, 만일 당신께서 나의 낮고 천함을 굽어보시고, 나로 하여금 당신의 신성을 알게 하신다면, 나는 내 남은 생애를 통해서, 당신을 섬기고 당신의 계명에 순종한 것을 약속하옵니다!」 이러한 기도와 언약은 뒤따라 참된 선과 신심에 대한 사랑은 그 안에 너무나 치성하게 증가되었으므로 그는 수천 가지의 모든 덕행을 모조리 실천에 옮기었다.

나는 이 사실에서 밤꾀꼬리(nightingale)의 경우를 생각해보게 된다. 새벽 하늘에 먼동이 틀 무렵이 되면, 밤꾀꼬리는 벌써 잠에서 깨어 몸을 흔들고 그 작은 수풀 속의 나뭇가지에서 날개깃을 쭉 펴고 기지개를 한 후 가지에서 가지로 조금씩 날면서 그 아름다운 숲속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복자 파코미오를 갑자기 일깨워 준 저 애덕에 찬 그리스도인들의 표양이 어떠하였는지 잘 주시하였을 것이다. 참으로 이 놀라운 찬탄의 사실은 하느님께서 그를 어루만지기 시작하자마자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이는 마치 태양이 그 밝은 빛으로 지구를 비추면서 만물을 채우고 소생시키듯, 하느님께서 크나큰 영신적 기쁨으로 파코미오를 충만케 하신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마침내 파코미오는 분심 속에서 자신을 일으켜 만사를 제쳐 놓고, 보다 더 긴장된 정신에다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이 받은 은총에 의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것에 자신을 집중시키게 된 것이다. 그다음 그는 자신의 마음과 손을 뻗어 하늘을 향하고, 그 영감이 이끄는 데로, 즉 애정의 날개를 펴서 자신에 대한 불신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사이를 날기 시작하면서 회심의 노래를, 즉, 겸손되이 사랑에 찬 하늘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게 되어 우선 자신이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이신 하느님을 알게 되었음을 증거한 것이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진정으로 섬겨야 할 분이 바로 그분이심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어, 그는 좀 더 완전한 지식, 곧 하느님을 보다 더 완전히 앎으로써 하느님의 엄위를 보다 더 완전히 섬길 수 있게 되기를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테오티모여, 하느님께서 동의하는 인간 마음속에서, 마치 야곱의 사다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게 하듯이 당신을 따르도록 이끄시며, 당신 영감의 은총으로 조금씩 힘을 돋우어 얼마나 부드럽게 감동시키시는지 잘 살펴보라. 그러나 하느님의 이끄심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첫째의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노력 없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일깨워 주시며, 우리에게 먼저 오심이니, 모든 다른 것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우리 안에서 되는 것이긴 하나, 우리의 행동, 즉 노력이 없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정배는 말한다. “나를 당신에게 끌어 주셔요, 우리 달려가요(그러면 우리는 그대의 방향芳香을 맡으며 그대에게 달려가리라).”(아가 1,3)

이것은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먼저 시작해 주십시오, 나를 내 자신이 일깨울 수는 없습니다. 당신께서 나를 감동시키시지 않으시면, 내 스스로가 나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당신께서 나에게 충동을 주시기만 하면 오, 내 마음의 애인이여, 나는 당신께로 줄달음쳐 우리는 함께 손잡고 앞으로만 끝없이 달려 가리이다. 이렇게 당신의 이끄심에 동의하면서 당신의 길을 따라 당신을 쫓으리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마치 당신이 나를 강요당한 노예나 생명 없는 마차를 이끄는 것처럼 하신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말게 하소서. 정말 당신은 당신이 바르신 향액의 향기로 나를 이끄시나이다. 내가 당신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끌어 주기 때문이 아니라, 호리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끄심은 힘차고 굳세어도 난폭하지는 않으시니, 당신의 그 이끄시는 힘이 감미로움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향기는 감미로움 이외에는 사람들을 이끄는 별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것이 감미롭고도 즐겁지 않다면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을 이끌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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