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람페두사라는 섬이 있다. 2023년 9월 17일의 한국일보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 ‘초비상’이 걸렸다.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입국하는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다. 이달 11~13일 유입된 난민만 약 8,500명으로, 섬 인구(약 6,000명)보다 많다. 람페두사섬은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14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아프리카발 난민에게 ‘유럽행 관문’으로 여겨져 왔지만, 올해 난민이 폭증했다.」라는 기사를 올렸다.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는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즉위하신 뒤 2013년 7월 8일 로마 밖으로 나가신 첫 방문지로도 유명하다. 그때 교황님께서는 새 삶을 꿈꾸며 람페두사 섬으로 향하던 수만 명의 아프리카 주민들이 낡은 배의 난파 등으로 사망한 현장을 찾아 아무 말 없이 십자성호를 긋고 하얀색과 노란색 꽃으로 장식된 추모 화환을 지중해에 던진 후 ‘배들의 공동묘지’라 불리는 해안 인근에서 조그만 보트 위에 제대를 마련하고 야외 미사를 주례했다. 난파선의 목재를 깎아 만든 목장을 손에 잡고 보라색 제의를 입은 교황의 나들이 첫 장면은 그러했다. 최근 2, 3일 사이에 8천 5백 명의 난민이 몰려든 람페두사에는 모로코의 지진이나 리비아의 대홍수와 같은 참사 후에 더 많은 난민이 몰려들 것이 예상된다. 람페두사 주민들은 현지 주민들보다도 더 많은 숫자의 난민들이 몰려드는 상황에서도 늘 그래왔듯이 섬의 빗장을 풀고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잠자리를 내준다.

16일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바닥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람페두사=로이터 연합뉴스

플라톤은 자기의 최종 작품이면서 완성하지 못했던 <법 Nomoi, Leges>이라는 책에서 「외국인 손님에 관한 우리의 의무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이는 우리의 가장 신성한 의무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자기 동료나 부모로부터 고립된 외국인이야말로 사실 인간과 신들을 위해 더 큰 사랑의 대상입니다. 이방인들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고 우리 생을 마감하도록 조심하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요!」라고 기록한다. 플라톤에게 진정한 타인이란 우리가 우리 집에 초대하기로 선발한 이들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난 사람들, 우리의 삶과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엮여 예기치 않게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들이다. 타인은 생각지도 못한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현존이다.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다른 민족이라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환영받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타인을 환대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인간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환대한다. 우리도 이 세상에 낯선 이로, 손님으로 온 존재라는 의식을 지니지 못하면 우리의 ‘환대’는 그저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의무 정도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환대가 윤리적으로 의미 있는 어떤 행위일 수는 있어도 피상적인 건너편의 일이 되고 말 것이며, 타인의 인간성을 수용함으로써 나의 인간성을 실현한다는 인간의 가장 깊은 소명에 응답하는 것은 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있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타인을 보살피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뭔가가 필요한 이들과 적당한 선에서 서로 타협하자는 식의 비뚤어진 무관심이나 거부, 반감이 아닌 공감과 자비로 타인을 대할 수 있게 해준다. 가난한 사람, 머물 곳이 없는 사람, 떠돌이, 이방인, 부랑인들…그들이 느끼는 박탈감, 거부감, 버림받음, 무관심, 낯섦의 무게로 모욕당하는 인간성, 내가 그들의 굴욕과 수치심, 모욕을 내 것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때 그들은 비로소 환대받는다고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쓸데없는 비겁함이나 죄책감, 위선적인 선행을 가장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나름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6일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의 항구 인근에 이민자를 태운 보트가 보인다. 람페두사=AP 연합뉴스

‘환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체험하는가 하는 정도가 그 사회나 문화·문명의 수준이다. 환대는 적대감을 느끼게 마련인 잠재적인 적을 적대감에서 벗어나 손님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우리는 문명의 수준을 문명과 기술의 발전이 아닌 인간성과 인간을 대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환대를 실천하면 생각지 못한 선물을 얻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집과 마음에 타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때 그 타인이 우리의 공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공간과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며, 언젠가 그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될 때 공허함이 아니라,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남겨줄 것임을 우리는 안다.( *참조한 글, https://www.ilblogdienzobianchi.it/blog-detail/post/209744/praticare-lospitalit%C3%A0 )

2 thoughts on “환대

  1.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아무런 능력도, 환경도, 조건도 없이 서로를 향해 그리고 낯선 이를 향해 진정한 환대를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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