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론(2-2)

2

하느님은 당신의 고유한 천주성인 단 하나의 행위만을 지니신다

우리는 여러 가지 능력과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매우 다양한 갖가지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무수한 일을 하게 된다. 즉, 다양한 능력들이란 실제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동작, 양육, 깨달음, 원욕, 말투, 걸음걸이, 소리내기, 노래하기, 요리하기, 춤추기, 수영하기 등으로서 대단히 많고 상이한 행동과 작용과 일은 모두 이러한 능력과 습성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렇지 않으시니, 하느님께는 단 하나의 지극히 단순하면서 무한한 완전성이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완전성에는 오로지 가장 유일무이하고 지극히 순수한 행동이 있을 따름이다.

좀 더 거룩하고 슬기롭게 말해 본다면, 하느님은 지극히 높으시고, 유일하시고, 유일 고유하게 총체적인 완전성이시며, 이러한 완전성은, 아주 순수하게 유일하므로 그러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은 곧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 자체가 되기 때문에, 항상 영구적이고 영원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비천하고 가련한 피조물인 우리는 하느님이 매일 여러 가지 행동을 하시는 듯이 말하기 일쑤인데, 그와 반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테오티모여, 우리는 나약하기 때문에 빤히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대로 못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은 우리의 지성을 따를 뿐이며, 지성은 우리에게 있는 사물의 통상 관례적인 질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 본성적인 사물에 있어서는 보통으로 작용의 다양성을 따라서 행동의 다양성이 있게 된다.

그래서 갖가지 상이한 많은 일을 보면 동시에 다양하게 생산되는 바가 있다고 보게 되며 하느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행동의 이 무수한 다수성은, 우선 그러한 다양성이, 우리가 보고 있는 상이한 결과와 같이 많은 수의 행동에 의해서 나온다는 사실로 보이며, 우리는 똑같은 방법으로 이러한 행동이나 일에 대하여 말하게 되고 또 좀 더 쉽게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는 우리의 평범한 실천과 관습에 따라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로 우리는 이 침범된 진리 속에서, 비록 하느님 안에는 행동의 다수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은 너무나 완전하여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결과를 내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온갖 행동의 능력과 효능이 아주 탁월하게 내포되어 있어서 그러한 행동은 우리가 보는바, 모든 상이한 효과를 생산해 내기에 요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느님은 오직 한 말씀만 하셨으며, 그 한 말씀을 따라 한순간에 모든 것이 만들어진 것이니, 해와 달과 무수한 별과 그 상이한 빛과 운동의 작용들도 그 한 말씀 안에서 다 된 것이다. 그가 말씀하시며 그대로 되었을 뿐이었다.(참조. 시편 148,5) 하느님의 단 한마디 말씀은 날짐승들로서 공중을 채우셨으며, 물고기로 바다를 채우셨으며, 우리가 보는 온갖 식물과 동물들 이 땅에서 솟아나게 하셨다. 비록 성경의 역사가는 우리 지성의 이해 방법에 적응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그 전능하신 말씀, “될지어다!”를 자주 반복하신 것처럼 말하고 있으며 세상 창조의 날짜를 따라 창조사업이 진전된 듯 말하지만(참조. 창세 1,3-31), 본래의 뜻대로 말해 본다면, 사실상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유일한 단 한마디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것을 숨결 또 하느님 입술의 호흡이라 하였다.(참조. 시편 33,6)

