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길

유다인의 역사 안에 많은 예언자가 있었으나 그 중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 사이에 활약한 예언자들로 이사야(기원전 745~695년 50년간 활동), 예레미야(기원전 627~586년 40년간 활동), 에제키엘(대략 기원전 593년~기원전 571년 활동, 560년경 사망)과 같은 예언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엇나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당신을 향한 믿음을 절대 잃어서는 안 되고, 그래야만 죽지 않고 산다고 말씀하신다.

거부할 수 없고 순탄치 않은 소명의 길이요 예언자의 길을 가면서 예언자들은 고집 센 인간들을 향하여 목이 터지라 외친다. 하다 하다못해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어떨 때 남들이 보기에 가히 기행奇行이요 미친 짓이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가시적인 몸짓을 통해서도 온몸으로 부르짖는다.

이사야 예언자는 “삼 년 동안 수치스러운 알몸과 맨발로 다녔다.”(이사 20,2-3)

에제키엘 예언자의 경우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행동을 몸으로 치러야만 했다. 그는 “왼쪽 옆구리로만 삼백구십일 동안 누웠다가, 오른쪽 옆구리로 사십 일 동안 누워있기도 했고”, “밧줄에 묶여 갇혀 있는 기한이 다 찰 때까지 옆구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리지 못한 채 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분으로 구운 빵을 먹으라는 말씀에 도저히 이를 먹을 수 없어 하느님께 사정하여 쇠똥으로 구운 역겨운 빵을 먹기도 하였으며”, 그것도 온갖 잡곡을 섞어 만든 맛없는 빵을 삼백구십일 동안 먹으면서도 그것을 저울로 달고 물도 양을 재어가며 시간을 정해 먹고 마셔야만 했다.”(에제 4,9-15) 그런가 하면, “자기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 저울로 달아 나누어, 성안에서 삼분의 일을 태우고, 삼분의 일은 성을 돌며 칼로 내려치며, 삼분의 일은 바람에 날려버리고, 조금은 옷자락에 묶어두었다가 얼마를 불 속에 던져 사르기도 했다.”(에제 5,1-4) “유배짐을 꾸려 대낮에 유배를 떠나듯이 떠나야 했고, 벽을 뚫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아야 했다.”(에제 12,1-7) “떨면서 빵을 먹고 불안과 걱정에 싸여 물을 마셔야 했으며”(에제 12,17-18), “눈의 즐거움(아내)을 잃은 뒤, 곡을 하지도 못하고, 머리에 쓰개를 쓰고 발에 신을 신으며, 먹지도 못하고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했다.”(에제 24,15-17.22-23)

‘눈물의 예언자’로 알려지는 예레미야 예언자는 “아마포 띠를 사서 유프라테스 강가 바위 틈새에 숨겼다가 다시 찾으려고 할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 띠를 다시 찾아야 했으며”(예레 13,1-11), “아내를 얻지 말고 아들딸도 얻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독신으로 살아야 했으며. 죽을 병에 걸려 죽어도 곡을 해주지도 묻어주지도 못할 이들, 땅 위의 거름이 되고 말 이들, 칼과 굶주림으로 죽어갈 이들, 하늘 새들과 땅 짐승들 밥이 될 이들, 곡하지도 못하고 조의를 표하지도 못할 이들, 묻히지도 못하고 곡해주는 이도 없을 이들, 상주를 애도하지도 못하고 음식을 나누지도 않을 이들, 위로의 술잔도 없을 이들, 잔칫집에서마저도 기쁜 목소리와 즐거운 목소리 신랑 신부의 목소리도 없을”(예레 16,1-9) 그런 암울한 전망 속에서 예언을 살았고, “옹기장이 집으로 가서는 단지와 질그릇을 깨뜨려야 했고”(예레 18,1-7;19,10-11), “끈과 나무로 멍에를 만들어 스스로 목에 져야 했으며, 그것들을 임금들과 사절단들 손에 들려 보내기도 해야만 했다.”(예레 27,2-3)

예언자들은 아무리 피하고 도망치고 싶어도 도저히 감당하지 않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말씀을 믿음이 없고 불의한 이들에게 전해야만 했고, 그들의 온갖 조롱과 욕설, 야유와 심지어 돌팔매질까지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해야만 했다.

이처럼 예언자의 길은 고향에서마저 배척받을 것을 각오하고 담대히 혼자서만 짊어져야 하는 소명이기에 외롭다.(참조. 마태 13,57) 예언자의 길은 인간의 말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해야 하므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고 때로 엉뚱하게까지 비친다. 예언자의 길은 총칼 들고 누군가와 싸워 쟁취해야 하는 사명이 아니라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으면서도 하느님의 힘만을 믿어 오롯이 비폭력으로만 가야 하기에 너무나 힘들다.(*이미지-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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