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僞善”(ὑπόκρισις, 휘포크리시스)

‘위선’(ὑπόκρισις, hypokrisis), ‘위선자’(ὑποκριτής, hypokritēs)‘라는 말은 마태오 복음에서 15회, 마르코 복음에서 2회, 루카 복음에서 3회, 바오로 서간에서 3회, 야고보 서간에서 1회 각각 등장한다. 위선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고대 희랍어로 ‘휘포크리시스(ὑπόκρισις, 영어 hypocrisy)’라고 한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들, 곧 위선자는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 영어로는 hypocrite)’이다. 이 말들은 단어 앞머리의 ‘휘포(~아래에, ~로서)’와 ‘크리시스(분리, 결정, 심판, 재판)’가 합쳐진 동사 ‘휘포크리노마이(ὑποκρίνομαι, 말을 가지고

“힘써라”(Ἀγωνίζεσθε, 아고니제스테)

마태오 복음사가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라고 기록한 것에 루카 복음사가는 한 마디를 더해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라고 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사가들과 견주어 볼 때 “힘”이라는 말마디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루카 복음사가가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도행전에서도 “힘”이라는 말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힘”이라는 말마디를 자주 사용하면서 악마와 세상의 힘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는 예수님의

성경의 의미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이들은 눈으로 읽는 글자를 넘어 「몸과 혼과 영(참조. https://benjikim.com/?p=15056)」으로 읽는다. 이때 성경을 읽는 이들은 오히려 그 말씀이 나를 읽으시고, 나를 살리시는 생명이심을 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15~119항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성경을 읽는 기준을 제시하며, 이를 간결하게 종합한다. ———————— 115. 성경의 의미는 오랜 전통에 따라 자구적 의미와 영성적 의미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역설逆說의 계명

사람들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며 이기적일지라도 사랑하십시오. 선을 행하는데 꿍꿍이가 있지 않으냐고 할지라도 선을 행하십시오. 출세하고 성공하면 거짓 친구들과 진짜 적들을 얻게 될 터이지만 그래도 성공하십시오. 오늘의 착한 일이 내일 잊힌다고 해도 착한 일을 행하십시오. 정직함과 솔직함이 상처를 입힐지라도 정직하고 솔직하십시오. 원대한 생각을 지닌 이들이 형편없고 편협한 사람들에게 무너질지라도 크게 생각하십시오. 약자를 응원한다면서 강자를 따르더라도 소수 약자를

몸과 혼과 영(body, soul & spirit)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를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라고 기록한다. “흙의 먼지”, “생명체”, “생명의 숨”이다. 바오로 사도는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1테살 5,23)라고

하느님의 세 번 입맞춤

프랑스 출신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St. Bernard de Clairvaux, 1090~1153년)는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을 더욱 엄격하게 따르고자 하는 시토회 수도원장으로 잘 알려졌고, 아름답고 깊이 있는 강론으로 유명하다. 8월 20일에 축일을 지낸다. 성인을 그린 회화에서는 주로 시토회의 하얀 수도복에 수도원장을 뜻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발밑에 주교관과 성체, 사슬로 묶은 악마, 하얀 개, 책, 벌통 등과 함께 그려진다. 양봉가·양초제작자·모래채취장·일꾼의

넷(넉 사四)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1961~)는 숫자 1이 광물이고, 2가 식물이라면서 「3은 동물이다. 두 개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은 땅도 사랑하고 하늘도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것에도 매여 있지 않다. 동물에게는 두려움 따위의 감정과 욕구가 있을 뿐이다. 두 개의 곡선은 두 개의 입이다. 하나가 물어뜯는 입이라면, 다른 하나는 입맞춤하는 입이다. 4는 인간이다. 이 숫자에는 시련과 선택의 갈림길을 뜻하는 교차점이

거룩한 독서, 어떻게 하는가?

읽기와 묵상의 실제 이 글은 ‘거룩한 독서’의 4단계 중 특별히 <거룩한 독서 ‘읽기’와 ‘묵상’의 실제>를 아름답고 체계적으로 서술하여 주신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토 수도회 이연학 신부님의 글이다.(이연학, 성경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 성서와함께, 2010년 6쇄, 39-52쪽) 루카 10,38-42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하시다> (38)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아름다운 사마리아 사람

루카 10,25-37의 거룩한 독서(이연학 신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역시 그 아름다움이나 깊이에서 참으로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각도에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먼저 성령의 비추심을 청하며 본문을 주의 깊게, 사랑에 찬 시선으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우선 본문 전체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께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께서 반문으로

성덕聖德과 성화聖化의 길

부부로 오랫동안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곧잘 “사랑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미운 정 고운 정 ‘정’으로 살고, ‘웬수’같은 질긴 인연으로 헤어지지 못해 산다.”라고 말한다.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이가 사랑해서 결혼하고 인생의 반려가 되었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랑이 깊어간다기보다는 시들해져 간다고 말하면서 옛 시절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산다. 수도생활도 그렇다. 어리고 젊은 나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