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ὑπόκρισις, hypokrisis), ‘위선자’(ὑποκριτής, hypokritēs)‘라는 말은 마태오 복음에서 15회, 마르코 복음에서 2회, 루카 복음에서 3회, 바오로 서간에서 3회, 야고보 서간에서 1회 각각 등장한다.
위선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고대 희랍어로 ‘휘포크리시스(ὑπόκρισις, 영어 hypocrisy)’라고 한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들, 곧 위선자는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 영어로는 hypocrite)’이다. 이 말들은 단어 앞머리의 ‘휘포(~아래에, ~로서)’와 ‘크리시스(분리, 결정, 심판, 재판)’가 합쳐진 동사 ‘휘포크리노마이(ὑποκρίνομαι, 말을 가지고 설명하다, 대답하다, 대응하다, 무대에서 대꾸하다, ~인 척하다, 연극 무대에서 역할을 맡아 배우가 연기하다)’에서 유래한다. 휘포크리테스는 시인의 시들을 말로 해설하거나 설명해주는 사람들이었고, 나중에 연극에서 말과 행동으로 연기하는 이들, 곧 배우를 가리켰다. 개신교에서는 ‘외식外飾하는 자’로 번역한다.
성경의 언어에서 ‘위선’의 엄중함에 주목한 교부들은 다음과 같이 위선을 정의한다: ① 하느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감추고 교만을 경건으로 위장한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②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의 왜곡이다. in se incurvatus(하느님과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굽어 있는 상태)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③ 말, 생각, 행동이 따로따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의도 사이의 분열이다.(성 대 그레고리오)
참고로, 마태오 복음사가는 복음의 종반부인 23장에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혹독하게 꾸짖으시면서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들아!” 하고 일곱 번이나 거듭거듭 말씀하셨다고 기록해놓는다.(참조. 마태 23,13-33 *정확히 말하면, 일곱 번 중에서 “너희 위선자들아” 하고 직접 언급하신 것은 여섯 번이고, 세 번째에서는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