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푸생의 “가을”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1594~1665년)은 17세기 프랑스 최대의 화가이며 프랑스 근대 회화의 시조라고 불린다. 그는 생애 말년인 1660년~1664년 사이에 구약성경의 일화들을 주제로 4계절 연작을 그린다. 푸생은 예순다섯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면서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손 떨림과 함께 정교한 붓놀림이 어려운 상황을 무릅쓰고 은둔 생활을 하다시피 하는 중에 자기 인생을 4계절로 회고하듯 그렸다. 그는 구약성경의 일화들을 4계절의 주제로 선택했다. 봄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창세기 2-3장), 여름은 보아즈와 보아즈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의 만남(룻기 2장), 가을은 약속의 땅을 정찰하고 난 뒤 그곳의 포도송이를 들고 돌아오는 이들(민수기 13장), 겨울은 노아와 홍수(창세 7-8장)를 각각 주제로 삼았다.

니콜라 푸생은 4계절을 다 그리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곧 생을 마감하고 만다. 시기적으로 보아서는 분명 자기 인생의 겨울에서 4부작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늘 아직 내게는 시간이 좀 더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이 인간이어서 아무래도 아직은 자기 인생이 가을쯤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림 속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죽음의 예감을 담고 있었다. 그림 4점은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니콜라 푸생의 “가을”은 무엇보다도 수확의 계절, 열매의 계절, 풍요의 계절, 한 해의 후반부에 해당하면서 1년이 저물어가는 분기점의 계절이다. 그림은 갈색 계열의 무거운 가을 색이 밑부분에 깔리고 높고 푸른 하늘이 위에 있으며 가시거리가 맑아 멀리 있는 산의 꼭대기가 꼭짓점처럼 정 중앙에 자리하면서 안정감이 있는 삼각형의 구도를 이룬다.

니콜라 푸생의 “가을”은 약속의 땅에 다다른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이다. 모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르러 그 땅으로 열두 지파의 우두머리로 구성된 정찰대를 보낸다. 그중 에프라임 지파의 대표인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는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때는 첫 포도가 익는 철이었다. 정찰대는 포도송이 하나가 달린 가지를 잘라,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둘러메고, 석류와 무화과도 따서 챙겼다. 그렇게 그들은 40일 만에 정찰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확인하였던 정찰대는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라는 사실도 보고한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와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하며 자포자기하는 이들로 나뉘며 소동이 인다. 대다수 백성은 여기까지 왔지만 되지도 않을 일을 위해 뭐 하러 여기까지 와야만 했었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한탄한다.

마침내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나서서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저 땅은 정말 무척이나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주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저 땅으로 데려가셔서 그곳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저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제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을 덮어 주던 그늘은 이미 걷혀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민수 14,7-9)라고 말한다.

푸생의 ‘가을’, <약속의 땅에서 포도와 함께 돌아온 정찰대(영어: The Spies with the Grapes of the Promised Land)>라는 작품에는 화폭 중앙 아래에 나무에 꿰어 두 사람이 어깨에 멘 묵직한 큰 포도송이가 단연 돋보인다. 뒤에 가는 사람은 한 손에 커다란 석류 두 개도 들었다. 그렇게 큰 포도송이가 있을까 싶도록 압도적인 포도송이이다. 인간이 아무리 무엇인가를 ‘생산’한다고 해도 생산은 ‘열매’와 다르다. 포도송이는 자연과 하느님의 섭리가 맺게 하시는 열매이다. 상상할 수 없도록 큰 포도송이는 인간에게 그저 놀라움이다. 아무리 힘센 민족이고 거인이라도 그들의 힘으로 그런 포도송이를 열매 맺게 하지는 못한다. 구약의 포도는 성경의 언어로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피에 연결된다. 포도로 빚은 포도주의 잔은 그리스도 고난의 잔이자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사랑의 잔이다. 커다란 포도송이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약속 앞에 선 인간의 망설임, 두려움이 더 크게 담겼다. 약속의 땅 앞에서 도무지 주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이 담겼다.

두 사람 뒤에는 사다리를 받치고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는 이가 눈에 띈다. 열매를 거두는 가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포도송이에서 사다리가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포도송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다리로 연결된다. 차림새로 보아 여인인듯한 그는 금세 생명 나무에서 열매를 따던 하와를 떠올리게 한다. 우측에 바구니를 이고 가는 여인도 탐스러운 과일을 담고 치마를 추스르며 길을 간다. 우리는 교회라는 여인(교회는 여성명사)의 인도를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오른다. 구약의 야곱은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 28,12)라는 장면을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만나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하고 말씀하셨다.

오른쪽 위의 거창한 성벽과 성채는 빛바랜 색조 아래 정찰대가 놀랐던 우람함에서 폐허로 허물어져 가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간이 세웠다 한들 무엇이 그리 거창할 것인가?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는 부질없는 돌들의 잔해일 뿐이다. 여호수아의 말대로 주님 마음에만 든다면 아무리 단단하게 지은 성곽이라 하더라도 한순간에 걷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림의 주제는 약속의 땅을 몰래 훔쳐보고 돌아오는 정찰대의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긴장이지만, 그러한 긴박한 주제와 달리 삼각형 구도, 원근법, 대비되는 색채, 거침과 부드러움의 질감, 대칭과 균형을 꼼꼼하게 새겨넣으려 했던 푸생의 가을에는 평온한 풍경화인 듯 바위와 산, 나무와 하늘, 구름과 시냇물, 노는 듯 고기를 잡는 듯 물가에 있는 반 벗은 이의 일상까지 담겼다. 니콜라 푸생은 자기에게 주어진 생의 말년에 ‘가을’을 그리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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