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년)은 방대했던 자신의 장서를 주변에 모두 나눠주고 「성경」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두 권만을 간직했다고 알려진다. 성경에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이야기가 담겼다면, 고백록에는 한 인생의 야망, 열정, 방황, 우정, 가족, 갈등, 욕망, 슬픔, 사랑, 회심, 지혜, 죽음…아름답고 심오한 문장들 속에 실로 모든 것이 담겼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치열한 삶의 요동이다.
고백록의 첫 장에서부터 「인간, 당신 창조계의 작은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을 찬미하며 즐기라고 일깨우시는 당신이시니,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 주님, 당신을 부름이 먼저인지 당신을 찬미함이 먼저인지, 또 당신을 아는 일이 먼저인지 당신을 부르는 일이 먼저인지 제가 알고 깨닫게 해 주십시오.(제1권 1.1)」라고 부르짖는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을 찾기까지 쉼 없이 안달하는 마음을 안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린 시절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이 전부인 양 인간적인 우애와 우정을 즐기며 살기도 했다: 「시간이란 쉬지 않으며 하릴없이 저희 감관을 거쳐서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다 기기묘묘한 작업을 해놓습니다. 날에 날을 이어 오고 가고 하였으며, 그렇게 오고 가고 하면서 또 색다른 희망 또 색다른 기억을 제게 심어주었습니다. 저의 그 고통이 단념하고 있던 옛날의 재미가 서서히 저를 메워갔습니다. 하지만 뒤따르는 것은, 같은 고통은 아니어도 여전히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었습니다. 제가 죽을 사람을 마치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사랑함으로써 저의 영혼을 모래밭에 쏟아버린 탓이 아니라면 어디서 그 고통이 그토록 쉽게 또 내면 깊숙이 사무쳤겠습니까?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의 위안이 저를 크게 북돋았고 소생시켰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저는 당신 대신 좋아하던 것을 계속 좋아했습니다. 거창한 설화說話와 장황한 거짓말 따위 말인데 그따위가 치정에 가깝게 치근대는 바람에 저희 지성은 귀를 후비면서도 마냥 타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 중의 누가 죽더라도 저 설화는 저한테서 죽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밖에도 각별히 마음을 사로잡은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함께 얘기 나누고 함께 웃기, 서로 사이좋게 비위 맞추기, 달콤한 얘기를 담은 책을 함께 읽기, 허튼 소리로 시시덕거리면서도 서로 체면을 살려 주기, 간혹 견해가 달라도 미워하지는 않기(사람이 자기 자신을 두고 하듯이 말입니다), 이견을 갖는 일이 좀처럼 드물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견이 하고많은 공감에 조미료가 되어 주는 일, 서로 간에 무엇을 가르쳐 주고 서로 배우기, 없으면 보고 싶어서 못 견디는 일, 돌아오면 얼싸안고 맞아들이기 등입니다. 이런 일로, 또 이런 유의 신호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 입을 거쳐서, 혀를 거쳐서, 눈을 통해서, 그밖에 사랑스러운 천 가지 동작을 통해서 마치 불씨처럼 마음들을 한데 불사르고 그것들을 다수에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제4권 8.13)」
그렇지만 세상 친구들의 위안은 제한적이고 결국엔 우리 곁을 떠나며 상실을 안겨준다. 인간과 하느님 간의 간극이 너무도 커서 하느님과의 우정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에 이미 간파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자비하신 섭리로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을 마치고 함께 지내던 제자들 곁을 떠나실 때가 되자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3-14) 하신 말씀을 알았다. 과연 하느님을 친구 삼는 것은 기나긴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측근이야(친구야) 내가 되기를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 된다네.(제8권 6.15)」라는 말도 섭리의 숨은 비밀로 들었고, 기억했다.
그런데도 늦깎이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사랑 앞에 자신을 내어 맡기기를 몹시 힘들어했다. 시간이 걸렸다. 주변의 유혹과 사악한 꼬임도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다가 죽어가는 자기의 죽음을 통곡할 줄 모르는 인간보다 가엾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당신을 떠나 사통私通하였는데 사통하는 저를 두고 사방에서 “잘했군, 잘했어!” 추켜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우애는 당신을 떠나는 사통인데도 그것을 두고 “잘했군, 잘했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사람이 못 되면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까닭이었습니다.(제1권 13.21)」라고 고백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서 이쪽과 저쪽을 살았다.
「내적 감각으로 제 감관들의 통합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러한 감관들 속에서 사소한 사물들에 관한 사소한 생각들을 갖고 나름대로 진리를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속기를 싫어했고, 기억력은 비상했고, 언변은 다듬어져 있었고, 우정에 끌렸고, 경이롭지 않을 만한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제가 저에게 이것들을 준 적이 없습니다. 좋은 것들이었고 이 모두가 저입니다. 따라서 저를 만드신 분도 좋은 분이시고, 그분이 곧 저의 선이시며, 그 모든 선을 두고 그분께 기뻐 환호합니다. 그 모두로 제가 곧 어린 저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아니라 그분의 피조물에게서, 저에게서 또 여타 사물에서 쾌락을, 숭고함을, 진리를 찾고 있었다는 그 점에서, 저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고통, 혼동, 오류로 제가 치달았던 것입니다.(제1권 20.31)」
혼외 자식 아데오다투스를 두었고, 그 아들의 어머니를 버렸으며, 약혼녀에게 불충했고, 육으로 낳는 아픔보다 영으로 아들을 낳느라 더욱 아파하며 밤낮이 없었던 어머니의 눈물을 보지 않았으며, 이유나 목적도 없이 그저 훔친다는 사실을 즐기느라 도둑질을 했고, 거룩한 성전의 담벼락 안에서조차 죄를 지었으며, 급기야는 모든 죄를 그대로 짊어지고 저승의 문턱까지 가는 체험을 하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었다.
「제가 죄인이 아니라고 여기는 그 점이 바로 불치의 죄였습니다. 당신께, 전능하신 하느님, 제가 당신께 제압당해 구원받기보다는, 당신께서 제 안에서 제압당해 저 스스로 멸망에 이르기를 더 좋아한 이 점이 가증스러운 사악함이었습니다.(제5권 10.18)」라고 말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내면의 지고선至高善과 그 밖의 것 사이에서 불치의 병을 앓았다.
그렇지만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절대 놓지 않으셨다. 「당신께서는 자비로이 노기를 보이시면서도 항상 곁에 계셨고 온갖 탈법한 저의 쾌락에다 쓰디쓴 거리낌을 뿌리시면서 제가 거리낌이 들지 않는 쾌락을 찾아 나서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혹시 그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면, 주님, 당신 말고 어디서 찾아냈겠습니까? 당신께서는 계명에다 고통을 덧칠해 놓으시고, 고쳐주려고 때리시고, 저희를 죽이심은 저희가 당신 없이 죽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제2권 2.4)」 한 그대로였다.
「주님, 어서 하십시오! 몰아세우십시오! 저희를 불러주십시오! 타오르게 만드시고 끌어당겨 주십시오! 달구어 주시고 애무해 주십시오!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치닫게 해 주십시오!(제8권 4.9)」라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을 흉내라도 내며 반복해야 한다.
*<고백록>의 인용문은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의 번역문을 따랐습니다. ※함께 읽기: 벤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 주교 학자 기념일(8월 28일) https://benjikim.com/?p=5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