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Hamlet)

『구세주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 올 때는 새가 밤새 울어 새벽을 알린다. 그 어떤 귀신도 활개치지 못하고 밤은 고요하고 별들마저 잔잔하니 요정들은 꼼짝을 못 하고 마녀들도 술책을 부리지 못한다. 은혜롭기 그지없고 그지없이 거룩한 날. Some say that ever ‘gainst that season comes Wherein our Savior’s birth is celebrated, The bird of dawning singeth all night long:

성탄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동방박사들이 먼 곳에서 길을 떠나며 땅은 동굴 하나를 연다. 아무도 무심하지 않고  배은망덕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 아담의 단죄가 풀리고 더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가 아니니 하늘과 지극한 하나가 되어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멘! (체사레아의 성 바실리오, 330~379년)

부드러우신 성모님

부드러움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 모든 탄생에 대한 환희 모든 생명이 살아서 열매 맺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 – 모리스 벨레Maurice Bellet(1923~2018년)

구유 만들기

가장 결정적인 구유는 일상의 삶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을 낯선 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는 친구로 맞이하는 것. 가장 정성스러운 구유는 우리의 두려움이나 불확실성의 끝이 아니라 탄생의 시작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가장 필요한 구유는 어려움에 부닥친 이에게 용기를 주어 희망의 싹을 틔우도록 하고, 의심이나 불신, 더는 관계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믿음의 자리를 만드는 것.

“말씀”이신 하느님

들꽃을 찍는 사진작가가 들꽃 앞에서 ‘예쁘다, 사랑스럽다, 곱다’라는 마음과 말을 오랫동안 건네면 마침내 들꽃이 자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여주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스위스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년)라는 신학자이자 추기경은 ‘어머니가 아이를 보고 오랫동안 웃으면, 아이도 웃기 시작할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의 내면에 있는 사랑을 깨웠고, 아기의 인식도 깨운 셈’이라고 한 적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현대 봉헌생활의 내적인 위기

세상에는, 특별히 가톨릭교회 안에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자신을 이웃과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약속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도 없고,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그 삶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매년 3천 명을 넘는다. 왜 그럴까? 첫째는 봉헌생활에 대한 스스로의 정체성과 신원의식의 약화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각기 다른 봉헌생활 형태 안에 담긴 은사(카리스마)에 따라

헌신, 투신하지 못하는 이유

사람들은 선택과 선택의 연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선택은 선택을 제외한 다른 것들의 배제요 포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택하고 나서도 욕심이 많아서 배제하고 포기한 것들에로 자꾸 눈길을 주며 호시탐탐 넘어다 본다. 그뿐만 아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도 자기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선택의 의미와 그 선택이 주는 의미의 크기를 실감하거나 가늠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값비싼 나르드 향유

예수님 생애에 일대 스캔들이라 할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 어떤 머리 긴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값비싼 향유를 통째로 부어 예수님 발을 닦아드리고, 울면서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 발을 닦아드렸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겼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를 개의치 않으신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사랑으로 준비한 행위였다고 말씀하신다.(참조. 마르 14,3-9 마태

사회 정의

사회 정의는 소위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어떻게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들은 누구일까? 표준어보다는 사투리를 거칠게 쓰는 사람들, 맵시 있게 차려입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몸을 가린 사람들, 곱게 차려입고 주일에 교회나 성당에 가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로 안달이 나서 점집이나 삼신 할매를 먼저 찾는 사람들, 작품이나 예술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장바닥에 내다 팔

3가지 화살표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만, 우리가 가고 싶은 길로만, 편한 길로만, 그렇게 골고타를 오르려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신호등의 화살표와 깜빡이 같은 기본 신호들은 다음 3가지이다. 1) ‘환대’라는 화살표: 대단히 어려운 U-턴을 요구하는 화살표이다. 그러나 마음의 길에서는 어김없이 직진 신호를 내리는 명령어요 십자가이다. 형제를 선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형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