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da(나다)를 통해 만나는 Todo(토도)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일깨워주는 ‘수동적 정화’의 은총 스페인어로 ‘Nada(나다)’는 ‘아무것도 없음’을, ‘Todo(토도)’는 ‘모든 것’을 뜻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이 두 단어는 단순히 ‘없음’과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Nada는 하느님 아닌 그 무엇에도 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비움이고, Todo는 그 비움의 끝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자신이다. “영혼이 아무리 스스로 노력한다 해도, 하느님께서 그 손을 잡으시고 저 어두운

탐욕(πλεονεξία, 플레오넥시아)

예수님께서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루카 12,15) 말씀하신다. 신약성경의 언어인 그리스어로는 “Ὁρᾶτε καὶ φυλάσσεσθε ἀπὸ πάσης πλεονεξίας.(호라테 카이 풀라스세스테 아포 파세스 플레오넥시아스)”라고 적는다. 여기서 ‘탐욕’으로 번역된 πλεονεξίας라는 말의 기본형인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는 단지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단순한 욕구를 넘어, 이미 가진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차지하려는 욕망을 뜻한다. 이러한 욕망은 타인의 몫까지 침범하면서 자신의 소유를 늘리려는 태도로

평온을 비는 기도

1987년, 아홉 살이었던 존 오리어리(John O’Leary)는 가솔린과 불로 장난을 치다 차고에서 대형 폭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전신 100%에 중증 화상을 입었고, 병원에서는 생존 확률이 1% 미만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이후 수십 차례의 대수술과 손가락 절단, 혹독한 피부 이식 및 재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가족과 의료진, 그리고 지역 사회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생존해

바리사이 시몬과 죄인인 여자

루카 복음 7,36-50에는 바리사이 시몬과 죄인인 여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서받은 죄인인 여자’,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식사’, ‘바리사이와 죄인인 여자’, ‘깨어진 옥합과 향유’,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 ‘여인의 머리로 닦은 예수님의 발’, ‘두 채무자 비유’, ‘용서에서 흘러나온 사랑’ … . 복음의 수많은 대목 중 이토록 다채로운 제목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이

비움·낮춤·높임

필리피서 「주석성경」 입문(*아래 참조)은 필리피 교회의 신자들에게 신앙의 투쟁을 굳건히 이어가라고 권고하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 그 투쟁은 겸손과 봉사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일치를 보존하려는 노력과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 필리피 신자들을 이러한 길로 이끌기 위해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라고 당부하며,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옛

세 가지 회개

※ 다음은 2007년 4월 22일 비제바노와 파비아 사목 방문(이탈리아) 시 파비아의 ‘오르티 보로마이치’ 광장에서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 부활 제3주일 미사 중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론이다. 이 강론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을 통해 조명해 본 우리 신앙인들의 가야할 평생의 여정인 ‘회개의 여정’이 담겼다. 곧 첫 번째 회개: 그리스도교 신앙과 세례를 향한 내면의 여정, 두 번째 회개: 사제직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 마태오 복음은 모세오경처럼 다섯 개의 큰 설교로 복음을 구성한다. 그중 제18장은 이른바 교회에 관한 설교, 곧 공동체의 삶에 관한 말씀이다. 연중 제23주일 ‘가’해에 듣게 되는 복음은 마태 18,15-20인데, 이는 공동체의 삶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죄를 짓는 형제를 만날 때 이를 어떻게 교정할 것인가에 관한 규범이다. 특별히 이 대목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 슬기롭게 그 형제를 교정하려고

무화과나무(쉬케, συκῆ)

성경은 무화과 열매보다 무화과나무 자체를 더 자주 이야기한다. 그 나무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비추는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언어인 히브리어에서는 열매와 나무를 구별하지 않고 ‘테에나(תְּאֵנָה, te’enah)’라는 단어 하나로 둘 다를 가리킨다. 반면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에서는 열매를 ‘쉬콘(σῦκον)’, 나무를 ‘쉬케(συκῆ)’라 불러 명확히 구분한다. 무화과나무는 창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눈이 열려 자신들이 알몸임을 깨닫고,

온 세상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 아래는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 여성대회를 앞두고 당시 교황이셨던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전 세계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제2항의 일부분이다. 이 대목만으로도 한편의 아름다운 글이다. 교황님의 글 전체를 읽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교황 교서 전체의 번역본을 주교회의(CBCK)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뒷부분에 수록한다. *** 「 … ‘어머니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여성만이 아는 기쁨과 산고를

예수님과 어린이(파이디온, παιδίον)

신약성경 공관복음서에는 ‘어린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마태 18-19장, 마르 9-10장, 루카 9장·18장)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는 파이디온(παιδίον)으로, 주로 어린아이, 유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가정의 중심이며 가장 귀하게 보호받는 존재이다. 사랑과 관심은 자연스럽게 어린이에게 모이고, 어린이는 순수함과 희망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사회적 현실은 오늘과 크게 달랐다. 어린이는 아직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 보호와 양육의 대상이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