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누나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 한 마리가 침실 바닥에 나타났다. 어릴 적부터 그 벌레는 죽이면 안 된다는 막연한 금기가 내 안에 있었다. 왠지 그걸 보면 머지않아 돈이 들어올 것만 같은, 근거 없는 기대도 함께 따라붙곤 했다. 예전에는 따뜻한 부잣집에서나 자주 보이던 벌레라 하여, 죽이면 돈복이 나간다는 속설이 생겼다던가.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에야 나타날 법도 했다. 딱히 돈이 생길 일은 없어 보였지만, 어디 숨어들어 살라고 그냥 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자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서 죽어 있었다. 빗자루 대신 부직포 밀대로 바닥을 밀다가 한쪽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자꾸 눈길이 갔다. 조금씩, 조금씩 형체가 오그라들더니, 이내 먼지와 구별할 수 없게 스러져 갔다. 처음엔 분명 살아 움직이던 것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먼지에서 왔다가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일.
옛 중국에서는 땅 위의 생물을 다섯 가지 벌레로 나누었다고 했다. 털이 있는 모충毛蟲, 깃이 있는 우충羽蟲, 딱지가 있는 개충介蟲(=갑충甲蟲), 비늘이 있는 인충鱗蟲, 그리고 맨몸을 드러낸 나충裸蟲. 사람 또한 그 나충에 속한다고 하니, 인간 역시 결국 벌레인 셈이다. 벌레가 사그라지듯, 마른 잎이 색을 바꾸며 바스라지듯, 그렇게 형체를 잃어가는 과정 – 그것이 삶일 것이다.
여섯 남매 가운데 맏이인 아흔둘 누나를 만났다. 지팡이에 의지한 그 손을 붙잡고 이백 미터 남짓을 함께 걸었다. 살이라곤 거의 남지 않은, 앙상하게 마른 몸이었다. 그러나 정신만은 또렷하다 못해 오히려 빛이 났다. 그 총명함이야말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구순에 만들었던 가족 화보집의 첫 장에 끼워 넣으라며 손주를 시켜 제작한 종이 두 장을 건넸다. 한 장에는 평생 외워 형제들에게 수없이 들려주었던 ‘나의 기도’가, 다른 한 장에는 늘 암송해 주던 이해인 수녀의 「보름달에게」가 적혀 있었다.
누나의 기도는 이렇다.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모든 것에 겸손과 온유함으로 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나의 주님!! 나의 어머니, 어머니시여!! 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화해로 이끌어 주소서. 날마다 외우는 저의 기도가 풋풋한 잡초의 향기로라도 멀리 멀~리 전해졌으면 … 우리는 하나인 우리입니다. 같은 부모, 같은 아들딸, 같은 손자손녀 하나의 성가정 안에 한 가족임을 … 감사합니다. 수연秀涓 김일순」
누나는 ‘빼어날 수(秀)’에 ‘개울 연(涓)’을 쓰는 수연. 이름값 그대로이지 싶다.
전세방인 누나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나가 쥐여주는 용돈을 받아 지갑 속에 넣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 어느 설날에 주셨던 만 원짜리 두 장을 오래 간직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지갑 뒤편에는, 또 다른 설날에 누나가 건네준 복돈 육만 천 원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이상하게도 어떤 것들은 그렇게 남는다.



송정연
뵌 적은 없지만 왠지 누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부모님이 없는 자리를 메꾸어 줄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