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부르심

(*이미지-엔조 비앙키 블로그)

쓸어야 할 은행잎이 많다. 숲이나 호숫가의 낙엽은 쓸 필요 없이 그대로 두어야 멋이지만, 복잡다단한 인간사 안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멋이기는커녕 자꾸 쓸어야 하고 쓸리는 천덕꾸러기들이다. 쓸어야 할 낙엽처럼 부르심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성경에는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두 번 거듭 부르시는 특이한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전해지는 이야기의 맥락에서 부름의 횟수가 관건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두 번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반복 속에 담긴 마음과 의미를 읽어야 한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를 만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모세야, 모세야!”(탈출 3,4) 하고 두 번 부르시며 모세에게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요청하신다. 아브라함이 마지막 시험을 치를 때도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던 부르심을 받고, 모리야 산정에서 눈물을 삼키며 이사악을 묶어 칼로 내려치려 할 때,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시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창세 22,11) 두 번 부르시며 이사악을 살려내신다.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린 야곱에게 두려워 말고 이집트로 내려가라 하실 때도 “야곱아, 야곱아”(창세 46,2)를 두 번 부르시며 “나도 너와 함께 가겠다” 하셨고, 스승 엘리의 시대를 마감하고, 마지막 판관 사무엘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왕정을 준비하실 때도 그랬다. 하느님께서는 소년 사무엘을 “사무엘아, 사무엘아!”(1사무 3,10) 하고 두 번 불러 부르심을 시작하게 하셨다. 제자들이 겪을 고난과 시련을 안타깝게 내다보시며 제자들의 맏형 격인 시몬 베드로에게도 “시몬아, 시몬아” 하시며 두 번 주님께서 부르셨으며(참조. 루카 22,31), 바오로를 말에서 떨어트려 뒹굴게 하시며 회심으로 이끄실 때도 “사울아, 사울아”(사도 9,4) 하고 두 번 부르셨다.

마르타의 집에서 식사 초대를 받으셨던 자리에서 예수님을 시중드느라 분주하던 마르타가 예수님께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을 때도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루카 10,41) 하고 마르타를 두 번 불러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앞날을 아파하시며 한탄하실 때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마태 23,37 루카 13,34)하고 두 번 부르신다.

이처럼 두 번 부르심은 인간에게 다가오시고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느님의 다정함이요 특별함이다. 중요한 순간이며 깊은 사랑이다. 격려이면서도 때로는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이다. 하느님의 두 번 부르심은 하느님께는 사랑이고, 인간 편에서는 눈물이요 결단이며,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고 은총이다.

어떤 의미에서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도 하느님께서 두 번 부르시는 부르심을 산다. 고귀한 소명을 시작하면서 사울처럼 두 번 불려 나뒹굴어 인생을 바꾸고, 하느님의 거룩한 땅에 들어서기 위해 모세처럼 두 번 부르심을 받는다. 눈물을 삼키면서도 산에 올라 가장 마음 아픈 결정적 봉헌을 하라고 아브라함처럼 두 번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들의 역할과 이름을 기꺼이 지우더라도 하느님의 이름만 남도록 끝까지 성실하게 소임을 다하기 위해 소년 사무엘처럼 두 번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봉헌생활을 하면서도 쓸데없는 세상 걱정이나 먹고 사는 일에 집착하려는 유혹에 빠질 때도 하느님께서는 두 번 불러 그러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인생으로 한 번 부르셨기에 세상을 만났고, 교회로 또 한 번 부르셨기에 하느님의 백성을 만났던 사람들이다.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고, 사명으로 또 한 번 부르심을 받는다. 백성을 구하고, 그러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깨끗이 지워내고, “어린양의 생명의 책”(필리 4,3 묵시 3,5;13,8;17,8;20,12.15;21,27)에만 그 이름이 남기를 갈망하는 이들이다.(20160326)

5 thoughts on “두 번 부르심

  1. 두 번의 부르심! 그 고귀한 부르심에 어떤 응답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 돌아보게 되는 신부님의 초대에 감사합니다.

  2. 하느님의 두 번 부르심. 저희에게 사명으로 다가오는 그 부르심에 마음을 비우며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3. 저도 두 번의
    부르심을 듣고 싶어요.
    힘들고 어려울 때.
    그럼 제가 기운 차릴텐데요.

    두 번의 다양한 부르심의 가르침
    어떤 마음으로
    절 보실지.

    부끄럽지 않게.
    부끄러워도

    그냥 제 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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