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말을 배울 때 어리석게도 세월이 가면 외국말이 저절로 들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렇듯이 봉헌생활을 할 때에도 세월이 가다 보면 성덕이 출중해지는 것으로 알았다.
형제들 간의 아픔들도 이렇게 성장한 성덕으로 서로서로 양보하게 되고 서로서로 이해하게 되고 서로서로 받아들이게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고 잘못된 명제였다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원뿔은 원을 밑면으로 삼고, 원 밖의 한 점과 원 주위의 무수한 점들을 이은 뿔 형태의 3차원 입체도형이다. 달리 말하면 한 점에서부터 수많은 점들이 각기 밑으로 뻗어 동그란 원이 된 것이 원뿔이다.
우리는 맨 밑바닥의 동그라미를 그리는 조그만 점들이다.
그 동그라미가 한 점이 되는 것은 서로의 양보와 겸손의 덕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다. 원을 이루는 점들이 양보와 겸손의 미덕으로 옆구리의 간격을 좁혀 하나가 되려고 들면 원이 찌그러지고 망가지고 만다.
원을 이루는 점들은 나름대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위로 올라가기를 꿈꾸어 저마다 위로 올라가다 보면 점점 서로 가까워지고 마침내 한 점에 이른다. 원이 하나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점들이 위로 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다소 떨어져 서먹해진 이들이라도 서로 위로 가기를 기도해 줄 수는 있다.
한 점이 되는 것, 또 애초에 우리가 한 점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각자의 내공과 덕성, 타협과 처세의 연마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위로 가는 움직임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처세로 위장한 형제애 사목상의 이유나 바쁨으로 회피한 형제애 거짓으로 조작한 형제애 안에서 나도 속고 너도 속는다. 그리고 결코 하나가 되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우리 공동체의 원형原形이 있다는 말씀은 바로 그 말이다. 자신을 성찰하여 정직하게 돌아보면서, 예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서, 사표師表로 주어진 분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그렇게 우리는 위로 간다. 점점 위로 가면서 너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느끼고 마침내 한 점이었음을 알고 한 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