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형제·친구’인 교육자

1884년 5월 10일 돈 보스코는 이른바 「로마에서 보낸 편지」를 썼다. 이는 살레시오회에서 살레시안들을 위한 ‘돈 보스코의 복음’(파스콸 차베스)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며 살레시오 회원·회칙의 부록에도 실려있다. 다음은 이 편지를 두고 살레시오회 독일 관구에서 2009년에 몇몇 회원들이 써낸 글을 편집·출판한 책의 이탈리아말본 <Solo con Amore: La lettera da Roma di Don Bosco e la sua efficacia

그리스도왕께 드리는 기도

저의 임금이신 주님, 당신께서 정말 제 삶의 주인이시고 임금이십니까? 임금이시라면, 그 말이 제 생각과 말과 행동, 곧 제 존재 전체가 당신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3-4) 주님, 제가 당신을 통하여 생겨났습니다. 당신 때문에

신애론(2-2)

제2장 하느님은 당신의 고유한 천주성인 단 하나의 행위만을 지니신다 우리는 여러 가지 능력과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매우 다양한 갖가지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무수한 일을 하게 된다. 즉, 다양한 능력들이란 실제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동작, 양육, 깨달음, 원욕, 말투, 걸음걸이, 소리내기, 노래하기, 요리하기, 춤추기, 수영하기 등으로서 대단히 많고 상이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다’해(루카 23,35ㄴ-43)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곁에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님을 들어 높이시어 오른편에 좌정하게 하심을 기린다. 1925년에 공식적으로 전례력에 들어오게 된 이 축일은 이 세상의 임금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왕의 통치권을 기억하도록 하려는 뜻으로 제정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따라 그 의미가 깊게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나라(그리스도왕)

마음의 평화를 우리 마음 안에 구축하기 위한 4가지 구체적인 방법 성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년)께서는 사도 순방을 위해 1986년 11월 23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을 방문하신 바 있다. 그날은 마침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었는데,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시면서 강론을 통해 이날 전례의 핵심 주제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가 곧 평화의 핵심(Peace of heart

연중 제33주일 ‘다’해(루카 21,5-19)

전례력으로 한 해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한 해가 대림절로 다가온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 기다림인 종말의 현실을 묵상한다. 전례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마치시려는 시점, 곧 수난과 죽음을 앞둔 시점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쪽에 계시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마태오나 마르코 등 공관 복음사가들은 오늘 복음의 내용을 공동으로 전한다. 복음의 ‘성전파괴의 예고’는

그랜드 캐년

미국 생활을 청산하기 전, 나를 오랫동안 잘 아시는 미국 신부님께 내가 미국을 떠나기 전 꼭 했으면 좋을 것 같은 것이 무엇일까를 여쭤보았다. 신부님의 망설임없는 대답은 ‘그랜드 캐년 방문’ 권고였다. 그래서 설레임 속에 말로만 듣던 그랜드 캐년으로 향했다. 캐년으로 들어서는 길에 머리에 떠오른 것은 문득 가톨릭성가 2번이었다. 그랜드 캐년 앞에 서면 그 노래를 불러야만 할 것

양극화와 신앙

오늘날 사람들은 소식·사건·사고·정보를 주로 어디에서 접할까? 신문이나 라디오, TV일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하여 2025년 2월 3일에 발표한 ‘2024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이신문 뉴스 이용률은 9.6%, 라디오 뉴스 이용률은 6.6%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 미디어별 뉴스 이용률에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각각 72.2%를 보인다. 이렇게 사람들은 전통 매체로부터 인터넷 기반 매체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조사들 역시 다수(80%대)에 달하는 성인이 자신의

두 번 부르심

쓸어야 할 은행잎이 많다. 숲이나 호숫가의 낙엽은 쓸 필요 없이 그대로 두어야 멋이지만, 복잡다단한 인간사 안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멋이기는커녕 자꾸 쓸어야 하고 쓸리는 천덕꾸러기들이다. 쓸어야 할 낙엽처럼 부르심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성경에는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두 번 거듭 부르시는 특이한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전해지는 이야기의 맥락에서 부름의 횟수가 관건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요한 2,13-22)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의 전례 복음은 통상 요한 2,13-22을 취한다. 이른바 ‘성전 정화 사건’으로 알려지는 대목이다. 이 복음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례적으로 공관복음을 넘어 4 복음서가 공통으로 전한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에 교회는, ①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 ‘예수님’이라는 성전 ② 주님만의 집이어야 할 살아있는 성전인 우리 ③ 성전에서 드려야 할 참다운 제물에 대하여 묵상하도록