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년~)는 <상상력 사전>이라는 일종의 자료 모음집에서 ‘숫자의 상징체계’를 설명하는데, 숫자 1부터 7까지만을 설명하고 8 이후를 설명하지 않는다.(참조. 상상력 사전, 열린책들, 2011년, 15-16쪽) 그렇지만 숫자 8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한 숫자임이 틀림없다. 해탈을 향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의 팔정도八正道가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수레바퀴의 모양도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진리의 여덟 갈래를 표시한다. 주역周易에서도 우주 만물의 근본 원리를 팔궤八卦라는 8가지 기호로 풀이하면서 자연계의 기본 요소와 세상의 조화를 나타낸다. 어디 그뿐이랴. 숫자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를 나타내는 수학기호 ‘∞’, 렘니스케이트(Lemniscate)가 된다.
가톨릭교회 역시 역사적으로 숫자를 사용하는 데 있어 매우 신중했다. 교회는 임의로 숫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특정한 성경의 사건과 연결된 숫자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성당에 있는 세례대나 세례대를 모신 경당은 대부분 팔각형이다. 세례당의 모형이나 원형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로마 라테라노 대성전의 세례 경당(5세기)도 팔각형이다. 가톨릭교회의 세례대나 세례당이 이렇게 8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전통적으로 구원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성경의 내용에서 온다.
세례대나 세례당이 8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창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의 제7일인 안식일 다음 날인 ‘여덟째 날(제8일, octavus dies)’에 부활하셨다.(참조. 마태 28,1 마르 16,1-2 루카 24,1 요한 20,1.19.26) 이로부터 8각 세례대는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 안으로 인도됨을 뜻하며, 장차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 묵시 21,1)에 최종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임을 예표한다. 바오로 신학에서도 세례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것”(2코린 5,17)이다.
둘째로, 유다인 아기들은 태어난 지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았고,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다.(참조. 창세 17,12 루카 1,59;2,21 사도 7,8 필리 3,5) 바오로 사도는 할례와 세례를 연관 지으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겉모양을 갖추었다고 유다인이 아니고, 살갗에 겉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으로 유다인인 사람이 참유다인이고,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할례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로마 2,28-29) 세례대가 8각인 까닭은 이러한 새로운 생명과 ‘마음에 받는 할례’를 나타내기 위함인 것이다.
셋째로, 숫자 8은 노아의 방주와 그 안에서 여덟 명이 물을 통해 구원받았음을 상기하도록 하면서 세례성사로 세례받은 이가 구원받았음을 상징한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1베드 3,20)라는 성경 구절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 두고 문자학적 정설이라기보다는, 사실로 단정할 수 없는 흥미로운 내용으로서 간혹 한자 ‘배 선船’이 舟(배 주)에 八(여덟 팔)과 口(입 구)가 결합한 형태로, ‘여덟(八) 식구(口)가 탄 배(舟)’라고 풀면서 글자의 구성이 노아의 방주에 탄 여덟 식구로부터 생겨났다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관련한 내용 중 하나를 Chan Kei Thong with Charelene L. Fu, <Finding God in Ancient China>, Zondervan.com, 2009년, 70쪽에서 볼 수 있다.(※더 읽기: 여드레https://benjikim.com/?p=2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