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Communication technology for internet business. Global world network and telecommunication on earth cryptocurrency and blockchain and IoT. Elements of this image furnished by NASA

유구한 가톨릭교회의 역사 안에는 다양한 성인이 있고, 각 성인의 삶에 비추어 관련 있는 인간사나 세상사를 위해 ‘수호성인’을 지정하여 성인들의 도우심과 전구傳求를 청하는 관습이 있다. 예를 들어 기적적으로 되찾은 ‘시편 주해서’ 때문에 분실물을 찾아주는 수호성인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1195~1231년)이고, 학업 성적 때문에 신학교 입학에 어려움을 겪었으므로 수험생들의 수호성인은 코페르티노의 성 요셉(1603~1663년)이며, TV가 없던 시절이지만 성인이 매우 아파 미사를 하러 가지 못했을 때 벽에 비친 환시를 보고 미사를 봉헌했다는 이유로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은 성녀 클라라(*1958년 비오 12세 지정)와 같은 예들이 있다.

지난 2025년 9월 7일 새로운 교황 레오 14세가 주관한 첫 시성식에서 성인품에 오르신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St. Carlo Acutis, 1991~2006년)은 새로운 천년 기가 시작하기 10년 전에 태어나 새천년을 맞으면서 15년 5개월을 살았던 성인이다. 그런 까닭에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 최초의 성인(the first millennial saint)’이라 불린다. 또한 성인은 성체의 기적을 정리한 웹사이트를 제작하고 이를 널리 알리면서 ‘하느님의 인플루언서(God’s Influencer)’라는 이름과 함께 ‘인터넷, 컴퓨터 프로그래머, 홍보 매체 종사자들의 주보 성인(the Patron of the Internet, Computer Programmers, and Social Communications Ministers)’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더 읽기: 카를로 아쿠티스 http://benjikim.com/?p=6161 / 청소년의 성덕聖德과 성화聖化의 가능성에 관하여 http://benjikim.com/?p=6036

*참고. ‘고대의 마지막 학자’로 칭송받으며 스페인 인문 대학이나 마드리드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까지 불렸던 성 이시도로(St. Isidore of Seville, 560?~636년) 주교 역시 그의 박학다식함으로 1990년대 후반에 이미 컴퓨터 사용자와 컴퓨터 기술자들의 수호성인이자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거론된 바 있다.(*많은 이가 1997년에 성 이시도로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교회의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공인된 분은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다.(※이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frmatthewlc.com/blog/2020/05/02/st-isidore-of-seville-is-not-the-patron-saint-of-the-internet/)

밀레니얼 세대의 최초 성인이고, 컴퓨터를 다루는 실력도 남달랐으며, 웹사이트를 제작하여 성체의 기적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인터넷의 주보 성인이라는 것은 마땅하고도 옳은 일이다. 그런데도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오늘날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주머니 속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였으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매체를 경험하지 못한 채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성인은 기계 기술 문명이 급격히 변하던 시기, 곧 새로운 천년의 전환기에 살았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보다 앞서 살았거나 뒤를 이어 사는 사람 중 노인으로 분류되는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은 정보나 사람에게 연결되는 기술이나 기계 장치들, 그리고 개념들을 학교에서나 선생님에게서 배우지 않았지만, 일상에서 그 변화를 체감하며 살았다.

인공지능(1956 *Dartmouth Conference에서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 처음 제안), 비디오게임(1958), 모뎀(1962 *벨 연구소에서 개발한 데이터폰dataphone이 1960년대 초반에 상용화)과 같은 초기 기술과 개념들이 특정 전문가나 오락의 영역에 한정되었지만, 이메일(1971), 골뱅이@(1971), 인터넷(1973 *ARPANET은 1969년 시작, 1973년에는 TCP/IP 프로토콜 연구가 본격화됨. ‘인터넷’이라는 개념의 태동) 등이 등장하며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연결 시대를 열었고, 월드와이드 웹(1989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WWW 개념 제안, 1991년에 최초 웹사이트 공개)의 탄생은 모두에게 정보의 바다를 열어주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검색엔진(1990 *최초의 검색엔진 ‘Archie’ 개발)은 방대한 정보를 정리해 주었고, 웹캠(1991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커피포트 감시용’ 웹캠 설치), 문자 메시지(1992 *세계 최초 SMS 전송: ‘Merry Christmas’)는 소통 방식을 다양화했다. 이 시기에 스마트폰(1992 *IBM Simon 출시, 1992 발표, 1994 시판)의 초기 모델도 등장했다. 전자상거래(1994 *넷스케이프 브라우저 시대와 함께 온라인 상거래 확산)는 소비 방식을, 블루투스(1994 *에릭슨이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 개발, 1999년에 공식적으로 ‘Bluetooth’ 명명)와 와이파이(1997 *IEEE 802.11 표준 확정)는 무선 연결의 자유를 선물해주었고, 소셜 미디어(1997 *최초의 소셜 네트워크 SixDegrees.com 개설)와 구글(1998 *구글 정식 설립), 블로그(1999)는 방대한 정보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주며 누구나 쉽게 자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문화까지 만들어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상은 웹 2.0이라는 기술과 함께 본격적인 소셜 시대에 진입하여 개인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위키백과(2001)는 집단 지성의 힘을 보여주었고, 페이스북(2004)과 유튜브(2005)는 소셜 네트워킹을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만들어 놓았으며, 아이폰(2007)과 전자책(2007), (2008 *애플 앱스토어 개설)의 시대는 모든 것을 손안에서 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클라우드 컴퓨팅(2006 *아마존 AWS-EC2, S3 시작)과 블록체인(2008 *비트코인 백서 발표)을 기반으로, 빅데이터사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고도화된 기술 속에서 오늘을 살며, 플랫폼, e-러닝, 원격근무 같은 개념이 일상화된 시대를 산다. 또한 기계학습인공지능이 결합한 컴퓨터의 시대를 산다. (※괄호 안의 숫자는 해당 사항 등장 연도)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인간의 삶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인간의 가치를 대체할 만큼 강력하고 힘이 있는 것처럼 등장한 오늘날의 인터넷 시대를 살지는 않았다. 성인은 사이버 폭력을 자행하는 힘 있고 강력한 인터넷, 의도적으로 중독을 유발하는 소셜 미디어 인터넷, 온라인 포르노와 도박이라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은 인터넷, 돈 벌기와 투자의 수단이 된 인터넷을 알지 않았고, 전쟁을 조종하고 무기와 공격 체계에 결합된 인터넷은 그가 경험하지 못한 현실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수호성인인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성덕聖德과 예언성豫言性은 기계 기술과 문화 문명의 ‘선한 사용(善用)’이라는 열쇳말에 닿아있다. 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는 우리가 인터넷의 선용善用과 남용濫用 사이에서 인터넷을 식별하고, 하느님의 의도에 맞게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그 인터넷에 우리가 ‘이용당할’ 것인지를 생각하라며 우리를 위해 전구傳求하고 계신다.

2 thoughts on “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1. 그가 청소년 성인이라 관심이 더 갑니다. SNS의 폭발적 발전, AI의 폭주 시대를 봤다면 그가 무엇이라 했을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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