이것은 곧 그의 무한하신 의지의 단일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며, 이 말씀은 다양한 갖가지 피조물들 위에 그 능력을 세차게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창조력을 지닌 말씀의 결과가 굉장히 다양하고 무수하며 상이한 것을 보고 마치 그 말씀도 다양하고 상이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거듭 말하겠는데 사실상 지극히 유일하고 단일한 하나의 말씀일 따름이다. 그리하여 성 크리소스토모St. Chrysostom는 이르기를(성 크리소스토모의 성 요한에 대한 저술, 제5장), “우주 창조에 대하여 모이세는 많은 말로 묘사하였으나, 영광스러운 성 요한은 오직 한 말씀으로 이를 요약하여 모든 것은 “한 말씀”으로써,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이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라고 하였다.(참조. 요한 1,3) 그러므로 테오티모여, 이 한 말씀이 비록 지극히 단순하고 유일한 것이었지만 온갖 만물을 다 만들어 내신 것이다. 또 그 말씀은 비록 불변적인 말씀이었지만 온갖 변화하는 좋은 것을 다 만드셨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그 한 말씀은 그의 영원성 안에 영구히 계신 것이었는데도 모든 만물에 연속과 변천과 질서와 공간과 시간을 이바지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자, 그러면, 주님의 탄생을 그리는 어떤 화가를 잠깐 상상해 보자.(사실 나는 이 거룩한 신비에 바쳐진 기간-성탄 8부-에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의심 없이 그 화가는 수천 번씩이나 거듭 붓을 대어가며 몇 날이나 몇 주일뿐 아니라 몇 달이라도 걸려서 자기가 그림 안에서 드러내고 싶은 여러 인물과 여러 가지 사물들을 화폭에 옮기려고 힘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본의 인쇄공을 본다면 그들은 위의 성탄 그림이 조판 완료된 동판 위에다가 종이를 얹고 인쇄기를 간단히 돌리는 행동밖에 하지 않지만, 이 아주 단순한 행동으로써, 테오티모여, 즉각 아주 아름다운 상본이 인쇄되어 나온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그대로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인쇄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 인쇄공은 오로지 아주 간단한 한 가지 동작을 할 뿐이지만 매번, 한 폭의 그림을 인쇄해 내게 되는데, 거기에는 많은 인물과 여러 가지 사물과 특히 상이하게 구별되는 각가지 사물들이 제 자리에서 아주 질서정연하게 거리 간격이 맞도록 또 제 나름의 몫을 다 하도록 되어 나온다. 그런데 이 인쇄의 비밀스러운 기술을 모르는 이가 이 사실을 본다면, 즉 한 가지 행동에서 이렇듯이 복잡한 그림을 단번에 박아내는 것을 본다면 매우 놀랄 것이다. 테오티모여, 대자연이란 마치 화가와 비슷하여도, 모든 대자연의 작품들의 상이성을 따라 대자연의 모든 작용을 증가시키고 다양화시키고 있으며, 위대한 결과를 내기까지는 아주 오랜 기간이 요구되기도 한다.(큰 나무의 성장이나 산천의 변화는 일순간에 안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쇄공과도 같이, 과거 현재 미래에 있었고, 있고, 있을 피조물들의 모든 다양성에 존재를 부여하시는데, 당신 전능하신 의지의 단일하고 유일한 힘으로써 하실 뿐이다. 마치 잘 조판된 동판에서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데아(이데아-Idea Dei, 이것은 플라톤의 사상에서부터 성 아우구스티노가 수입한 것으로서, 현세의 삼라만상은 다 하느님 안에 있는 그 본보기의 원형-exemplars-을 따라 되었다는 견해)에서부터 또 이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사물들을 꺼내놓으셨으니, 이 모든 인人, 사事, 물物은 서로가 계절을 따라, 시대에 따라, 시간을 따라 연속되게 마련이며, 제각기 제 본연의 처지에서 질서를 유지하며 있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행동의 이 최고 단일성은 혼동과 무질서에는 상반되지만, 차별과 다양성에는 상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차별과 변화를 뚜렷한 목적 아래 이용하시어 아름답게 꾸미시기를 모든 상이함과 다양성으로 균형 잡게 하시고 그 균형으로 질서를, 또한 질서로써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온갖 피조물을 내포하는 세계의 일체성을 만드셨다. 이 모든 피조물을 일컬어 우주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 다양성이 단일성에로 귀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우주(universe)라는 말은 단일(uni-)하고 다양(diverus)하다는 뜻이니, 바꾸어 보면 하나에 여러 가지가 있고, 여러 가지가 하나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지극히 드높은 저 하느님의 단일성은 모든 것을 다양화시키며, 또 하느님의 변함없는 영원성은 만물 안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상이성相異性과 다양성 위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이 단일성의 완전하심은 창조된 완전성을 그 여러 존재 사물들에게 끼쳐 주어 모든 다양성을 갖추게끔 하시며, 그러한 삼라만상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성경은 하느님이 태초에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이야기하여 주고 있다.

즉,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창세 1,14) 하였다. 우리는 이 날을 통해 세상 마칠 때까지 계속될 시간과 계절의 영구한 윤회와 연속을 보게 된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라는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엄위하고 유일하고 영원한 뜻이 세세대대로, 또 전에 있었고, 지금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모든 존재 자체의 능력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장 단일하고 가장 단순하고 가장 영원무궁한 하느님의 유일한 행동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전혀 존재치 아니하니, 이 하느님의 행위에 존경과 영광이 길이 있어지이다. 아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