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자리

마음자리는 이웃과 하느님, 그리고 내가 함께 만나는 자리. 그런데, 그 자리에 가시나 바늘이 잔뜩 돋아 있다면? 그 자리가 걱정과 질투, 분노와 심술, 왠지 모를 불안과 어지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옹색하고 불편한 자리라면? 기도는 숨을 고르고 내 마음 깊은 곳에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 그 자리에 누가 오든 쉴 수 있고 치유될 수 있게 하는 것, 기도는

자비로운 부성애父性愛

자비로운 부성애父性愛는 슬픔, 용서, 그리고 관대함이다. 슬픔은 탄식이요 눈물이며, 연민이고 기도이다. 눈물 어린 눈으로 이제나저제나 멀리 응시하는 그리움이다. 무심한 듯 속으로 울고, 혼자서 세월을 두고 운다. 이 연민과 눈물로 아버지는 권위를 부여받는다. 용서는 어리석고 온당치 못하며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매일 극복한다. 한 계단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것을 말없이 훌쩍 뛰어넘는다. 따끔한 가르침도 잔소리나

인내

인내는 완성이 아닌 미완성, 전체가 아닌 부분을 사는 예술. 인내는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시간의 역사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 인내는 하느님, 교회, 자기 자신과 더불어 하는 숙고, 그리고 숙고. 하느님께는 아직도 당신 약속대로 눈먼 이와 다리를 저는 이, 말 못 하고 듣지 못하는 이, 악과 죄,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모두, 그리고 영원히’ 구하셔야만 할 사람들이

머무르다(μένω, méno)

사람마다 자주 사용하거나 입에 붙어 있고 좋아하는 말마디가 있게 마련이다. 요한복음에서만 무려 22곳에서 보이는(횟수로는 더 많다) ‘머무르다’라는 단어이다. 복음사가 요한을 특징짓는 말 중 하나이다. 이 말은 신약성경의 언어인 희랍어에서 ‘메노’(μένω, méno, 머무르다, 붙어 있다, 남다, 지내다, 영어 : to remain, to abide, to stay)’라는 동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이 말은 괄호 안에 서술한 일반적인 동사의 개념이

성덕의 향기

장미 나무를 접목할 때 갈라진 줄기 틈새에 사향 알갱이를 넣으면 거기서 피어나는 장미가 모두 사향 향기를 내게 되듯, 그대의 마음을 거룩한 회개로 쪼개고 그 틈새에 하느님의 사랑을 넣은 다음 거기에 네가 좋아하는 덕을 접붙인다면, 거기서 피어나는 잎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저절로 성덕의 향기를 풍길 것이다.(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신애론神愛論, 제11권 제2장) If you are grafting

내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

언제부터인가 수도자, 사제, 성직자, 사목자라는 사람들이 나이는 먹었지만, 어른도 아닐뿐더러 성숙하지도 않은 어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런 이들이 많다는 것만큼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한 상태로 끌어내리려는 세상의 유혹이나 세력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꼭 세상 탓만일까? 많은 사제나 수도자가 하느님만 나를 알아주시면 그만이라고 하면서도 주변의 인정이나 평가, 장상의 눈에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서 지상의 삶을 마감하실 무렵, 제자들과 이른바 ‘최후의 만찬’을 지낼 때이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제는) 그 길을 알고 있다” 하시는데, 토마스는 “어떻게 저희가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한다. 한술 더 떠서 필립보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자 예수님께서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뵌 것”이라 답하신다.(요한 14,1-12)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제자들은 해를 거듭하여

승리의 비결 세 가지

영적 전쟁을 치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승리를 거두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우리는 세상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끈질긴 인내의 작업을 해야 한다. 세상은 ‘힘’이 있어야 한다며 영향력과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그렇게 나를 유혹한다. 세상은 마치 ‘힘’에 굶주린 야수처럼 나를 부추긴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알아들은 것처럼 성령의 열매, 사랑–기쁨–평화–인내–친절–선행–진실–온유–절제(갈라 5,22)가 끝내는 승리하고, 꼴찌 같고

함께 살고, 함께 일하라

그리스도교의 수도자들이 세상 앞에 뭐 그리 내세울 만한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도 없다. 그들이 세상보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라는 것을 이루어 함께 살 줄 안다는 그것뿐이다. 수도자들은 봉헌 생활을 통해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신호와 화살표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기쁨의 종류

기쁨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차별화, 곧 다른 이와 뭔가 차이 나고 다름에서 오는 기쁨이요 희열이며, 둘째는 연대감과 일체감, 곧 다른 이와 나도 같다는 느낌에서 오는 기쁨이요 희열이다. 세 번째 기쁨은 성령과 은총이 허락하시는 위로부터 오는 선물의 기쁨이다. 차별화에서 오는 기쁨은 남들보다 잘났다는 기쁨이다. 영웅과 스타가 되는 데서 오는 기쁨 같은 것이다. 경기에서 이겼다거나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