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다(아쿠오, ἀκούω)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이사야 6,9-10을 인용하시며 그 뜻을 설명해 주신다.(마태 13,10-17 참조) 이 대목에서는 ‘듣다(ἀκούω)’라는 동사가 여러 번 반복된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들음’을 묵상하기에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들음’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행위가 아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들을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들으려는 마음이 없어서 듣지 못한다. 곧 완고한 마음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태를 꾸짖으신다.

참된 들음은 들은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결국 삶의 변화를 도모한다. 들음은 은총에 응답하는 인간의 태도이다.

복음서들은 일관되게 이러한 ‘들음’을 제자도의 핵심으로 강조한다.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자, 들어보아라.”(마르 4,3)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라는 말씀으로 마치신다. 이어서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마르 4,23), “너희는 새겨들어라.”(마르 4,24) 하신다. 여기서 ‘들음’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결단과 응답을 요구하는 태도이다.

루카복음에서는 들음이 더욱 깊어져 말씀의 간직과 인내로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루카 8,15)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들음의 모범은 특별히 루카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드러난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9) 그리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한다. 엘리사벳은 이를 두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고 칭송한다.

예수님의 탄생 후에 마리아는 목자들의 말을 듣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때에도 아기에 대한 말을 듣고 성모님은 이를 깊이 간직한다.(루카 2,33 참조) 예수님께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라고 하실 때, 이는 혈연을 넘어서는 말씀인 동시에, 평생 말씀을 듣고 간직하며 살아가신 당신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암시이기도 하다. 루카복음에서 ‘들음’은 결국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삶, 곧 성모 마리아의 삶으로 드러난다.

요한복음에서 ‘들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곧 믿음과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5,24)라고 하신다. 또 “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요한 8,47)고 하시며, 들음과 존재의 근원을 연결하신다.

선한 목자의 비유에서는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3)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10,27-28)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 ‘들음’은 곧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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